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위크 - One week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벤은 의사로부터 암 4기, 그러니까 수술을 해도 생존율이 10%이니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라는 선고를 받게 된다. 치료를 잘 받으면 2년의 생존기간을 예상할수도 있지만, 이제 벤에겐 손자의 재롱을 볼수 있는 순간은 영영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건 분명하다. 그런데 벤은 의사의 말에 소리를 지르고 울고 현실을 부정하는 것 등의 반응 대신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다. 오래 사귄 여자친구와의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학생들의 시험지를 채점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장례식엔 몇명이나 참석할까 따위를 말이다.  

그는 여자친구와 부모님의 기대와 등살에 못이겨 결혼을 결심했고, 소설가라는 꿈을 이루지 못해 적성에도 맞지 않는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암' 이 이 모든것에서 벗어날수 있게 해줄 구실을 준 셈이다. 그러니까 따분하고 별 볼일 없던 인생에 '암'이 끼어들면서 자신의 진짜 원하는게 무엇인지 생각하고 실행하게 해줄 자극제가 됐는데, 이를 좋다고 해야 할지 정신차리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찌됐든 그렇게 벤의 일탈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시작됐다.

벤이 처음 한 일은 약혼녀인 사만다 때문에 타지 못했던 오토바이를 사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만다 에게만 병을 밝히고 가족에겐 알리지 않은 채 홀로 캐나다 전국 여행을 떠나게 된다. 사만다의 반응은 지극히 당연한데, 맨 처음에는 충격을 받으며 울었다가 벤의 엉뚱한 계획에 화를 내고 미친 짓이라며 말렸다.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이 오토바이를 타고 혼자 여행을 한다는건 말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너무 충격을 받아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한 걸수도 있었다. 하지만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벤에겐 사만다의 만류도 소용이 없었다. 그는 이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용기가 생겼던 것이다.  

그동안 벤의 인생은 누군가의 평가에 의해 움직였다. 체육 시간에 코를 후비고 공상을 하다 선생님께 혼난 이후론 평생 코를 후비지 않게 됐다. 코를 후벼야 공상을 할수 있었던 벤으로서는 참으로 슬픈 사연이 아닐수 없다. 또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교내 오디션 대회에선 심사위원 선생님의 비정하고 충격적인 심사평을 듣게 됐는데, 이 때문에 벤은 두번 다시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게 됐다. 두 선생님의 이런 꾸지람과 비평이 한 소년의 인생을 바꿀수도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우리는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서 살게 된다. 받은 사람은 잊지 못할 말이지만 정작 말한 사람은 기억조차 못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유일하게 벤이 하고자 했고, 오랫동안 노력했던게 바로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 하지만 첫 소설이 출간이 안된것에 실망했고, 결국 꿈을 고이 접은 채 현실에 순응하면서 살아가야 했다. 그렇게 현재는 학교 선생님이자, 사만다의 약혼자이자, 길어야 2년을 살수 있는 암 환자가 된 벤은 그동안 하지 못했던 충동적인 일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종이컵에 서쪽으로 가라는 문구를 보고 무작정 여행을 떠나고, 캐나다 곳곳을 누비게 된 것이다. 불과 몇 시간전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일을 벤은 하려고 한다. 지금 당장!! 
    

암 환자의 나홀로 여행 이라하면 죽음에 대한 깊은 사색과 우울함, 뭐 그런 것들이 나올줄 알았지만 영화는 잔잔하면서도 군데군데 웃음을 주고 너무 무겁지 않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아직 병색이 완연하지 않기 때문에, 말만 안하면 환자인줄 모르는 벤 인지라 그가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도 모두 평범한 여행자로만 본다. 벤이 오토바이를 끌고 지나가며 보이는 캐나다의 아름다운 풍경은 또 하나의 볼거리이다. 벤도 풍경을 보면서 왜 진작 떠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고 즐길수 있는데 하늘 한번 쳐다보는 것도, 석양이 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참 어려우니 말이다. 

벤은 유명한 관광지를 두루 돌아다니며 사진으로 남긴다. 우리나라도 관광거리가 없는 지역에선 '세계에서 최고로 큰' 조형물 등을 만들어 홍보를 하는데 그건 외국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대체 이 조형물이 지역과 무슨 상관인지 알수 없는 경우가 많고, 왜 이런게 있어야 하는지 의아하게 만드는 것들이 많은데 벤 또한 그런 조형물들을 참 많이도 만난다.   

처음엔 무작정 떠난 여행이었지만 길을 가면서 벤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해준 이야기속의 '그럼프'를 찾아나서게 된다. 생긴것도 모르지만 막상 보고나면 알게 된다는 그럼프를 찾는 과정에서 벤은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바다를 보면서 벤은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그럼프를 찾은 것도 같다. 어쩌면 처음부터 주위에 있었지만 눈치 채지 못한건 아닐까.

어린 시절의 두 선생님이 벤의 인생에 영향을 미쳤듯이, 벤 또한 여행을 하면서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켰다. 벤이 입원을 안하고 여행을 떠남으로써 일찍 퇴근하게 된 간호사는 많은 사상자를 낸 열차사고를 피할수 있었고, 여행 중 만난 한 아주머니는 벤을 보고 방랑벽이 도져 길을 나서던 중 평생의 반쪽을 만나게 된 것 등 말이다. 그리고 약혼자를 배신했다고도 할수 있는 누군가와의 만남까지. 하지만 결국 돌아온 벤과 그를 용서하고 받아준 사만다의 모습은 그 전과는 좀 달라져 있었다. 오랫동안 사겨오면서도 서로의 단점을 이야기하지도 않던 둘이 이제는 솔직해진 모습을 보면서 잔인한 일이 사람들의 관계를 더 성숙하게 만드는게 아닐까 싶다. 확실한 건 둘의 표정이 너무도 편해보였다는 점이다. 자신만의 그럼프를 찾아낸 벤과 그를 이해하고 받아들인 사만다의 표정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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