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슬럼버 - Golden Slumb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이사카 코타로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데 아직 '골든 슬럼버'는 읽지 못했다. 영화화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얼른 읽어야지 했는데, 어느덧 한국에서 개봉까지 해버렸다. 원작이 있는 영화를 볼땐 거의 책을 먼저 읽고 보는 편인데 이번엔 그러지 못했다. 그런데 이것도 나쁘진 않았다. 결말을 모른채로 보니 영화에 더 몰입할수 있었고 책의 내용이 안 떠올라 방해도 안됐으니 말이다. 다만 이제 원작을 읽으면 영화 속 이미지가 자꾸 떠올라 상상력 발휘가 덜 될것 같긴 하다.

아무런 정보없이 포스터만 보고, 이사카 코타로 원작이라는 것만 알고 영화를 봤다. 포스터에 적힌 글귀를 보니 총리암살범으로 몰린 남자가 도망치는 내용같은데, 아마도 해리슨 포드 주연의 '도망자'처럼 음모에 빠진 남자가 진실을 파헤치는 영화가 아닐까 짐작했다.  

 

하지만 주인공 아오야기는 해리슨 포드나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의 윌 스미스와는 180도 달랐다. 그들처럼 도망치는 능력이 뛰어나지도, 음모에 빠질만큼 잘난 경력과 능력을 겸비하지도 않았다. 그는 사람 좋은 얼굴로 그저 자신의 삶을 성실히 살고있는 지극히 평범한 택배기사 였을 뿐이었다.딱 한번, 우연히 아이돌 여가수의 목숨을 구해줘 TV에 나오고 유명해진 일 만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소란스러운 사건이었다.  

그런 아오야기에게 대학시절 친구인 모리타가 찾아온다. 친구의 낚시 가자는 말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을줄 누가 알았겠는가. 친구와의 낚시로 기분이 들떠있는 아오야기에게 모리타는 이상한 말을 한다. 부인의 도박빚, 누군가가 내민 도움, 그 도움의 대가로 너를 이 자리에 불러와야 했고, 넌 좀 있으면 총리 암살범으로 지목될 거라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쏟아낸다.   

아오야기는 모리타가 내뱉는 엄청난 이야기가 장난일거라고 믿지만, 실제로 총리가 탄 차가 폭발하는 순간 장난이 아님을 감지한다. 그렇게 원하지도 않던 사건에 발을 담그게 된 아오야기는 꼭 살아남으라는 모리타의 유언을 뒤로하고 도망치기 시작한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불과 십여분 사이에 벌어진 거대한 사건때문에 정신없이 도망치는 아오야기를 보며 관객은 저절로 걱정이 된다. 과연 이 싸움에서 그가 살아남을수 있을까 라고.  

그리고 이때부터 "왜?"라는 의문이 따라다니게 된다. 총리암살사건의 시나리오는 누가 썼고 왜 아오야기가 용의자가 되어야만 했는가. 사건을 주도한 진범들은 과연 누구인가. 단지 운이 나쁘다라고만 말하기엔 아오야기가 처한 상황이 너무도 심각했다. 아이돌을 구해준 유명인사가 하루아침에 테러범으로 몰리면 일반인들의 호기심은 커져가고, 언론들은 자극적인 기사를 써대며 이 사건에 많은 부분을 할애할 것이다. 그러면 사건의 본질은 흐려질테고 아오야기 개인의 신상이 낱낱이 밝혀지며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해 줄 것이다. 그런 점까지 생각해 그를 표적으로 삼은 모양이지만, 그럼에도 "왜?"라는 의문의 답변으로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  

영화를 보면서 더 무서웠던건 마지막까지 누가 이런 일을 벌였는지 자세히 밝혀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저 경찰을 지휘할만큼 권력을 가진 고위직이나 죽은 총리와 반대 선상에 있는 사람일거라는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러니 일반인 아오야기가 이 싸움에서 벗어날 길은, 진실을 밝힐수 있는 방법은 불행하게도 없어 보인다. 더구나 아오야기를 보자마자 총부터 쏘는 경찰을 보면 더 분명해진다. 그의 진술을 들을 생각도 없고 무조건 죽인 후에 언론엔 '용의자와 대치 중에 어쩔수 없이 사살했다' 로 발표 하고 마무리 지을 거라는게 명확해 보였다.  

경찰처럼 총이 있는것도,그렇다고 다른 영화에서처럼 최첨단 정보를 얻을수 있는 해커 친구도 없는 아오야기가 과연 도망을 칠수 있을까? 싶었을때 그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난다. 그의 친구들과 동료들, 심지어 연쇄살인범까지 동참한다. 사람을 거리낌없이 죽이면서도 아오야기를 도와주는 살인범이 있다는 설정이 재미있었다. 총리 암살범으로 몰려 온 국민의 관심을 받으며 쫒기는 아오야기와, 시민들을 벌벌 떨게 만드는 진짜 연쇄 살인범 소년의 상황이 아이러니 했다. 정작 경찰의 추격을 받아야 할 이는 소년 이었는데 말이다.  

영화는 아오야기와 경찰과의 숨막히는 추격전과 더불어, 그가 가장 사랑했던 친구들과의 친구들과의 행복했던 시절과 풋풋한 사랑을 했던 과거를 교차해 보여준다. 사회생활을 하며 예전처럼 함께 어울릴순 없고 첫사랑의 현재도 알순 없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자신에게 다가온 끔찍한 사건을 통해 이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들은 한결같이 아오야기를 믿는다. 그런 믿음이 모여 아오야기를 지탱해주고 모리타의 당부처럼 끝까지 살아남겠다는 용기를 주었다.  

권력자와 일반인의 싸움은 한쪽의 일방적인 우세가 점쳐지지만,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의 믿음은 또 다른 변수를 만들어낸다. 비록 통쾌한 복수극과 해피엔드는 무리겠지만, 적어도 살아남을순 있다는걸 아오야기는 보여준다. 혼자 였다면 해내지 못했을 그 일을, 너무도 약하고 평범한 아오야기는 주변인들의 간절한 도움을 받아 살아남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어찌보면 그의 모습이 반쪽짜리 승리로 비춰지고 안타까움이 많이 묻어나오겠지만, 누구도 해내지 못했을 그 일을 해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살아남아준 것 만으로도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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