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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엇 - 175년 동안 바다를 품고 살았던 갈라파고스 거북 이야기 ㅣ 보름달문고 45
한윤섭 지음, 서영아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6월
평점 :
안녕, 해리엇! 저 자바원숭이 찰리예요. 지금쯤 당신은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고향 갈라파고스를 향해 열심히 헤엄치고 있겠죠? 비록 당신을 더 이상 보지 못한다 해도 함께 했던 시간은 제 마음속에 영원할 거예요. 당신이 가르쳐준 모든 것을 간직한채 말이예요.
전 숲에서 태어난 지 몇달 되지 않아 사람들에게 잡혔고 결국 엄마와 헤어지게 됐어요. 마취총에 맞은 엄마가 죽은줄 알고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던 그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정말로 엄마에게서 생명이 빠져나간줄 알았거든요. 다행히 그게 아니라는걸 알게됐지만 헤어지는 순간에도 깨어나는걸 보지 못했으니 제가 기억하는 엄마의 마지막은 총에 맞아 축 늘어진채 정신을 잃은 모습이예요.
동물원 주인 아들인 테드가 절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집에 데려가지 않았더라면 전 엄마와 함께 살수 있었을까요?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게 되지만 이미 벌어진 일 이고, 제가 찰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테드 가족과 함께 살게된건 제 힘으로 바꿀수 없는 일이예요. 처음엔 사람들의 언어도 이해하지 못했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이 뭔지, 좋아하는 행동이 뭔지를 경험을 통해 알게됐어요. 똥오줌은 모래가 깔린 박스에 해야 하고, 물이 싫어도 테드와 같이 목욕을 해야 했어요. 제가 싫어하고 원하지 않는 걸 사람들에게 알려봤자 그들이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저도 그들을 이길수 없었으니까요. 그런 제 모습에 테드는 순하다며 좋아했지만, 별 수가 없었는걸요. 제가 숲으로 돌아갈 일은 없으니 이곳에 적응하며 어떻게 살아남느냐가 가장 큰 문제라는 걸 어린 저도 잘 알게 됐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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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야, 괜한 짓 하지마. 여기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야. 사람들을 이길 수는 없어. 살아남는 게 중요한 거지. 24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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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테드와 동물원에 갔던 날이 떠올라요. 무서운 개코원숭이 스미스 때문에 공포에 질려있는 제게 당신은 따뜻한 목소리로 "안녕, 친구."라며 말을 건넸어요. 처음 만났음에도, 백칠십이라는 세월을 살았음에도 당신은 이 곳에선 모두 다 친구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리고 저에게 잘 해낼수 있을거라는 격려도 잊지 않았죠. 당신의 따뜻한 말에 눈물이 핑 돌았어요.
그리고 1년 뒤, 테드가 학교에 가면서 전 처음으로 동물원 우리에 갇히게 되었죠. 숲에서 테드의 집으로, 이제는 동물원으로 제 환경은 또 변하게 되었고 역시나 이번에도 두려웠어요. 특히 스미스 가요. 제가 사육사의 열쇠꾸러미를 가져온 걸 알게되자 스미스는 당장 그 열쇠를 내놓으라며 협박을 했고 돌까지 던졌어요. 하지만 열쇠를 내놓으면 어떻게 될지 잘 알고있었기에 전 두려움에 떨면서도 끝까지 버텼어요. 하지만 언제까지 참을수 있을지 몰랐어요. 어쩌면 스미스가 던진 돌에 맞아 죽을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때 당신이 나타나 준 거예요. 두려워 할 것 없다고, 넌 혼자가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며 그날 밤 제 곁을 지켜주었어요. 외로운 싸움을 하던 저에게 다가와준 당신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그때부터 전 힘들때마다 '난 혼자가 아니다. 난 친구가 있다!' 라는 생각을 하며 잘 이겨낼수 있었어요. 당신이 아니었다면 이 작은 동물원에 평화가 찾아오지도 않았을 테고 새로운 친구들도 만나지 못했을 거예요. 엄마와 헤어진 후 처음 맛보는 편안함을 당신이 선물해준 거예요.
그런 당신에게 살 날이 3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소식은 우리 모두를 큰 슬픔과 충격에 빠지게 했어요. 하지만 당신은 오히려 슬퍼하는 우리들을 위로하고 자신과 친구를 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죠.
당신이 동물원 친구들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던 그 순간, 당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에겐 한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사람들에게 포획된 후 한번도 밟아 보지 못한 바다로 당신을 데려갈수 있는 방법이 생각났거든요. 어쩌면 오늘 같은 날을 위해서 사람들과 살았는지도 모르겠어요. 사람들과 차를 타고 가며 바다의 위치를 알수 있었고, 열쇠 꾸러미도 챙길수 있었으니까요.
동물원을 탈출해 힘이 빠져버린 당신을 이끌고 바다로 향해 가는 건 분명 쉽지 않은 모험이었지만 충분히 감수할만한 일이었어요. 이런 용기를 가르쳐준건 바로 당신, 해리엇 이었어요!! 마침내 바다를 만나게 됐을 때, 마지막 이별을 하면서 흘렸던 눈물이 아직도 제 뺨에 남아있어요. 당신에게 그토록 원하던 바다를 보여줄수 있어서, 갈라파고스로 이끌어줄 바닷속에 몸을 맡기게 할수 있어서 얼마나 기쁘고 다행이었는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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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야, 난 너무 오랜 시간을 살았다. 이제 시간이 된 거야. 죽는다는 것은 꼭 슬픈 일만은 아니다. 죽는 건 새로 시작한다는 거지." 104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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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엇, 그 곳에 잘 도착했나요? 오래전에 했던 친구들과의 약속은 지켰나요? 당신이 없는 동물원은 많이 허전하고 슬프지만 그래도 당신의 바램처럼 이 곳이 따뜻한 곳이 되도록 모두 노력할 꺼예요. 오늘 따라 당신이 많이 보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