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혼돈 - Quiet Chao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가족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남은 사람들에게 큰 슬픔과 고통을 안겨준다. 병에 걸려 사망 선고를 받아도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든데, 하물며 영화 속 남자주인공 처럼 뜻하지 않은 부인의 죽음을 맞닥뜨리게 됐다면 과연 어떨까? 그것도 동생과 함께 물에 빠진 낯선 여인(이름조차 모르는)을 구한 시간에 부인이 심장마비로 죽었다면? 다른 생명을 구한 그 시간에 아내는 남편없이 고독한 죽음을 맞았다. 눈물도 쏟지 않고 그저 멍하니 아내의 시신을 바라보는 남자의 공허한 눈과, 왜 이제서야 왔냐며 울부짖는 딸의 모습이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장례식 이후 피에트로는 딸을 학교에 바래다주면서 한가지 약속을 한다. 딸이 수업을 받을동안 학교 앞 공원 벤치에서 하루 종일 기다리겠다고. 하지만 섭섭하게도 딸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아마 아버지의 약속을 믿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도 피에트로는 그 약속을 지킨다. 하루 종일 벤치에 앉아 있다가 수업을 마친 딸을 마중 나간 것이다. 다른 학부모들 사이에 껴서. 아마 그에겐 처음 경험해본 일이었을 것이다. 외국 회사와의 합병 때문에 뒤숭숭한 회사에 나가지 않고 하루 종일 벤치에 앉아 있는 피에트로. 사람들은 그런 남자를 이상하게 쳐다보고, 아내의 죽음때문에 큰 충격을 받아 그러는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피에트로는 이곳에서 슬픔을 극복하고 있다. 적어도 그래보인다.  

 말 동무도 없이 홀로 벤치는 지키는 중년 남성이라. 얼핏 생각하면 지루하고 심심한 하루를 보낼것 같다. 하지만 벤치에서의 그는 지루할 틈이 없다. 매일 같은 시간에 지나가는 다운증후군 소년과 엄마를 위해 자동차의 '삑삑'소리를 들려주고, 큰 개를 산책시키는 미모의 여성과의 묘한 감정을 느끼고, 자신을 찾아와 이런 저런 회사일을 알려주고 조언을 구하는 회사 동료들을 만난다. 사람들과의 차,식사는 공원내 카페에서 해결하고, 공원 근처에 사는 한 남자가 프에트로를 점심식사에 초대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와 과거에 관계가 있었던 처제가 나타나 분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조용하지만 그리 조용하지 않는 일상이다.  

하지만 그 시간동안 그는 아내를 추억하건 눈물을 쏟진 않는다. 아내와 살가운 관계도 아니었고, 그녀가 살아있을땐 몰랐던 사실을 아내의 메일함을 통해 알게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피에트로가 슬프지 않은건 아니다. 그는 자신이 탔던 비행기 리스트, 이사 갔던 곳 리스트를 자꾸 생각해내며, 그녀의 죽음 대신 다른것을 생각해내려 애쓴다. 어찌보면 별것도 아닌것들을 끄집어내면서 말이다. 그렇게 꾹꾹 눌러 담고, 겉으로 봤을땐 상처를 극복한것 처럼 보이는 피에트로. 하지만 그는 학부모 모임에서 기절을 한 날, 차 안에서 펑펑 운다. 그동안 내 놓지 않았던 눈물을 원없이 흘린다. 그렇게 피에트로의 마음에 난 상처가 터지고 딱지가 앉고 단단해진다.  

누구나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이 있다. 정신없이 울거나 떠나간 사람의 흔적을 찾기도 한다. 그 사람과의 기쁜 추억을 자꾸 되새기거나 못해줬던 일들을 떠올리며 자책하기도 한다. 그리고 피에트로처럼 조용하지만 그 혼돈을 이겨내는 방법도 있다. 자신을 지켜주는 가족과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말이다. 그 과정은 고통스러울 테지만 결국은 이겨내기 마련이다. 딸이 피에트로에게 이젠 학교에 안 와도 된다며,그동안 너무 고마웠다고 어른스럽게 말하는 것처럼 우리도 상처와 슬픔에게 그렇게 말할수 있을것이다. 난 서서히 이겨냈다고, 더이상 혼돈스럽지 않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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