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 스물여섯의 사람, 사물 그리고 풍경에 대한 인터뷰
최윤필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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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세상은 1등만 기억한다고 말한다. 냉정한 얘기일순 있겠지만 엄연한 사실이라는게 가슴아플때가 있다. 간혹 2등에게 관심을 주기도 하고 꼴찌의 노력과 눈물에 박수를 보내기도 하지만 그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중심이 되고 싶어하는데, 그래서 끊임없는 경쟁을 한다. 마치 중심에 다다르고 정상에 오르면 행복의 완성 이라는 듯이.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 몇 배, 아니 몇천배 이상의 사람들이 중심을 둘러싸고 있고 그렇게 원은 커져 나간다. 중간, 바깥을 정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이 있을테고 그렇게 안 과 밖이 존재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할 차례다. 과연 안으로 들어가는게 모든 사람들의 목표일까? 어쩌면 다른 이들이 바깥이라 생각하는 곳을 안이라 여기고 그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모두 다 1등은 될수 없듯이, 모두 다 1등을 원하는게 아니다. 그리고 사람의 생김새가 다 다르듯이, 사는 방식도 생각도 다른 법이다.  

대형 멀티 극장만 살아남는 현실에서 종로 낙원상가에 위치한 허리우드클래식 극장은 낡은 느낌이 든다. 시사회가 열릴때 자주 갔었는데 어느 날 노인들을 위한 추억의 영화를 틀어주고, 한 관은 뮤지컬 공연을 하는 등 변화된 모습이 있어 놀랐다. 생존의 한 방편이겠구나 했는데 그 시작을 젊은 김은주 사장이 한 거란다. 하지만 2000원의 요금과 주변 극장들 틈에서 홀로 자립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노인들의 문화공간으로 사랑을 받고 있지만 해마다 적자가 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김은주 사장은 힘든 경영을 해나가면서도 이곳을 찾는 노인들의 행복을 지켜보며 힘을 얻는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그녀의 행보가 미련해 보일수도 있을 것이다. 돈도 안되는 일에 굳이 매달릴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김은주 사장에겐 돈보다 더 큰 가치가 우선순위에 있어 보인다.  

전국의 마을을 찾아다니며 주민들을 주연으로 한 영화를 찍는 신지승 영화감독도 같은 맥락에 있다. 그는 잠만 재워주고 밥만 먹여주면 그걸로 오케이, 정해진 시나리오도 전문 배우도 없는 유일무이한 '마을 영화제'를 찍는다. 처음엔 거부하던 사람들도 영화에 참여하고 연기를 하는데 이런지가 벌써 10년이다. 그의 꿈은 전국민이 참여하는 '마을 영화제'를 여는 것인데 그의 바램이 이루어지길 바래본다.  

이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인터뷰가 있는데 그들의 삶은 때론 힘겹고 미래가 불투명해 보이기도 한다. 배고픈 직업이라 일컫는 연극생활을 오래한 임학순씨는 현재 택배기사로 일하는데, 평생 연기만 해오던 그가 매일 100개가 넘는 물건을 배달하며 살고있다. 어쩌면 그는 실패한 삶이거나 꿈을 이루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의 하나로 여겨질수 있다. 꿈을 포기한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자신의 현재에 100% 만족하는 사람이, 내 꿈을 이뤘다고 당당히 말할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되겠는가. 그러면에서 그는 실패한 삶도, 패배자도 아니다. 오히려 그는 다시 무대로 돌아갈 꿈을 꾸고 있고,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빛을 발한다고 여긴다.  

성실하지도 않고 열심히 하지도 않는 인디밴드 타바코쥬스는 어른들이 걱정하기 딱 좋은 인생을 살고 있다. 그들을 보면 분명 이러지 않을까? "지금은 놀고 음악 하는게 좋겠지만 나이가 더 들면 어쩌려고 그러냐. 정신 차리고 열심히 해서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든가 기술을 배워라" 라고 말이다. 그만큼 이 젊은이들은 소속사 대표조차 혀를 내두를만큼 놀기 좋아하고 인기도 그저 그런 팀이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의 실력이 안된다는걸 당당하게 얘기하고 그저 음악이 좋아서 하는 거라고 말한다. 비록 음반이 많이 팔리지도,그렇다고 팀웍이 좋거나 성실하지도 않지만 좋아하는걸 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만족하는 타바코쥬스를 보며 묘한 부러움도 생긴다.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의 박상영 교장은 한 아이로부터 "태어나서 처음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를 잊지 못해 지금도 일하고 있고, 주역은 아니지만 군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발레리나 안지원씨는 단 한명의 관객이라도 자신을 주목해 줄거라는 믿음으로 공연을 펼치고, 박태환 선수와 같은 수영 국가대표 배준모씨는 언젠간 자신의 기록이 좋아질거라는 목표로 물살을 가른다. 그 외에도 유명 배우의 손 모델로 각광을 받고 있는 최현숙씨, 야생의 호랑이를 찍기위해 고독한 싸움을 하는 다큐감독 최기순씨, 끝내 익명으로 우리나라 시간강사의 처지를 토로한 분도 계셨다.  

인물들 뿐 아니라 퇴역마 다이와 아라지, 독자들의 선택을 받지못해 결국 40원짜리 폐지가 되는 책의 운명, 비무장 지대 DMZ,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후 역으로 한국에서도 열풍이 시작된 막걸리까지 저자의 시선으로 본 이야기는 계속 된다. 처음엔 가볍게 읽으려고 본 책인데 인터뷰이들의 진솔한 이야기에 가슴이 무거워지기도, 웃음이 빙그레 나오기도 했다. 이런 사연들이 오직 이들에게만 있으랴 싶다. 그래도 길을 걸어가다보면 내가 도달하고 싶은 곳이 나올 것이고, 그 문을 열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거라는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작은 기대와 꿈마저 없다면 팍팍한 세상을 살아내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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