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아찔한 경성 - 여섯 가지 풍경에서 찾아낸 근대 조선인들의 욕망과 사생활
김병희 외 지음, 한성환 외 엮음 / 꿈결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일제치하 시대는 우리에게 아픈 역사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 역사는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채 현재 진행중 이다. 일본은 여전히 사과도,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은 채 어떤 잘못도 뉘우치지 않고 있다. 만약 우리나라가 친일파를 제거하고 친일 잔재를 제대로 청산했다면 어땠을까 싶지만 역사에 만약이라는게 없으니 뒤늦은 후회일 뿐이다. 우리나라가 힘이 있었다면 일본도 독일처럼 자신들의 과오를 제대로 알고 반성의 기미라도 보일까 싶지만 그것도 어려워 보인다. 그렇게 아픔만으로 남아있는 그 시대를 다시 들춰보는게 조금 괴로웠다. 나라를 빼앗긴 채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니라 일본의 국민으로 강요받으며 살았을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동시에 들었다. 한글대신 일본어를 배우고 온갖 멸시와 핍박을 받고 생존권마저 위협받으며 살아야 했을 사람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우리처럼 밥을 먹고 옷을 사 입고 여행도 하고 미래를 꿈꾸며 혼란스런 시대상황에서도 평범한 일상을 살았을 것이다. 그런 생활상을 언론매체에 등장한 광고에서 엿볼수 있었다. 그 시대 사람들의 욕망이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광고가 아닐까 싶다. 광고가 사람들에게 이렇게 살아가도록 주입하는 면이 있긴 하지만, 광고 만큼 사람들이 원하는 걸 집약해주는 건 없어 보인다. 수록된 광고를 보니 다양한 물품이 소개되는데, 전달하는 방식도 시대를 앞서간게 많이 있었다. 눈에 확 띄는 레이아웃 이라던가 DM광고, 담배 피우는 여성의 그림과 PPL 형식 등이 그러하다. 재미있는 광고를 보면서도 그 안에 담긴 식민지의 아픔이 보여 가슴이 아릿해지기도 했다. 우량아를 키우자는 광고는 전쟁터에 징용보내려는 일본의 속셈이 있었으니 말이다. 일본에 충성하고 전쟁에 참가하라는 광고도 눈쌀을 찌푸리게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듣고 부르는 트로트는 식민지 시대의 애환과 일본문화의 유입을 의미했다. 지금은 트로트 하면 촌스럽고 뽕짝 이라며 낮춰 부르기도 하지만 그 시대엔 신식 음악 이었다 한다. 트로트는 한때 외색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일본의 엔카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선 볼수 없었던 음계인지라 사람들은 신식 음악이라 여겼고 젊은이들이 즐겨 들었다. 일본에 반감이 있을수밖에 없던 어른들과 달리 일제 치하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일본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했고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다. 그래서 이들에 의해 일본식 음악 뿐 아니라 문화가 자연스럽게 정착할수 있었다. 요즘 젊은이들도 외국 음악, 특히 미국같은 나라의 음악을 최신이라 여기며 잘 받아들이는 것과 같았다. 트로트의 역사에서 식민지의 아픔을 알수 있다는 걸 알고나니 새롭게 보인다.

 

일제의 잔해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아 고생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사법체계 이다. 일본의 언어를 무리하게 번역해서 뜻이 이해되지 않는 말이 수두룩 하고, 조선을 수탈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되던 후진적 사법제도를 그대로 계승해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검사와 판사가 해야 할 일을 경찰에게 모두 위임하니 제대로 된 재판을 받지도 못한 채 피해를 받는 조선인들이 늘어났다. 이러다보니 유죄를 받을 확률이 99% 라는 믿지 못할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의 사법제도의 판결도 97.5%라는게 더 놀라웠다. 이 모두가 서류에 의한 재판을 일제강점기 에서부터 쭉 하고 있던 결과이다. 그 배경엔 해방 이후에도 친일파 들을 숙청하긴 커녕 오히려 주요 요직에 앉힌 비참한 역사가 있었다. 만약 그때 제대로 일처리를 하고 변화를 꾀했더라면 지금 우리 국민이 가지고 있는 사법제도의 불신감이 많이 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일본이 주장하는 것 중 가장 기가막힌건 자신들 때문에 우리나라가 근대화를 이루었다는 말이다. 그 중에서도 기차를 깔아줬다는 점을 들먹이는데 우리나라의 식량과 자원을 빨리 가져가기 위함이라는 건 정말 모르는 걸까. 그것만으로도 분한데 철도를 깔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점은 더 울분을 터트리게 한다. 강제로 토지를 뺐고, 노동자들에게 돈을 안줘 오히려 빚을 져 가며 일을 하고,반항하거나 방해하는 자는 죽임을 당했으니 철도 하나하나에 조선인의 땀과 눈물이 배어있는 셈이다. 기차가 다니지 못하게 방해한 이들을 잡아다 사형을 시키는 사진이 실려있는데, 그런 끔찍한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났을까 싶어 아무 말도 할수가 없었다. 그분들에게 우리는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