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일기 - The Journals of Musa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답답해 보일 정도로 덥수룩한 헤어스타일과 왠지 주눅들어 보이는 표정, 그리고 언제 샀는지도 모를 점퍼를 입고있는 전승철은 탈북자이다. 이 땅에서 탈북자로 살아가야 한다는 건 125로 시작되는 주민등록번호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탈북자를 두 팔벌려 환영할 만한 일자리는 없었고, 그래서 이번에도 머리를 조아리며 전단지 붙이는 일을 다시 하게 되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다. 그가 붙인 전단지는 항상 떨어져 있거나 훼손되어져 있었기 때문에 사장은 그를 채용하길 싫어했고 욕과 함께 폭언까지 써가며 떼내려고 하지만, 그때마다 승철은 자존심을 다 접고 "잘 할수 있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뇌이며 머리를 숙인다. 친구 집에 얹혀 사는 그에겐 이 일만이 유일한 일거리였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없으면 그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기가가 더 힘들어졌다. 그래서 사람들의 무시와 구타는 이제 익숙해질 정도로 참고 또 참았다. 그래야만 힘든 하루하루를 버텨낼수 있을것 같았다. 

같은 탈북자인 친구 경철 에게 얹혀 사는 승철에게 유일한 마음의 안식처는 교회였는데, 더 정확하게는 성가대의 숙영이었다. 그녀를 남몰래 짝사랑해온 승철은 그녀의 뒤를 쫒게 됐고, 노래방에서 일하는 걸 안 순간 그 곳에 취업하게 된다. 다행히 이번엔 그의 주민번호가 문제되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취업이 됐는데, 승철에겐 일자리 보다도 그녀와 함께 있다는 것이 더 좋았다. 하지만 여성도우미를 희롱하는 손님과 다툼을 벌이고, 노래방에서 여성도우미들과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에 숙영은 오해를 하고 그를 나쁜 사람이라며 비난한다. 자신이 노래방에서 일하는 걸 교인들에게 알리지 말라 하고, 찬송가를 노래방에서 부르는 걸 마치 큰 죄처럼 힐난하는 그녀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 싶다. 어눌해 보이고 의사표현이 확실하지 않은 승철을 스스로 자기 멋대로 판단하고 결론을 내는 숙영의 모습은 승철에게 또 하나의 고통을 안겨준다.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보이는 승철은 약자의 모습이다. 최극빈층으로 살아가는 그를 도와주려는 사람보다는 짓밟고 괴롭히려는 사람들만 많다. 승철이 붙이는 전단지가 자신들의 구역에 붙어있자 만나기만 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두명의 불량배, 현수막이 승철의 몸값보다 더 비싸다며 일당도 제대로 지급해주지 않는 전단지 사장, 승철을 가장 많이 도와주는 것 같지만 은근히 무시하고 답답해하는 친구 경철까지 말이다. 경철은 같은 탈북자들을 상대로 사기까지 치는데 약자가 또 다른 약자를 상대로 하는 일이라 더 악질스럽다.  

그래도 승철은 자신의 속내를 내비치지 않고 힘들다는 내색도 하지 않은 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발악을 했다. 그래서 3만원 주고 산 백구에게 의지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자식처럼,친구처럼 백구를 챙기는데 이 모습이 볼썽사나운 경철이 백구를 버리면서 참고있던 승철의 분노가 터져나오는 계기가 된다. 북한에서 살던 시절, 식량 하나 때문에 친구를 죽였던 아픈 과거를 가진 그는 이제 이 곳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폭행을 당한다면 똑같이 되갚아주고 사기를 치는 친구에게 똑같이 해주고 맥주캔 2개를 3잔으로 만들어야 하는 노래방 일도 잘 해나가려고 한다. 친구 대신 돈을 택하고 오래도록 쳐다보기만 했던 양복을 사고 머리를 자른 그는 이제 더 이상 머리를 조아리는 일도 없을 것처럼 보인다.  

이 사회는 미련스러운것 보다는 조금은 비열하지만 강한 사람들만이 살아남을수 있는 구조이고, 그런면에서 승철의 변화는 무언가 잃어버린 듯한 아쉬움을 전해주지만 약간은 희망도 엿보게 한다. 그렇게라도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라는 응원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벌어진 비극은 충격적 이어서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그 자리에 계속 서 있는 승철의 모습처럼 나 또한 미동도 할수 없었다. 가진게 별로 없던 승철에게 또 하나를 앗아가는 것 같아 너무 잔인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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