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콩을 들다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를 보기전부터 왜 제목이 '킹콩을 들다'인지 궁금했었다. '역기를 들다'가 아닌 '킹콩을 들다'라니! 역도와 킹콩은 무슨 관계가 있는건지 작은 궁금증이 일었다. 다행히 영화속에 제목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나왔고, 마지막엔 제목을 그대로 재현한 장면이 나오면서 묵직한 감동과 뜨거운 눈물을 선사해줬다. 원래 눈물이 많은 편은 아닌데, 이 영화를 보면서는 꺼이꺼이 목놓아 울고싶은걸 꾹 참게됐다.(만약 극장에 나 혼자 있었더라면 펑펑 울었을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포츠 영화하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진한 감동을 선사한 그 영화 덕에 스포츠 영화도 흥행에 성공할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부여했고 계속해서 제작되고 있다. (좀 있으면 스키점프를 소재로 한 "국가대표"도 개봉한다.) 실화 라는 점과 스포츠가 주는 감동적인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수있는 소재임에 분명하다. 그것을 어떻게 잘 조화롭게 버무리고 연출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또 요즘 나오는 스포츠 영화를 보면 배우들이 강도높은 훈련을 받아 실제 운동선수처럼 연기하기 때문에 영화에 더 몰입할수 있게되는것 같다. 예리한 관객들의 눈은 실제처럼 보이는걸 원하고, 그 눈높이에 맞추기위해 배우들은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핸드볼 공을 던지고 역기를 든다. 그런 배우들의 노력은 곧 배우와 배역을 일치시키게 만들어 진짜 역도 선수로 인식하게 해줬다. 배우들이 흘리는 뜨거운 땀이 스크린을 넘어 내게 전해질 정도로 생생하게 보여진다.

 

 

 

 

 

 

 

 

 

  

영화의 처음은 88올림픽에 참가한 이지봉(이범수)의 경기로 시작된다. 올림픽의 뜨거운 함성과 열렬한 응원이 역도 장면과 교차되는데,여기서 비인기종목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줘 씁쓸함을 전해준다. 이지봉에게는 도전의 장이고 모든걸 쏟아붓는 순간,그리고 평생 잊지못할 쓰라린 기억이 될 경기이지만 일반 사람들에겐 비인기종목 '역도'경기일 뿐이었다. 언제나 금메달을 최우선으로 하는 국가에게 동메달은 '값진'이라는 수식어 대신 '아깝게 그친' 이라는 말만 붙였다. 그것도 한줄짜리 자막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마저도 사람들의 기억속에 오래 남지 않았다. 이지봉은 역도 금메달리스트가 아니라 동메달리스트이고, 이젠 부상때문에 더이상 역기를 들지 못하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평생 역기만 들어왔던 그가 택할수 있는 직업은 그리 많지 않았다. 심장병도 가지고 있는 그는 기껏 나이트클럽에서 전단지나 돌려야했고, 이를 보다못한 옛 스승이 작은 시골학교 역도부 코치를 맡게했다. 하지만 그는 아이들을 가르칠 마음도,동기도 들지 않았다. 이지봉에게 열정이라는 단어는 없어진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각자 사연을 가진 순수한 시골 여중생들과의 만남은 그를 변화시켰다. 특히 보살펴줄 사람도, 머물 집도 없는 영자(조안)의 딱한 사정을 해결해주기 위해 합숙소도 만들고 식사도 해결할수 있게 해줬다. 거기다 아픈 어머니를 위해 역도로 성공하고 싶다는 여순(최문경)과 테니스부원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역도부로 오게된 현정(전보미),하버드 로스쿨에 들어가 FBI가 되겠다는 수옥(이슬비),타고난 체격을 갖춘 보영(김민영),역도 유니폼이 예쁘다는 이유로 들어온 민희(이윤회)와 함께 역도부의 새로운 시작을 열게된다.

가난한 시골 여자아이들에게 역도선수로서의 성공은 유일한 기회였을지 모른다. 지금이야 성공할수 있는 길도 많고 기회도 많지만, 그 당시엔 운동선수로 성공하는것만이 가난을 벗어나는 길 이었을 것이다. 영자가 사격부에 들어갔다가 쫒겨난것도 총을 살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지봉 선생님의 말대로 역도 기구는 국가에서 사주니 선수는 오로지 훈련에만 열중하면 됐다. 더구나 역도를하기 위해선 잘 먹어야하니, 밥 굶기 일쑤였던 영자에겐 역도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학교에서 밥을 챙겨주니 말이다.  



 

 

 

 

 

 

 

 

 

  

처음엔 역도를 가르치는 일에 시큰둥하고 열정이 없던 이지봉 코치가 열성적으로 임하게 된건 바로 이런 아이들의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리하게 시합에 출전시킨것도 아이들의 환경을 개선시키고 제대로 된 선수로 키우기 위해서였다. 물론 처음엔 아이들을 선수로 키울 생각은 없었다. 역도선수로 사는게 어떤건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금메달이 아니면 대접도 못받고 부상과 병에 시달리는 삶을 알기 때문이었다. 바로 자신이 그러했으니까. 하지만 아이들은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그들의 지옥훈련은 시작됐다.  

중반까진 아이들의 순수함이 빚어낸 즐거운 에피소드가 넘쳐나지만 그 후부터는 한명의 역도선수로 거듭나는 극적인 감동이 있다. 그리고 이지봉 코치와 아이들이 만들어낸 기쁨 뒤에 따라오는 안타까운 헤어짐과 슬픔은 신파라는 말이 어울릴만큼 눈물을 쏟게 만든다. 특히 악역으로 나오는 나쁜 코치의 모습은 조금 무서울 정도다. 인정사정없이 매질을 가하는 모습은 불편함까지 느끼게 했다. 물론 현실에선 그런 일이 왕왕 일어나지만, 영화 속 순수한 아이들에게 가하는 매질은 두 눈을 질끈 감게 만들었으니까. 이런 장면 때문에 뒷부분이 더 극적이게 연출되지만 말이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갈때, 이 영화의 소재가 된 실화 속 코치와 선수들의 사진이 등장한다. 아직도 깨지지 않는 기록을 남겼던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와 사진이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킹콩을 들다"를 보면서 다시 한번 느끼게 된건 현실은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극적이다 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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