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 - No doubt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사람들은 선과 악이 뚜렷하게 분리되는걸 좋아한다. 그래야 선이 악을 물리치는 결말에 조금의 찜찜함도 없이 통쾌함을 느낄수 있으니 말이다. 범죄자는 반드시 죄가 있어야 하고, 관객은 당연히 피해자의 심정으로 영화를 봐야만 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시종일관 누구 편에 서야할지 망설이게 한다. 처음엔 당연히 충식의 입장에서 보다가, 계속 당하기만 하는 세진이 안되기도 하고, 또 세진이 진짜 범인 같은 정황에 충식의 분노가 이해가 되는 등 점점 누구에게 감정이입을 해야 할지 모르게 된다. 그러다 깨닫게 되는건, 이 영화는 그렇게 간단하게 볼수 있는게 아니라는 것 이다. 영화의 제목처럼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낳은 광기와 편견에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우리는 충식과 경찰, 마을 사람들을 비난 할수 있는가. 우리는 그렇지 않을거라고 확실히 답할수 있는가. 

여자아이가 실종됐고 우연히도 새로 이사온 총각이 아동 성범죄 전과가 있다는게 밝혀졌다. 경찰은 날마다 찾아오는 충식(김태우)에게 넌지시 그 사실을 알려준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경찰의 부주의함은 아이를 잃어버려 제정신이 아닌 충식에게 복수해야 할 가해자를 만들어 줬다. 세진(이정진)이 이사오기 전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젠 사랑하는 딸이 실종됐다. 이걸 단순한 우연이라 치부하고 무시하기란 쉽지 않다. 최근 우리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아동성범죄 사건을 통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추악한 습성을(평생 고칠수 없다는걸) 알고 있었다. 세진이 멀쩡한 청년인줄 알았는데 아동 성범죄라는걸 알게 된 후의 사람들의 반응은 경악 그 자체였다.

확실한 증거가 없어도 여자아이의 실종, 이웃의 성범죄자 이 두가지 사실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결과가 도출된다. 세진이 유죄냐 아니냐를 가늠하는것은 더이상 필요치 않다. 아이를 잃은 아비에겐 울분을 토해낼 가해자가 필요했고, 경찰에겐 범인이 필요했고, 이웃들에겐 확실한 답이 필요했다. 조용한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가해자 가족을 이 곳에서 쫒아내기만 하면 다시 평화로운 곳이 된다고 믿으며 말이다.  

조용히 살고싶었던 세진의 바램과는 달리 마을 사람들은 이 가족을 멀리하기 시작한다. 충식은 세진의 전과를 프린트해 마을 곳곳에 붙이고, 주변을 서성이며 가만두지 않겠다는 엄포를 놓는다. 키우던 개를 죽이고 세진을 물속에 처박아 놓기도 한다. 세진이 고소한다면 할 말 없을 정도로 괴롭히지만 마을 사람들과 경찰은 오로지 충식의 편이다. 그는 아이를 잃은 아비가 아닌가. 그리고 이 모든 난동에도 세진이 아무 항변도 하지 않는다는건 켕기는게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세진의 상황보다 더 끔찍했던건 세진 가족, 특히 유치원 선생님인 누나의 처지였다. 세진의 범죄 때문에 살던 곳을 떠나 이 마을로 오게된 가족은 또 한번 세진으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됐고, 그건 누나 인희에게 참을수 없는 것 이었다.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엄마를 따라 이곳으로 왔고, 좋아하는 유치원교사 일을 하며 마음을 잡고 있는데 또 다시 같은 일이 발생해 해고될 위기에 처했으니 그 마음이 어떻겠는가. 아들을 감싸는 어머니를 이해할수도 없고 더이상 참을수도 없다. 동생의 더러운 범죄 때문에 모든 걸 잃어야 할 처지에 놓은 인희는 결국 가족 곁을 떠난다. 체념한 듯 "내가 졌어"라고 말하며 짐을 꾸리는 그 모습에서 가해자 가족으로 살아야 하는 고통이 느껴진다. 같은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당해야 했던 불이익과 편견에 더이상 맞설 용기도 힘도 사라진 그녀였다.  

영화 속 경찰들이 좀 더 유능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작은 동네라 피해자와 오래 알고 있는 이웃이니 사건 정보도 쉽게 알려주기도 했고, 충식이 세진에게 해코지를 해도 제재를 가하거나 진정시키지 못했다. 모든것을 잃어버린 사람은 무슨 짓이든 할수 있다는걸 염두해 뒀어야 했다. 그리고 범인을 잡기위한 증거를 좀 더 발빠르게 채집했어야 하지 않나 싶다. 다양한 요인을 추리하고 용의자를 선별하는게 아니라 처음부터 딱 한명의 범인을 정해놓았기에 넓은 시야를 가질수도 없었다. 문형사의 "범인을 잡고 싶은거에요? 아니면 그놈을 잡고 싶은거에요?"가 모든 상황을 정리해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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