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김인희 라는 이름이 있지만 엄마(배종옥)로 더 많이 불리우며 사는 그녀는 온전히 가족을 위해 살고 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수발하고 아내의 말을 건성으로 듣고 대답조차 하지 않는 무뚝뚝한 남편을 살뜰히 챙기고, 바빠서 얼굴 보기도 힘든 딸과 이제 막 수능을 본 재수생 아들에게 밥 한숟가락 더 먹이려고 한다. 의사 사모님 이지만 버스만 타고 다니며 억척스럽게 돈을 아끼는 건 양평에 집을 지어 어머니와 가족이 좀 더 좋은 곳에서 따뜻하게 보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런 엄마에게 유일한 즐거움이자 쉬는 시간은 꽃을 말리는 일이다. 당연히 남편은 아내가 꽃을 좋아한다고 여겼는데, 알고보니 이 취미생활 또한 어머니가 꽃을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라고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대신 가족이 좋아하는 것에 맞추며 산 아내의 모습이다.  

그런 아내가 자꾸만 아프다고 한다. 오줌이 잘 나오지 않고 화장실만 가면 끙끙대는데도 무심한 남편(김갑수)은 걱정해주기는 커녕 약국에 가서 약이나 지어먹으라고 한다. 자신이 의사임에도 아내의 증상을 별일 아닌걸로 치부하는 모습이 너무 야속해 보인다. 남편은 30년을 살았는데도 아내를 모르는게 분명하다. 웬만한 일은 참기만 하는 아내가 아프다고 할 정도면 그건 상태가 심각하다는 뜻일텐데 말이다. 결국 아내는 혼자 병원을 찾아 진찰을 받는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검사가 암 말기라는 선고를 받게 한다.  

검사를 한 동료 의사로부터 가장 먼저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그제서야 아픈 아내를 챙기지 못한 자신을 탓한다. 이 불쌍한 사람은 부모님 없다고 결혼을 반대한 시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자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보살폈고, 가족을 위해서만 살아왔다. 그런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은 있었지만, 몇십년을 그렇게 살아왔기에 당연한거라고만 여겼고 마음을 표현하진 못했다. 아내의 웃는 얼굴을 많이 만들어주지도 못했는데, 좀 있으면 죽는다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벌써부터 목이 메인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어제와 같은 오늘의 집안 풍경이 다르게 느껴진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어머니는 종잡을수 없는 행동을 하고 아내는 그런 어머니를 말리고, 바쁜 딸은 엄마를 도와주지 않고 피곤하다고만 한다. 이 모든 상황이 남편을 울컥하게 만들었고,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아들에게 괜한 화풀이를 하게 된다. 하지만 남편이 화를 낸건 어머니도 자식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가족 모두 각자의 문제로 인해 힘든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의료사고 때문에 병원 문을 닫고 늦은 나이에 남의 병원에 다니고 있는 남편은 잘릴 위기에 직면해 있었고, 딸은 유부남과의 연애로 떳떳하지 못한 사랑을 하고 있었고, 아들은 여자친구가 임신했다는 것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가족이지만 말할수 없는 비밀을 안고 있었기에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엄마가 아플수 있다는것도, 죽어간다는 것도 몰랐다. 

남편은 아내에게 사실을 얘기하지 못하고 수술하면 된다는 헛된 희망을 주는데, 이건 오히려 아내와 가족을 더 힘들게만 한것 같다. 아무것도 모른채 왜 계속 아프냐는 아내에게 그는 말을 했어야 했다. 아들이 충격을 받을까 봐 말하지 않은 것도 결국 큰 상처를 줄수도 있었다. 엄마가 죽을 병에 걸린걸 모르니 컴퓨터를 가르쳐 달라는 엄마에게 나중에 가르쳐 준다며 미룬다. 엄마가 죽으면 그때 가르쳐 줄거냐는 말에도 "엄만 안 죽어"라며 귀찮아 한다. 또 여자친구가 아프다고 엄마 품에 안겨서 운다. 정작 아픈 사람은 엄마인데 말이다. 아들이 이런 사실을 알고나면 자신의 철없는 행동이 얼마나 미안하고 가슴에 오래 남을까.

엄마에겐 또 다른 가족이 있었다. 바로 유일한 혈육인 남동생 근덕(유준상) 이었다. 장사하는 아내의 돈을 도박에 갖다 붓고 폭력을 쓰고 여자를 만나고 다니는 근덕은 구제불능 그 자체였다. 누나에게 찾아가 돈을 요구하며 난리를 피우는 근덕이 정신을 차릴 일은 없을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도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누나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자 겸연쩍지만 화해의 손짓을 한다. 누나가 좋아했던 호두과자와, 목 메이지 말라며 준 음료수 한병을 건네주면서 말이다.  

곧 죽는다는 걸 알게 되면 누구나 혼란스러워하고 왜 내가 이런 벌을 받나 하는 절규와 눈물을 흘릴 것이다. 살고 싶다고 울부짖는 아내는 힘들게 하는 시어머니가 얼른 죽었으면 하는 마음을 몇번 먹은 것과, 아들이 사고를 당하자 나을수만 있다면 봉사하면서 살겠노라고 한 기도를 지키지 않아서 벌 받는것 같다고 한다. 아내의 눈물 젖은 절규가 가슴을 아프게 한다.  

하지만 이제 아내는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며 마지막을 준비하려고 한다.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걱정이 아내의 마음을 짓누르고, 특히 시어머니에 대한 걱정 때문에 힘겨워하면서 말이다. 그러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까지 가게 되는데, 그 마음을 알 것도 같다. 남은 가족 고생시키지 말고, 얼른 자신을 따라오라는 며느리의 말에 담긴 아픔을 말이다.  

이제 가족들의 눈과 귀와 마음은 모두 엄마에게로 향해있다. 다들 다른 곳을 보고 있었고, 형식적인 가족의 모습으로 살아왔지만 아픈 아내와 엄마로 인해 한 곳을 바라보게 됐다. 그런 모습을 탓할수도 없는게 바로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 가면 언제나 그 곳에 있는 가족은 마음을 얻기 위해 잘 보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고, 표현을 하지 않아도 다 알거라는 생각으로 너무 무관심하게 대하게 된다. "가족이니까" 라는 한마디면 다 해결된다는 듯 말이다. 하지만 가족이기에 더 상처받고, 더 아프고, 더 표현해야 된다는 걸 왜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엄마가 뭘 좋아하는지도 잘 모른다면, 그건 이름만 가족일 뿐이다. 그래도 남과 다른 건, 힘들고 아픈 일이 있을 때 더 똘똘 뭉치고 하나가 된다는 점 일 것이다. 이들 가족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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