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밑 아리에티 - The Borrower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지브리 스튜디오의 그림은 언제나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해준다. 몽글몽글한 그림체와 꿈 꾸는 듯한 멜로디의 음악은 언제나 일품이었고, 자연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는 재미와 감동까지 준다. 매 작품이 나올때마다 기대감을 갖게 하고 높은 인기로 이를 증면하는건 단순한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한 작품안에 모든 것이 총 망라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최근엔 그런 장점과 힘이 좀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보통 이상은 해주고 있는지라 자연스레 찾게 된다. 내용이 부실해도 그림과 음악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했다고 느낄만큼 만족감을 주는 요인이 풍성하기도 하고,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기전《마루 밑 아리에티》의 평을 살펴보니 대부분 스토리가 밋밋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래서 스토리엔 많은 비중을 두지 않고 영화를 보게 됐는데, '신나는 모험'이나 빠른 이야기 전개를 원하는 관객에겐 지루할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겐, 비록 큰 규모의 스펙타클한 내용은 아니지만 마지막에 깊은 여운을 주는 이 작품이 마음에 쏙 들었다. 강하고 톡 쏘는 맛이 아니라 은은한 맛을 준다고나 할까. 주된 이야기 말고도 소품 그림과 배경이 황홀할 정도로 예뻐서 눈요기도 된다.

무엇보다 이런 작품을 내는 그들이 부러웠다. 10cm 정도 크기의 소녀 아리에티와 인간 소년 쇼우의 짧은 만남 이야기 만으로도 이렇게 풍성한 느낌을 줄수 있음을, 소인과 인간의 공존 이라는 소재로 더 화려하고 크게 만들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은 용기가와 능력이, 이런 이야기에 많은 관객들이 찾는 일본의 시장이 부러웠다. 시장 규모 자체를 비교할 수 없을만큼 우리나라는 열악하지만, 언젠가는 지브리 스튜디오 처럼 모든 연령대가 재미있게 볼수 있는 작품이 많이 나오지 않을까 바래본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인간의 물건을 빌려 쓰는 소인 아리에티 가족이 등장한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쇼우는 수술을 받기 전 요양을 위해 할머니집에 오게 되는데, 첫 날 마당에서 풀숲을 헤치는 작은 인간을 발견하게 된다. 어머니가 어린 시절에 봤다는 소인을 직접 목격하게 된 쇼우는 아리에티와 친구가 되려고 하지만, 아리에티 가족에겐 '인간의 눈에 절대로 띄어선 안된다'라는 규칙이 있었다. 아리에티는 쇼우가 자신을 보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안심하지만 그건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인간의 집 마루 밑에 집을 짓고 인간의 물건을 빌려 생활하는 그들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존재를 들키지 말아야 했지만 쇼우에게 발각 된 것이다.

이에 아리에티 가족은 정든 집을 떠나기로 결심했고 아리에티는 부모님에게 죄송한 마음 뿐이다. 그래서 쇼우가 전해준 편지와 각설탕도 받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려고도 하지 않는다. 설령 나쁜 마음을 먹지 않는 쇼우일지라도 말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종족으로 남아야 했기에 인간에게 들킨 이상 숨어버리는건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인간에 비해 너무도 작았기에 대항할수 있는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는 쇼우네 집 가정부에 의해 여실히 증명된다. 아리에티 종족이 조심한다고는 했지만 그동안 쇼우네 어머니,할아버지 등에 의해 몇번 노출된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직접 영국 전문가에게 의뢰해 아름다운 인형의 집을 만들고 소인들이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렸지만 평생 볼수 없었고, 어머니도 어린시절 딱 한번 본게 전부였다. 마치 환상을 본 것 같았기에 그들을 다시 만나고 존재한다는걸 증명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가정부는 발견하자마자 유리병에 가두고 벌레퇴치 회사에 의뢰를 하게 된다. 가정부에게 아리에티 종족은 인간의 모습을 한게 아니라 진귀한 구경거리 였을 뿐이다.  

그녀가 보인 사악한 미소와 행동은 악당의 모습 이지만, 그렇다고 비난할수도 없다. 내 눈 앞에 10cm도 안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든 붙잡고 싶어 할 테니까. 내 딴에는 관심을 표현하는 것일테지만 소인들에게 폭력이고 위험임을 빨리 깨닫진 못할 것 같다. 그래서 아리에티가 처음 만나고 발각 된 사람이 쇼우라는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쇼우도 아리에티 가족을 돕는 답시고 그들의 지붕을 뜯어내는 등 의도치않은 폭력을 행사하고 가정부에게 들키는 빌미를 제공하지만 말이다.   

약한 몸 때문에 친구도 없고 곧 죽을거라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쇼우에게 아리에타는 잔혹한 호기심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 친구로서 다가간다. 그러면서도 이제 얼마 남지않는 아리에티 종족이 지구에서 사라진 많은 동물처럼 멸종할 거라는 잔인한 말도 서슴치 않는다. 아리에티보다 몇백배는 더 큰 자신이 죽음으로 가고 있고 소멸되니, 작디 작은 아리에티 종족이 사라지는건 당연하다고 말이다. 그런 쇼우의 말은 아프지만 거짓말은 아니다. 몇명 더 있기는 하지만 예전에 비해 줄어든건 사실이었고, 그래서 야생 소년 스피라를 만났을 때 반가워 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종족수가 줄어든다고 비관하고 살기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나약한 마음을 먹지도, 인간의 도움을 원하지도 않은채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자신이 도와줘야 할 친구라 생각했던 아리에티에게서 오히려 삶을 포기하지 않는 강한 모습과 살아갈 용기를 얻은 쇼우. 아리에티는 어쩌면 쇼우에게 손을 내밀고 아름다운 인형의 집에서 살도록 부탁할수도 있었다. 인간에게 들켰다고는 하지만 잡히지 않고 잘 숨어 지낸다면 안락한 집에서 살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작은 가족은 과감하게 더 큰 세상을 만나기로 결심한다. 아버지의 아버지 세대가 그러했듯이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그들의 큰 용기가 참으로 멋져보이고, 이런 결말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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