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짜 무서웠던 것은 엄청난 양으로 한꺼번에 닥쳐올 낯선 것들과의 만남이자, 지금의 모든 친숙하고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이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갑자기 현재의 모든 것이 내게 너무나 어울리며 올바르고 다정하게 여겨졌다-57쪽
나는 배우는 모든 것이 행복했다. 뭔가 재미있고 교양 있게 말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게 해 준 나의 서툰 영어 실력도 행복했고, 내가 하는 일에서는 말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도 행복했다. 나는 새로운 세계 속에 살고 있고, 이제는 과거 세계와의 거리감도 생긴 것 같은 감정이 들었다-59쪽
어머니는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도 나름의 교육 방식이 있었다. 꼭 해야 할 것이 있으면 그것을 스스로 하고 싶은 것으로 만들라는 것이다.-96쪽
이런 생각들이 끝나자 드디어 내가 평소에 다른 사람들과 사랑에 빠졌을 때와 똑같은 증세가 나타났다. 그 증상은 내게 아직 멈출 기회가 있고, 이 사랑에 정말 풍덩 빠질지, 빠지지 않을지 나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나는 벌써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113쪽
결혼이나 연애의 좌절을 겪은 후 서둘러 다음 상대를 구한 사람들이 완전히 극복되지 못한 과거에 의해 복수를 당하거나 압살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거꾸로 사랑의 상실 후 자기 내면으로 침잠한 사람들이 나중에 좀 더 강해진 모습으로 삶에 복귀하게 되리라고도 생각지 않았다.-142쪽
용감함이 정의나 진리, 이웃 사랑보다 낮은 수준의 미덕일 수는 있지만, 그것 역시 그것과 다름 없는 미덕이었다.-165쪽
응답받지 못한 사랑은 자신을 거부한 사랑을 자신이 거부할 수 있을 때까지 멈추지 않아요. 그렇게라도 해서 스스로에게 공정함을 만들어주는 것이죠. 그렇지 않으면 공평해질수가 없어요.-170쪽
우리가 싸우는 또 다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는 아직 모르지만 언젠가 반드시 찾아오리라는 것은 알고 있는 그 행복을 위해서.-173쪽
선한 것은 진실하며 아름답고, 나쁜 것은 거짓되고 추하다는 것은 쉽게 바뀌지 않는 아이들의 완강한 희망이었다.-191쪽
과거와 현재, 풍요와 빠듯함, 즐거움과 진지함, 외향적인 삶과 내향적인 삶, 이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면서 세계는 완벽한 모습을 되찾았다. 이제 나는 한 잔의 와인을 들고 그 세계의 중심에 앉아있었다. -216쪽
내가 읽은 사유들의 상상적인 구성물에 불과했던 것이 이제 내 눈앞에서 하나의 육체로 현현한 것이다. 그는 엄청나게 강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무기력한 존재였다. 그는 내가 아무 대응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내 인생에 강한 영향을 주었고, 나 역시 그가 내 생각에 아무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상태에서 그에 대해 나만의 의견을 갖고 있었다. 그런 사람을 이제 만질 수도 있고, 상처를 낼수도 있었다.-297쪽
나는 내가 잘못하지도 않은 일로 사과하고 나자 너무 서글펐다. 나중에야 나는 그것이 엄마와의 평화를 위해 내 자존심을 판 행위였다는 것, 자신이 잘못하지도 않은 일을 사과해야 하는 자기비판의 모든 형식이 결국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무너뜨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존감이 붕괴된다는 것을 깨달았다-3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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