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스완 - Black Swa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치열한 경쟁을 뚫고 더이상 조연이 아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주연으로 우뚝 설 수 있는 기회는 아무에게나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특히 예체능 계열은 유독 그러해 보이는데 나이에 대한 제약도 많고 젊은 나이에 재능을 인정받아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면 어느 새 재능있고 나이 어린 후배들에 의해 뒤로 밀리기 쉽상이다. 그러다 서서히 잊혀지거나 세월에 의해 강제적인 은퇴를 당하기도 한다. 그나마 한번이라도 빛날수 있었던 무용수는 행운아 일지도 모르겠다. 이 엄격한 승부의 세계에서 삼류 댄서가 되느냐 프린세스가 되느냐는 기회를 잡느냐 마느냐로 갈리게 된다. 어쩌면 한번도 찾아오지 않을 그 기회를 잡기위해 땀과 눈물을 쏟으며 혹독하게 자신을 다그치는 이들은 과거에도,지금도,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뉴욕 발레단의 니나(나탈리 포트만)또한 기회를 잡고 싶어하는 수많은 발레리나중 한명으로 어머니의 지극한 지원을 받으며 오로지 발레만 생각하며 산다. 애인도 없고 극단과 집 만 오가는 단순한 삶 속에서 니나는 춤을 통해 자신을 꽃피울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살아간다. 오랫동안 바라던 기회는 단장이 새롭게 재해석한 '백조의 호수'을 새 공연으로 택하면서 찾아오는데, 안타깝게도 이번에도 별 희망이 없어 보였다. 감독 토마스(뱅상 카셀)는 순수하고 연약한 백조만을 연기한다면 니나를 주저없이 택하겠지만, 흑조를 같이 연기해야 하기에 그녀를 선택할수 없다고 했다. 니나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지만 흑조의 어두운 면을 연기하기엔 비전문가인 내가 봐도 많이 부족해 보였다. 니나에겐 범생이 이미지만 있을 뿐, 도발적이고 유혹적인 흑조의 이미지는 찾아볼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토마스의 갑작스러운 키스에 놀란 니나가 깨물어 버리자, 토마스는 의외의 모습을 보여준 그녀를 주인공으로 택하게 된다. 그야말로 충동적이고 무모한 결정이었는데 토마스는 니나에게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또 다른 면을, 도발적이고 유혹적인 면을 볼수 있을 거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본 모양이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엄마의 품 안에서 공주님으로 살아온 연약한 니나에겐 릴리처럼 카리스마와 무대 장악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 흑조를 연기한다고 하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백조를 연상시켰고 숨겨진 잠재력을 끄집어 내지 못했기 때문에 점점 릴리와 비교가 됐다. 그토록 꿈꿨던 역할 이었지만 이젠 릴리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한다는 생각과 내게 언제나 헌신했던 어머니에게서 같은 무용수로서의 질투심을 느끼며 점점 겉잡을수 없는 상태가 되버린다. 어머니의 말을 잘 듣던 착한 딸은 이제 그동안 꾹꾹 눌러 담았던 욕망을 분출하며 흑조가 되어가는데 등에 난 상처에서 깃털이 나오는 환상까지 합쳐지며 완벽한 흑조의 모습으로 바뀌어져 간다. 그러면서 니나는 지금 모습이 실제인지 환상인지 헷갈려한다. 안 좋게 표현하면 반 미친 상태로, 한번의 공연을 위해서 올인하게 되는데 그만큼 절실했던 것 이다. 마치 내일의 해는 뜨지 않는다는 사람처럼 아픈것도 잊고 상처가 나서 피를 흘리는 것도 잊은 채 황홀경의 상태에서 연기를 하고 춤을 춘다. 가녀린 백조의 모습에서 약간의 실수를 했지만, 2막이 시작되고 흑조가 되어가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소름 돋게 하고 그 감동은 관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녀 말대로 정말로 완벽한 공연이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 한번의 공연을 위해 그녀가 치른 댓가는 무척 컸지만 충분히 감수할 만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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