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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외계인: 폴 - Paul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외계인 폴의 인상착의는 외계인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전형적인 모습을 띄고 있다. 몸보다 큰 머리에 커다란 아몬드 눈을 갖고 있고 팔은 땅에 닿을만큼 기다랗다. 오랫동안 소비되어 온 외계인의 형태인데, 재미있게도 폴의 말투와 행동은 외계인의 탈을 쓴 지구인 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인간화 되어있다. 지구에 온지 60년이나 됐기 때문인지 영어도 완벽하고 입도 걸걸하다. 골초에 좋아하는 음악취향도 분명하고 춤 추고 인간과 어울리는걸 좋아한다. 누군가에게 쫒기는 상황임에도 침착함을 유지하고, 자신이 외계인 이라는 사실을 망각했는지 시시때때로 인간들에게 모습을 드러내 충격을 던져주니 괴짜라는 생각도 든다.
어찌나 여유롭고 느긋한지 자신을 보고 경악하는 지구인들을 잘 다독이는데(?) 그 모습을 보고있자면 "외계인 처음 보나?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몇십년 동안 내 얼굴을 영화나 각종 인쇄물에서 봤을텐데 말야. 침착하라구!" 라고 하는것만 같다.
그런 폴이 도망중에 만나는 이들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SF에 열광하는 영국 괴짜들이었다. UFO에 관심이 많고 외계인을 만나는게 평생 소원이며 만화,소설에 푹 빠져사는 이들은 어린시절부터 꿈이었던 SF코믹콘 참가를 위해 미국까지 왔다. 일반인들은 절대 이들의 말을 이해못할텐데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재미있다. 호텔 종업원에게 게이커플 이라는 오해도 받고, 자신들의 여행 일정을 이야기해도 알아듣질 못한다. 일반인과 오타쿠가 사는 세계는 생각보다 먼 모양이다.
꿈에 그리던 코믹콘에서 실컷 구경도 하고 좋아하는 작가에게 사인도 받고 자신들과 같은 취미를 가진 이들을 만나며 으쌰으쌰해진 괴짜커플의 다음 목적지는 외계인 연구 비밀 구역에 가서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UFO가 출몰되는 곳을 찾아가 인증샷을 찍으며 영국에 돌아가 오래오래 이야기 하게 될 추억거리를 만드는 그램과 클라이드 이다. 그런데 이 여행길에서 진짜 외계인과 조우하게 된다. 외계인이 있다는걸 믿고 항상 꿈꿔왔던 그들이지만 미국 도로에서 갑작스럽게 만날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것도 담배연기를 날리며 영어를 쓰는 외계인 이었으니 보고도 믿기 힘들 것이다.
이 놀라운 만남에 클라이브는 오줌을 싸며 기절하고 그램은 자신의 항문에 이상한 짓은 하지 않을까 걱정을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외계인은 E.T 처럼 착하거나 인간을 납치해 해부하고 지구를 정복하려는 나쁜 이미지로 나뉜다. 대부분은 인간을 해치려는 이미지가 큰데, 나쁜 외계인들이 벌이는 일들은 우리가 생각해낼수 있는 가장 끔찍한 방법들을 상상하기 때문에 괜한 공포심만 커져간다. 이런 걱정때문에 그램과 클라이브는 호들갑을 떨며 공포스러워 하는데, 이런 모습에 폴은 "또 이런 반응이야?"라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묻는다. "대체 인간의 항문을 왜 검사해야 하는건데?"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초능력을 사용할줄 알고 인간보다 월등한 과학진보를 이뤄냈다고 여겨지는 외계인들이 왜 굳이 인간의 항문을 검사할까? 오히려 검사하고 해부하고 싶어하는건 인간이었다. 60년간 감금된 채 지구의 외계인 문화에 이바지하고 다양한 정보를 쏙쏙 빼먹은 인간들은 더 이상 얻을게 없어지자 마지막으로 폴의 몸을 원했다. 오랫동안 함께 해 왔음에도 폴은 친구가 아니라 외계생명체일 뿐이었고, 그의 뇌를 통해 더 많은 실험을 해보고 싶어했다. 이런 계획을 알고 폴을 탈출시키며 도와주는 친구가 없었다면 꼼짝없이 수술대위에 누워있었을 것이다. 잔인하고 위협적인 존재는 외계인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인간의 맹목적인 믿음과 종교는 그 어떤 무기보다도 사람을 무섭게 만드는데, 여행길에서 만난 기독교 원리주의자 루스의 모습이 그렇다. 어린시절부터 아버지의 교육을 받아서인지 지금껏 욕 한번 하지 않고 순종하며 살아왔던 그녀는 성경이 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기 때문에 외계인은 당연히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하나님이 외계인을 창조했다는 말은 성경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루스의 발언에 발끈한 폴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루스로 하여금 자신이 믿고 있던 세계가 와르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한다. 쫒기는 신세에 모습까지 들켜버렸으니 루스를 데리고 다닐수밖에 없었다. 물론 루스에게 감정을 느껴버린 그램의 부탁때문에 죽이는 대신 데리고 다닌 거지만 말이다.
아무튼 평생동안 각종 규제에 억압받으며 살아왓던 루스는 충격과 동시에 자유로움을 느낀다. 아버지의 곁과 집을 벗어나 처음으로 세상 밖으로 나온 그녀는 이제 무슨 일을 벌여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이제 루스가 하는 경험은 모두가 처음이다. 첫 키스, 첫 욕(?),첫 담배 등등 말이다. 이제 괴짜친구와 외계인,루스까지 동행하게 된 여행은 검은옷을 입은 사내들과의 추격전이라기 보다는 즐거운 게임처럼 보인다. 마지막엔 총도 쏘고 폭발같은 위험한 순간도 있지만 긴장감은 제로라서 그런가보다.
제목은 황당한 외계인 이지만 그램과 클레이브, 그리고 루스 같은 인물들이 더 황당해 보이는건 왜 일까? 오히려 머뭇대는 이들에게 "한번쯤 주사위를 굴리는 모험이 필요해."라는 말을 해주고, 처음 지구에 왔을 때 자신을 구해준 소녀를 찾아가고, 총에 맞은 친구를 살리기위해 최선을 다하는 폴이 더 인간처럼 느껴진다. 폴과 만난 사람들은 그로 인해 더 나은 삶을 살게 됐다. 폴의 중매로 결혼을 하게 된 요원, 이 사건을 계기로 작가로서 성공한 그램과 클라이드, 폴이 치유해줘서 시력을 되찾은 루스의 새로운 인생까지 말이다. 폴 또한 이들의 도움으로 인해 그토록 가고 싶었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됐으니 잊지못할 좋은 추억이었다. 담배를 좋아하던 폴이 고향으로 돌아가 금단증상을 보이진 않을지 궁금해진다. 그래도 좋은 친구가 곁에 있으니 든든하긴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