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관객에게 163분이라는 긴 시간동안 긴장의 끈을 팽팽하게 조여주는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이끼'는 나름 성공했다고도 볼수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따라다니는 의문은 한 두가지가 아니었는데, '내가 이해를 잘 못한건가?'싶을 정도였다. 러닝타임이 길기 때문에 충분한 설명이 가능할 텐데 그렇지 못했다는건 원작의 양이 방대해 다 담기 힘들었거나, 설명보단 다른 곳에 초점을 두어서일 것이다.  

그래서 '이끼' 웹툰을 찾아서 봤는데 (영화를 보기전에는 원작이 있다는것도 몰랐다.)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의문들이 대부분 해소가 되었다. 왜 그 인물이 그러했는지에 대한 상황들이 상세하게 나왔기 때문이다. 또 영화와 원작을 비교하는 재미도 있었는데, 개인적으론 원작에 한표를 던지고 싶다. 그렇다고 영화가 이상한건 아니었지만 강우석 감독의 색깔이 너무 많이 스며들었던게 문제이다.  그 부분이 플러스적인 면도 있었겠지만, 어떤 부분에선 마이너스가 되기도 했다. 네티즌들이 원했던 모 감독이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고 말이다.  

영화 초반에 나를 의아하게 만들었던건 유해국 이라는 캐릭터 였다. 그는 소식을 끊고 살았던 아버지 유목현의 부음을 듣고 시골 마을로 가게 된다. 가는 도중에 검사 박민욱과 전화로 입씨름을 하게 되는데, 서로 안좋은 감정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아 큰 일이 있었던걸로 짐작된다. (자세히 나오지 않는)그 일로 해국은 아내와 이혼하고 갈 곳없는 처지가 됐고, 박검사는 좌전했으니 둘 사이에 좋은 감정이 있을 턱이 없다. 원작에선 그 일이 자세히 나오는데 유해국의 캐릭터를 단박에 설명해준다. 왜 해국이 마을사람들의 비밀을 파헤치려고 그렇게 애쓰는지를 이해할수 있다.

갈 곳 없는 그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러 마을로 간 후, 당분간 이곳에 정착하고 살겠다고 한건 그리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고 외딴 시골에서 낯선 이들과 함께 생활하던 아버지의 초라한 죽음을 보며 사인이 뭐냐는 의문도 충분히 할수 있다. 그런데 아버지의 시신에서 타살의 흔적을 발견한 것도, 마을 사람들에게 수상함을 본것도 아닌데 왜 아버지의 죽음에 의문을 품었던 것일까?  평소 왕래가 없었던 그가 던진 한마디에 마을 사람들은 노골적인 적대감을 내비치는데, 그건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마을 사람들이 해국에게 이제와서 아들 노릇 하냐는 비아냥을 하는것도 무리는 아니다.  

 

자신의 처지가 안좋았던 만큼, 해국에겐 모든것이 의심스럽고 불편하고 적대적인 시선으로 보였을 지 모른다. 그래서 겉으론 평온해 보이는 이 마을에서 수상한 냄새를 맡고, 아버지의 죽음에 의심을 품었던 것이다. 아니면 이상한 느낌이 들면 자신이 피해를 보더라도 꼭 풀어야만 하는 성격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토착민과 맞서 싸움을 걸고, 두려워 하면서도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하진 않을 테니까.  

서울에 올라가지 않겠다는 그의 말에 이장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일순간 긴장하고 노골적으로 싫어한다.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이 있지 않은 다음에야 이방인이 한명 들어왔다고 이렇게까지 경계하진 않을 것이다. 자신이 이 마을의 시작과 끝이라는 이장 천용덕과 그의 말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해국은 아버지의 죽음이 이들과 연관돼있다고 굳게 믿는다. 그들의 비밀을 파헤치려 마을의 지도와 인물관계도를 그리고, 지하에 있는 굴을 발견하고 마을의 유일한 여성 이영지의 이상한 행동을 관찰한다. 그렇게 밝혀낸 사실들은 그의 믿음에 힘을 불어넣는다. 확실히 이 마을은 수상한 것 투성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뜻하지 않는 살인을 하게 되고, 부상을 입는 등 돌이킬수 없는 처지가 된다. 이젠 더 이상 이끼처럼 조용히 살수 없게된 해국. 손에 피 까지 묻힌 상황이니 마을의 진실 만이 자신을 구해줄수 있었고, 그래서 '아버지의 죽음'에 더 매달리게 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진실을 밝혀낼수록 깊이 드는 의문은 '아버지는 대체 이곳에서 이 사람들과 무엇을 하고 있었던걸까?' 라는 것이었다. 이상한 사람들과 함께 살기위해 아버지는 자신들을 버렸던 것일까? 대체 아버지의 과거가 어떠했는지, 심지어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조차 그는 몰랐다.

마을 사람들 입장에선 유해국의 움직임이 눈엣가시 였을 것이다. 그들 나름대로 잘 살고 있는데, 죽은 유목현의 아들이 자신들을 살인자로 의심하고 집에 무단침입하는 등 도가 지나친 짓을 하고 있으니 안 그렇겠는가. 특히 마을을 총괄하고 자신의 세계에서 권위를 누리던 천용덕에게 유해국은 귀찮고 반드시 제거해야 할 인물이었다. 자신보다 별거아니라 생각했던 사람이 마을을 순식간에 위기로 몰아넣었으니까.    

하지만 평생 탐욕스럽게 살아온 천용덕이조차 무식하게 자신을 위해 돌진하는 유해국에게는 당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신의 편 이라고 믿었던 사람에 의해 배신을 당하게 됐으니 그의 선택은 오직 하나였을 것이다. 비겁하고 허무한 천용덕의 마지막 선택. 그렇게 이 마을의 비밀은 밝혀지고 끝이 된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작은 반전을 이야기 한다. 영화의 처음부터 들었던 의문이 이부분에서 해결이 됐는데, 어찌보면 별거아니라 생각해서 큰 의심을 두지 않았던 물음이 가장 큰 반전이 됐다. 마을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뛰어 다닌 사람은 유해국 이었지만, 이 모든 일을 계획하고 총괄한 이는 따로 있다는 거, 촌스러운 결말이었지만 조금 섬뜩하게 만들기도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