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놀이 -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 쌍용자동차 이야기
공지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잊고 살았었다. 용산참사의 비극은 계속 곱씹게 되고 아직도 뉴스를 통해 봤던 그 끔찍한 사고가 잊혀지지 않지만 쌍용자동차 파업 사건은 완전히 잊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야 지붕 위에 있는 파업 노동자들을 마치 테러리스트를 대하는 것처럼 무자비하게 진압했던 경찰의 모습이 서서히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맞아, 그랬었지. 그런 일이 있었지. 내가 보는게 영화가 아니라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믿기힘든 장면임을 되새기며 그 뉴스를 봤었지.

 

이명박 정권 초기의 폭력성이 드러난 두 사건 이지만 나는 용산참사만 기억하고 있었다. 쌍용자동차 파업 사건은 수많은 파업과 마찬가지로 안타깝지만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만 여겼다. 자세히 알려 하지도 않았고, 단순히 회사와 노동자 모두 힘든 사건이었겠구나 하고 넘겼다. 하지만 이 파업과 정부의 과잉 진압으로 인한 상처는 너무도 깊고 끔찍하게 아팠다. 내가 무관심한 사이 무려 22명의 목숨이 안타깝게 사라졌던 것이다.

 

그동안 많은 파업이 있었지만 왜 유독 쌍용자동차 사건에서만 이렇게 많은 희생자가 나오게 된걸까. 해고는 단순히 일자리를 잃는 것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한 사람과 그 가정을 망가뜨린다는 걸 보여준 현실은 페이지를 넘기는게 무서울 정도였다. 글로만 읽어도 이토록 덜덜 떨리고 소름 끼치는데 어떻게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이 상황을 견뎠을까. 과연 이게 2009년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아직도 긑나지 않은 사건이라니 믿겨지지 않았다. 전쟁포로 한테도 행하지 않을 탄압과 최소한의 살 권리조차 빼앗은 회사와 정부의 대응은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더럽고 치졸했다.

 

특히 쌍용자동차가 2646명 이라는 많은 인원을 해고하게 된 과정은 자본 앞에 힘없이 무릎 끓어야 하는 비정한 세계를 보여주었다. 노동자들의 근면함으로 우뚝 선 쌍용자동차가 헐값에 중국 기업에게 넘어가고, 기술을 빼내가는게 뻔히 보이면서도 정부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튼튼한 기업이 이해되지 않는 조사 결과 때문에 노동자를 해고하는 일련의 상황은 지금의 비극을 이미 예고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퇴직금까지 내 줄 각오를 하며 어떻게든 회사를 살리고 해고를 막겠다 했지만 그건 처음부터 부질없다는게 밝혀진다. 중국 상하이차는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기술만 빼먹고 튈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찌는듯한 더위에 전기가 끊기고 물을 먹을수 없는 와중에도 회사의 중요한 기계가 망가지지 않기 위해 그곳만은 전기를 돌린 노동자들의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런 회사를 위해 그들은 모든걸 다 바쳤지만 돌아오는 건 비난과 고통 뿐이었다. 이들이 한 건 열심히 일한 것 뿐이고, 회사가 어려워졌다고 하자 힘을 합쳐 이겨내겠다는 마음이었는데 대한민국에서 그건 죽을 죄인 모양이다.

 

해고된 자와 살아남은 자 간의 관계도 나를 서글프게 했다. 가족과 이웃이었던 그들이 파업과 함께 반대편의 입장에 섰기 때문이다. 이런 심리를 회사는 교묘하게 이용했고, 용병과 경찰은 마치 전쟁을 치르는 것처럼 극악한 방법으로 압박해 왔다. 심지어 부상자가 병원에 가는 것도 막았으니, 그 아비규환의 현장이 저절로 연상된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웠을까. 그 지옥같은 경험이 22명의 목숨을 앗아간게 너무 분하고 원통하다.

 

많은 사람들을 우울증과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앓게 했지만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남은건 해고 통지서와 엄청난 금액의 벌금, 그리고 생활고 뿐이었다. 바라건대 부디 23번째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를, 또 다른 쌍용자동차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들에게 죽음 대신 희망을 선사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