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자 파크스 나의 이야기 - 미국 흑인 시민권 운동의 어머니
로자 파크스.짐 해스킨스 지음, 최성애 엮음 / 문예춘추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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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예전의 끔찍한 차별과 비교하면 조금 낫다고 해야 할까. 단지 피부색 하나때문에 인격을 무시당하고 부당한 대우를 한다는 게 너무 서글프다. 흑인들이 백인의 노예로 살고, 해방이 되어서도 여전히 부당한 차별을 감내해야 했던 그 시절을 그들은 어떻게 참고 견뎠을까. 국가는 흑인을 "이등시민"으로 분류하고 백인과는 말도 섞지 못하게 했다. 버스 뒤편엔 "흑인 구역"이 따로 있는데 백인이 서 있으면 흑인은 자리를 양보해야 했고, 공공 급수대엔 백색,유색 표시가 있어 따로 마셔야 했다. 이렇게 흑인과 백인은 엄격하게 분리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관습과 법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흑인은 더 이상 백인의 노예가 아니었지만 이들의 삶은 그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1955년 12월 초, 몽고메리의 한 버스에서 벌어진 사건은 흑인 시민 운동의 시발점이 되며 빼앗겼던 삶을 되찾는 계기가 됐다. 백인들이 만든 악법 때문에 피해를 당해도 참고 살았던 흑인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힘을 합치게 된 것이다. 그 역사적인 순간에 로자 파크스가 있었다. 그녀는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버스기사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다른 흑인들은 체념하며 말을 따랐지만 로자는 그러지 않았고 결국 구금된다. 그녀는 오래된 차별에 대항하기 위해, 시위를 하기 위해 비장한 마음을 가지고 이런 일을 한게 아니었다. 그저 40여년을 백인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에 넌덜머리가 나고 지쳤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 너무 아프게 다가온다.

 

그런데 로자 파크스와 버스기사는 이미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1943년 어느 날, 이 버스기사에 의해 로자는 차 에서 내쫒겼기 때문이다. 정말 말도 안되는 이유 때문이었는데, 흑인은 앞문으로 올라와 요금을 내고 다시 내려간 뒤 뒷문으로 승차하게 되어있었는데 로자가 앞문으로 승차한 뒤 곧장 뒤쪽으로 갔기 때문이다. 그 일이 있은 후 로자는 버스가 올 때마다 기사 얼굴을 확인 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그 날 하필 악연이 있는 기사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이 일은 목사와 활동가들에 의해 버스 보이콧 운동을 하게 했고, 많은 흑인들이 이에 동참하며 마침내 시민권법을 통과하게 만들었다. 이런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너무 힘겨웠는데, 흑인들은 살해위협과 협박, 그리고 여러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더 이상 백인들에 의해 차별 받고 목숨을 위협 당하며 살지 않기위해서 말이다. 이 비폭력 시민운동에 당차고 강인한 여성, 로자 파크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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