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 Red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브루스 윌리스 하면 액션 영화이다. 나이가 들어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패이고 근육이 쪼그라들어도 브루스 윌리스를 액션 영화가 아닌 장르에서 본다는건 상상도 할수 없다. 그렇다고 젊은 액션배우들과 경쟁하기 위해 보톡스를 맞으며 발버둥치는 모습은 보고싶지 않다. 세월이 흘러가는대로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고, 그 나이에 맞는 액션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 떠오르는 액션 스타들도 좋지만, 아무래도 젊은 시절부터 함께 해온 배우에게 애정이 가는건 어쩔수 없다. 더 이상 날쌘 모습은 아니지만 그래도 "난 아직 죽지 않았어!"라고 외치는듯한 브루스 윌리스의 액션 영화《레드》. 보통 이상만 해줘도 즐겁게 볼수 있을것 같았다. 

CIA 최고의 특수요원 프랭크(브루스 윌리스)는 이제 은퇴해 연금이나 타 먹는 신세이다. 워낙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을테니 범죄와는 상관없는 평온한 날을 즐길법도 한데 그의 일상을 쫒아가보면 시체놀이나 다름이 없다. 하루동안 말한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고 언제나 혼자 일어나 밥먹고 쉬고 자는게 전부이다. 그는 이웃과의 소통도 별로 없고 취미생활을 함께 할 친구도 없는 외로운 중년일 뿐이다. 세계 이곳저곳을 누비며 임무를 수행했던 화려한 과거와 너무도 대비되는 이 생활이 얼마나 지겨울까.그런 프랭크에게 유일한 낙이라고는 연금 회사에 전화를 해 담당 직원 사라와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제때 도착하는 연금수표를 찢고나서 "수표가 안 왔어요"라는 핑계를 대며 통화를 하는데, 그녀도 싫지 않은 분위기다. 한번도 얼굴을 보지 못한채 서로에 대한 궁금증을 키워나가는 두 사람. 그런데 뜻하지 않는 사건으로 인해 두 사람은 멋진 첫 만남 대신 인질극(?)을 벌이게 된다.  

다른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CIA 최고 요원은 결코 평화로운 은퇴생활을 즐기지 못한다. 실력이 너무 뛰어났기에 적도 많았고, 윗선에서 위험인물로 취급해 처리하려고 하니 말이다. 프랭크 또한 CIA에 의해 제거될 처지에 놓였고, 이유도 모른채 쫒기게 된다. 할일 없어 보이던 중년의 아저씨는 이제 명민하고 두려울것 없는 요원으로 변신했으니 오랜만에 맛보는 희열이었을지 모르겠다. (목숨이 걸려있는 위험한 상황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동료들과 오랜만에 만나니 살아있다는 기쁨도 느꼈을지도.   

말기암 진단을 받고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하려고 하는 조(모건 프리먼), 폭탄전문가이자 엉뚱함으로 한시도 긴장을 늦출수 없게 만드는 마빈(존 말코비치),남자 못지 않는 실력을 갖춘 킬러계의 멋진 대모 빅토리아(헬렌 미렌)이 프랭크와 함께 한다. 그리고 자신 때문에 위험에 처하게 된 사라를 지켜주며 자신을 제거하려는 이들을 없애기위한 계획을 세운다.  

아직도 로맨스 소설을 읽으며 가슴 설레어하고 스파이 같은 영화,책 속 주인공에게 이끌리는 사라는 프랭크가 CIA 전 요원이라 밝히자 믿지 못한다. 오히려 다짜고짜 자신을 납치한 그를 사이코 범죄자로 여겨(누구라도 그럴테지만) 도망치려 하는데 나중에 그가 한말이 사실임을 알고 쫒기게 되자 금세 프랭크에게 푹 빠져든다. 얼마전 읽은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과 같은 상황에 처했으니 두려움 보다는 짜릿한 즐거움이 더 컸다. 프랭크는 자신을 든든히 지켜주는 남자주인공, 연금회사 직원으로 평범한 삶을 살아오던 자신은 적들에게 쫒기는 여주인공이 되었으니 말이다! 처음엔 대머리 라는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제 프랭크에게선 연금 수표가 안들어왔다고 전화를 하는 아저씨의 모습은 없었다.    

자신들을 죽이려고 하는 새파랗게 젊은 후배들과 싸움을 벌이면서도 오히려 승리를 이끌어내는 프랭크 사단. 손을 놓은지 오래됐음에도 전설은 전설인 모양이다. 오랜 앙숙이었던 러시아 대사를 만나 도움을 요청하고 CIA 건물에 들어가 원하는 정보를 손에 넣고 배후까지 쉽게 알아낸다.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희생을 감수해야 했지만, 노익장을 과시하는 이들의 반격은 시원스럽기만 하다. 특히 홍일점인 빅토리아(사라는 총 한번 쏘지 않고 그저 따라다니기만 하니)의 카리스마는 굉장한데, 우아한 복장으로 총을 쏘는 장면을 보면서 이 영화의 액션 주인공은 빅토리아가 아닐까 싶게 만든다. 저절로 누님 소리가 나오게 만든다.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함께해서 더 즐거웠던 영화가 된 것 같다. 스릴넘치고, 화려한 액션을 기대하고 본 사람에겐 맥 빠질수 있지만 오히려 이렇게 귀여운(?) 액션 영화가 보고싶을때가 있다. 그 주인공들이 좋아하는 배우들이 대거 나온다면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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