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사랑합니다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강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우리 사회가 많이 이야기 하지 않았던 노인들의 사랑을 가슴 따뜻하고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원작을 충실히 재현한 영화는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를 바탕으로 너무 신파적으로 흘러 가지도 않고 적절한 유머도 잃지 않아 2시간동안 행복감을 느끼게 해줬다. 영화가 끝날 즈음엔 여기저기서 훌쩍 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나 또한 눈시울이 시큰해 졌는데, 사랑하면 함께 있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겐 조금은 이해할수 없는 결말 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서로 사랑하고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큰데도 죽음으로 인한 이별이 두려워 미리 헤어지는 모습이 약해 보이기도 한다 죽는 순간까지 함께 하며 좋은 시간을 갖는게 우리가 원하는 '해피엔딩'인데, 송이뿐 할머니와 김만덕 할아버지는 '새드엔딩'을 택하니 보는 사람 입장에선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난 아직 그 나이대를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선택을 완전히 이해할수는 없지만 그 마음을 조금은 알수 있을 것 같다. 눈을 뜨고 꿈을 꾸는 것 같은 사랑이었기에 헤어질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심정 을 말이다.

언제 죽어도 어색하지 않은 나이를 사는 노인들에게 찾아온 사랑은 젊을 때의 사랑과는 그 무게가 다를 것 이다. 살 날 보다 죽을 날이 더 가까워 진 나이이기에 뒤늦게 찾아온 사랑은 그만큼 더 달콤하고 아까웠을 것 같다. 이 황혼의 사랑을 겪는 이들은 송씨 할머니와 김만덕 할아버지인데 둘은 살아온 날도 성격도 모두 다른 면을 띄고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계신 고향을 떠난 뒤 불행했던 결혼 생활을 거치고 가족,친구 없이 홀로 살고 있는 송씨(윤소정) 할머니는 평생을 외롭게 살아왔다. 조용한 성격의 송씨는 폐품을 팔아 근근히 살아가고 있는데, 어느 날 우유 배달 오토바이가 친 돌멩이에 맞는 일이 생긴다. 오토바이의 주인은 평소 괴팍한 성격과 큰 목소리와 욕을 입에 달고 사는 김만덕 할아버지 였는데 미안하다는 말 대신 목소리가 작은 할머니에게 되려 큰 소리 이다. 하지만 겉모습과는 달리 은근히 속정이 깊은 할아버지는 우유 하나를 건네주고, 평소 오며가며 안면이 있었던 두 사람은 그 때부터 연애아닌 연애를 하게 된다. 보통 노인들의 연애 하면 주책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둘의 연애(?)를 보고있자면 순수하고 귀여운 모습에 10대 시절의 풋사랑같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특히 겉으론 무뚝뚝한 할아버지가 보이는 애정공세는 웃음을 자아낼 만큼 귀여웠다. 송씨를 좋아하는 마음을 우유팩에 담아서 건네 주고, 이름이 없다는 말에 손녀가 근무하는 동사무소에 데려가 이뿐 이라는 이름을 만들어 주민등록증을 발급해주고 독거노인 지원비를 받도록 해주는 할아버지에게 송이뿐 할머니는 그저 고맙고 수줍어 한다. 평생 이름도 없이, 도움도 없이 살아야 했던 송씨에겐 난생 처음 받아보는 관심과 사랑이었다. 그래서 주차장 관리요원 장군봉(송재호)할아버지에게 한글을 배우며 처음으로 쓴 글이 '김만석' 이었고, 고맙다는 편지를 쓴 것이다. 

병 으로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김만석 할아버지는 결혼 생활 내내 무뚝뚝한 말과 행동으로 아내에게 상처를 준게 미안했기에, 송이뿐 할머니에겐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내보이려고 한다. 당신 이라는 호칭은 죽은 아내만을 위한 것이기에 송씨에겐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말로 고백을 하는데, 감동적인 그 장면은 무척 따뜻하게 그려진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이 되었던 송이뿐 할머니. 하지만 그렇기에 두려움이 생겼나 보다.  김만석 할아버지가 영영 떠나는 순간을 지켜보느니 헤어져서 홀로 좋았던 추억을 곱씹으며 사는 길을 택했던걸 보면 말이다. 그런 송이뿐 할머니의 결정에 화를 내면서도 결국은 받아들이고 이해해주는 김만석 할아버지를 보면서 사랑의 깊이를 짐작할수 있었다. 사랑하는 이를 곁에 두는 것만이 애정이 아님을, 정말로 사랑한다면 상대방의 마음을 헤어릴 줄 알아야 함을 김만석 할아버지를 통해 배우게 된다.   

두 분의 사랑이 풋풋하다면 장군봉,순이 부부는 함께 한 세월의 깊이만큼 아름다운 사랑을 보여준다. 결혼 주례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평생 사랑하며 서로를 아끼는 군봉 할아버지네를 보고있으면 송이뿐 할머니의 말처럼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치매에 걸린 아내를 지극히 간호하고, 오손도손 하루일과를 이야기 해주며 남편이자 친구로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주는 두 분의 모습이 따뜻하면서도 애처로웠다. 장성한 자식들은 생활이 바쁘다는 이유로 먼저 찾아오지 않고, 간만에 온 막내딸은 돈을 빌려달라며 손을 내민다. 그마저도 용건을 끝나자 어머니를 찾아 뵙지도 못하며 바삐 가는데 그런 딸에게 책망 대신 더 주지 못함에 안타까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특히 아내와 부부가 됐고 아이들을 낳으며 '가족'이 됐지만 이젠 다시 '부부'가 됐다는 말은 무척 크게 와 닿는다.  

자식들이 나쁜 마음이 있어서 부모님을 못 모신건 아니었다. 여러 이유와 바쁜 생활 속에서 미처 부모님을 모실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부부는 둘만 남게 되었고, 몸이 아픈 아내를 돌보는건 오로지 남편 뿐 이었다. 하루에 3시간을 자고 힘든 주차관리 일을 하면서도 행여 아내가 잘못되진 않을까 걱정으로 사는 군봉 할아버지의 사랑이 눈물겨웠다. 젊었을 때 보다 지금이 더 예쁘다고 말해주는 남편이 있는 순이 할머니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일까. 죽음마저도 갈라 놓지 못한 군봉,순이 부부의 모습에서 진정한 사랑과 부부애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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