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의 눈 - Julia's Eye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앞이 보이지 않을만큼 깜깜한 어둠은 인간에게 근원적인 공포심을 안겨준다. 안전한 상황이라도 빛이 있을때와 없을 때의 심리 상태는 무척이나 다른데,그래서인지 공포 영화는 어둠에서 주를 이룬다. 그리고 이런 어둠의 공포를 극대화 시키는게 바로 소리 이다. 문에서 끼이익 소리가 날 때도 빛이 있을 땐 아무렇지 않은데 어둠 속에 있으면 온 신경이 그 소리에 집중되며 자꾸 안 좋은 상상을 하게 된다. 괜히 귀신이 있을것만 같고 그런데 이런 경험은 누구나 한두번씩은 해 봤을 것이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공포를 느끼게 되는건 인간이라면 자연스러운 반응인데, 외부의 어둠이 아닌 내 자신이 어둠속에 잠식당했다면 그 공포는 더 커지지 않을까. 이 어둠은 타인도 같이 겪는게 아니라 오로지 나 혼자만의 어둠이고 공포이고 외로움이다. 믿어야 할 사람과 위험한 사람을 오로지 느낌만으로 판단해야 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살수 없는 상황은 힘들게만 한다. 

여주인공 줄리아는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를 가진게 아니라 선천적 시력장애로 서서히 앞이 보이지 않게 되는 처지이다.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하고 기증자가 나타나 수술을 하며 치유될수 있기 때문에 희망을 가지고 살았고 지금껏 잘 살아왔다. 하지만 쌍둥이 언니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결국 시력을 상실하게 됐는데, 혼자 살던 언니가 자살했다는 비보를 듣게 된다. 쌍둥이는 서로의 교감이 큰 탓인지, 언니가 밧줄에 목을 매달아 죽는 순간 줄리아 또한 목이 졸리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비록 시력은 잃었지만 삶의 강한 의지가 있었던 언니인지라 줄리아는 의구심을 품게 된다. 이상한 느낌을 도저히 지울수 없는 그녀는 직감 하나만으로 단독 수사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낯선 이가 자신을 미행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심증은 굳어져만 간다.  

하지만 범인을 찾으려고 할수록 그녀의 눈은 급격히 나빠져갔고, 그럴수록 어둠에 대한 공포는 커져만 갔다. 남편은 줄리아의 건강을 지키기위해 더 이상 언니의 죽음에 관여하지 말라고 했지만 말을 듣질 않고 끝까지 추적하려고 한다. 그리고 언니에게 애인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둘이 머물렀다는 호텔까지 가 단서를 캐려고 한다. 줄리아에겐 앞이 조금이라도 보일때 범인을 찾아야만 했다. 스트레스로 빛보다 어둠이 많이 늘어나도 멈출수 없었고 시간이 부족했다.  

그러나 눈이 보이지 않게 된다는 건 큰 약점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범인이 언니와 함께 동행했음에도 사람들의 기억속에 흐릿한 안개처럼 잘 기억되지 않고 증거가 없는 상황은 해결의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게 했다. 아무리 평범한 인상을 가진 사람이라도 호텔,레스토랑의 직원 모두가 기억 못할린 없었다. 더구나 언니가 여행 당시 눈을 붕대로 감고 있었던 사실이 밝혀지는데, 보통 이런 차림새라면 눈에 띄기 마련이고 당연히 동행자의 인상착의도 기억하기 쉬웠다. 하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이 아무도 언니의 애인에 대해 또렷히 기억하지 못했다. 분명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았던 미스테리한 남자였다.  

하지만 딱 한 사람, 호텔의 청소부가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지하의 누추한 곳에 살며 손님들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하는 늙은 청소부는 그 남자처럼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아야 할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아무도 기억해내지 못하는 그 남자를 발견할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라는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 대가로 목숨을 내놓아야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결말을 보면 범인이 줄리아와 언니에게 행했던 일의 이유가 아무도 자신을 필요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간병인 이라는 직업을 가지며 여자들을 돕고 그러면서 존재의 이유를 찾았던 모양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여자들은 친절한 그에게 마음을 열었고 필요로 했다. 그래서 그는 여자들의 눈을 실명시키면서까지 곁에 두려고 했고 뒤틀린 사랑을 강요했다. 눈이 보이는 여자들, 그리고 사람들에겐 투명인간 이었지만 맹인에겐 절실한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기억하는 단 한 사람인 청소부에겐 죽음 뿐이었다. 범행의 증거를 남기지 않기위해 벌인 일이겠지만, 그를 알아봐준 단 한사람이었는데 말이다.  

형사의 도움 없이 줄리아 혼자 사건을 추적하는건 한계가 있었고, 거의 실명하게 된 상황 또한 그녀에겐 불리했다. 그리고 함께 사막에 가자는 약속을 한 남편이 의문의 자살을 하게 되고 남긴 유서의 내용이 충격적인 진실을 내포하게 되면서 줄리아로 하여금 모든 걸 놓아버리게 만든다. 그녀가 쫒던 진실이 결국 그런 것이었다니. 이제 완전히 어둠속에 들어가게 된 줄리아는 운 좋게 받게 된 수술을 통해 재활에만 집중하려고 한다. 이제 온전히 혼자 남겨진 그녀는 다시 빛을 보게 될 날을 꿈꾸며 간병인 이반의 도움을 받게 되는데, 카메라는 그의 얼굴을 잡아주지 않는다. 영화 중반에 줄리아가 병원에서 이반 이라는 명찰을 찬 간병인을 우연히 보게 되고 그때 얼굴이 나오는데 굳이 안나와도 될 장면이라 이상하게 여기긴 했다. 그런데 나중엔 얼굴만 교묘히 안 나오는걸 보면서 진짜 이반이 아니라 범인이 간병인 행세를 하는구나 싶었는데 예상이 맞았다. 그 사실이 크게 중요하게 보이진 않지만, 얼굴이 보이지 않음으로써 범인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지긴 했다. 마치 귀신처럼 아무에게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날쌔게 움직이니 도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일까 궁금했다. 그래서 막상 얼굴이 나올땐 맥이 빠지긴 했지만 말이다.  

이제 영화는 줄리아와 양의 탈을 쓴 범인의 관계에 집중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줄리아에게 이반은 한없이 고마운 사람이었다.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공허한 마음에 이반은 따뜻하게 들어왔고 사랑인지 우정인지 모를 감정까지 준다. 의심스러운 행동을 보이는 이웃과 언제 자신을 찾아올지 모르는 범인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수 있게 해주는 이가 이반 이었다. 그렇기에 이반의 정체를 알게 됐을 때의 놀라움과 두려움은 컸을 것이다. 그의 본 모습을 알고 난 후에 벌이는 둘의 심리 싸움은 꽤나 긴장감 있게 흘러가는데 카메라 플래쉬를 이용한 장면은 압권이었다. 미드에서 비슷한 장면을 보긴 했지만, 범인이 처음 줄리아를 만났을 때 플래쉬를 이용해 도망 갔듯이 이젠 줄리아가 그걸 이용해 정체를 밝혀낸 것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한번도 사람들에게 보여지지 않는 그가 결국 많은 형사들 앞에서 똑똑히 모습을 드러내게 됐으니 말이다. 그때의 범인은 분명 그 자리에 존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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