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 - 장애를 축복으로 만든 사람 강영우 박사 유고작
강영우 지음 / 두란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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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우 박사의 어린시절은 불행로 점철된 것 처럼 보였다. 친구들과 축구를 하며 놀다 공에 눈을 맞고,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결국 시각 장애인이 되고 만 그의 개인사는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처음 눈의 이상을 느낄 때 병원을 찾아 신속한 치료를 했으면 그나마 나았을 테지만, 뒤늦게 찾은 병원에서도 이렇다 할 진료를 받지 못해 결국 눈이 멀게 된 거라 더 안타까웠다. 하지만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들이 장애인이 됐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뇌출혈로 돌아가시고, 부모님의 부재로 생계를 혼자 담당했던 누나도 꽃다운 나이에 하늘나라로 가 강영우 박사는 동생들과 고아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막힌 상황 속에서도 강영우 박사는 하나님을 탓하지 않고, 자신의 불행에 낙담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쓰임을 받기 위해 이런 일을 겪는다고 여겼다. 장애가 축복이었다는 그의 진심은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일 에서도 잘 드러난다. 보통은 암 진단에 슬퍼하고 치료받기를 원하지만, 그는 초기가 아니라 말기 때 발견을 하게 된 건 이제 하나님의 곁으로 오라는 부름심 이라고 했다. 자신은 축복된 삶을 살았다며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은 모두를 숙연하게 한다. 후회없는 삶을 산 사람만이 취할수 있는 행동이었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 많은 제약을 받기 마련이고, 장애인으로 산다는 건 편견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특히 강영우 박사의 젊은 시절엔 지금보다 더 한 차별을 받아야만 했다. 연세대학교에 시험을 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아 겨우 주변사람들의 도움으로 응시를 할 수 있었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학생들과 교수들의 차별을 받아야 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과 같은 교실에 있는게 싫다고 말하는 학생, 시각장애인의 시험 점수는 대충 줘도 되겠지 라는 생각을 가진 교수. 하지만 그는 오로지 실력으로 편견을 이겨냈고, 체육 시험 때문에 아깝게 차석을 했지만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가난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학생이 공부를 계속 할 수 있었던 건 위기 때마다 그를 도와주는 인간 천사 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학비를 지원해주는 사람이 사정 때문에 도와주지 못했을 때도, 미국의 한 부부가 그의 학비를 부담해주었고 미국에서 성공할수 있었던 과정에도 수많은 인간천사들이 나타나 그의 앞길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작은 인연이 만들어질 때마다 그는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쓰임을 즐겁게 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성공스토리와 유명인과의 일화 등은 자칫 자랑을 넘어서 직위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 처럼 느껴 거부감을 갖게도 한다. 너무 유명인과의 관계에 고취되고, 어떤 상을 받고 일을 했는지만 서술되어 있어 조금 아쉬움도 있다. 그러나 이 분으로 말미암아 한국의 장애인 복지가 조금 더 나아지고, 희망을 가지게 된 건 분명하다. 장애인들을 직접 만나 도움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많은 이들을 돕기 위해 제도를 개선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면에서 강영우 박사의 일생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세계 인들에게 중요한 모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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