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시공사 베른하르트 슐링크 작품선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박종대 옮김 / 이레 / 2010년 1월
구판절판


내가 진짜 무서웠던 것은 엄청난 양으로 한꺼번에 닥쳐올 낯선 것들과의 만남이자, 지금의 모든 친숙하고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이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갑자기 현재의 모든 것이 내게 너무나 어울리며 올바르고 다정하게 여겨졌다-57쪽

나는 배우는 모든 것이 행복했다. 뭔가 재미있고 교양 있게 말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게 해 준 나의 서툰 영어 실력도 행복했고, 내가 하는 일에서는 말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도 행복했다. 나는 새로운 세계 속에 살고 있고, 이제는 과거 세계와의 거리감도 생긴 것 같은 감정이 들었다-59쪽

어머니는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도 나름의 교육 방식이 있었다. 꼭 해야 할 것이 있으면 그것을 스스로 하고 싶은 것으로 만들라는 것이다.-96쪽

이런 생각들이 끝나자 드디어 내가 평소에 다른 사람들과 사랑에 빠졌을 때와 똑같은 증세가 나타났다. 그 증상은 내게 아직 멈출 기회가 있고, 이 사랑에 정말 풍덩 빠질지, 빠지지 않을지 나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나는 벌써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113쪽

결혼이나 연애의 좌절을 겪은 후 서둘러 다음 상대를 구한 사람들이 완전히 극복되지 못한 과거에 의해 복수를 당하거나 압살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거꾸로 사랑의 상실 후 자기 내면으로 침잠한 사람들이 나중에 좀 더 강해진 모습으로 삶에 복귀하게 되리라고도 생각지 않았다.-142쪽

용감함이 정의나 진리, 이웃 사랑보다 낮은 수준의 미덕일 수는 있지만, 그것 역시 그것과 다름 없는 미덕이었다.-165쪽

응답받지 못한 사랑은 자신을 거부한 사랑을 자신이 거부할 수 있을 때까지 멈추지 않아요. 그렇게라도 해서 스스로에게 공정함을 만들어주는 것이죠. 그렇지 않으면 공평해질수가 없어요.-170쪽

우리가 싸우는 또 다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는 아직 모르지만 언젠가 반드시 찾아오리라는 것은 알고 있는 그 행복을 위해서.-173쪽

선한 것은 진실하며 아름답고, 나쁜 것은 거짓되고 추하다는 것은 쉽게 바뀌지 않는 아이들의 완강한 희망이었다.-191쪽

과거와 현재, 풍요와 빠듯함, 즐거움과 진지함, 외향적인 삶과 내향적인 삶, 이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면서 세계는 완벽한 모습을 되찾았다. 이제 나는 한 잔의 와인을 들고 그 세계의 중심에 앉아있었다. -216쪽

내가 읽은 사유들의 상상적인 구성물에 불과했던 것이 이제 내 눈앞에서 하나의 육체로 현현한 것이다. 그는 엄청나게 강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무기력한 존재였다. 그는 내가 아무 대응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내 인생에 강한 영향을 주었고, 나 역시 그가 내 생각에 아무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상태에서 그에 대해 나만의 의견을 갖고 있었다. 그런 사람을 이제 만질 수도 있고, 상처를 낼수도 있었다.-297쪽

나는 내가 잘못하지도 않은 일로 사과하고 나자 너무 서글펐다. 나중에야 나는 그것이 엄마와의 평화를 위해 내 자존심을 판 행위였다는 것, 자신이 잘못하지도 않은 일을 사과해야 하는 자기비판의 모든 형식이 결국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무너뜨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존감이 붕괴된다는 것을 깨달았다-3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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