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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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만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사람의 앞날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다. 그래서 가끔은 굴곡없는 평범한 인생이 가장 어렵고 축복받은 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게다가 불행은 언제나 한꺼번에 닥쳐 숨 돌릴 틈도 없게 만든다. 마치 어느 누군가가 삶이 얼마나 가혹한지를 깨닫게 해주려는것 같다.

푸구이 노인의 삶이 바로 그렇다.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있자면 "아니, 어떻게 이럴수가! 하느님은 왜 당신에게만 이런 고통을 안겨주시는 건지. 이제 그만 이 불쌍한 노인을 가만 내버려 두라고."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가 겪는 짧은 행복 뒤의 더 큰 불행은 정말 처절할 정도로 심하다. 차라리 기쁜일이 없었다면 고통스러운 일도 담담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마음의 준비를 했을테니까. 하지만 가장 기쁜 순간에 맞는 청천벽력같은 사고 소식은 푸구이뿐 아니라 독자들도 괴롭게 만들었다.

한번 꼬이기 시작한 인생은 바른 길을 찾지 못하고 계속 어둠의 길로 가는것일까. 더이상 손 쓸수도 없을만큼 지치게 만들고 싸우고자 하는 의욕도 꺾는 불행의 연속. 그러다 마침내 체념하게 되고 자신의 인생을 받아들이게 되는 푸구이. 세상의 거친 풍랑앞에서 한 인간은 너무도 나약했다.

푸구이의 젊은 시절은 철없는 한량의 그것이었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고생을 모르고 산 그는 남들 보기를 우습게 알았다. 돈 몇닢 던져주면 모든게 해결되니 세상에 무서울것도, 두려울것도 없었다. 아마 그는 죽을때까지 '고생'이라는 단어는 알지못한채 살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는 노름에 빠져 전 재산을 깡그리 날려버렸다. 조금씩 쌓인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조상이 물려주고 자신이 후대에게 물려줘야할 집과 재산을 모두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푸구이의 굴곡많은 인생이 펼쳐진다.

처음엔 푸구이의 몰락이 자업자득 이었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은 전혀없었다. 오히려 그의 인생에서 처음 닥친 시련이 그를 강하게 만들고 새롭게 만들겠다 싶었다. 한번 정신을 차려봐야 자신이 가진것의 소중함을 알게되고, 그의 나쁜 성격도 고칠수 있을테니까. 하지만 계속되는 불행앞에서 푸구이보다 내가 더 먼저 쓰러질 판이었다.

이제야 겨우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되었는데 전쟁은 그를 집에서 떼어놓았다. 아픈 어머니를 위해 약을 구하러간 그는 국민당원에 의해 전쟁터로 끌려갔고, 겨우 살아 돌아온 그를 맞는건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게다가 딸 펑샤는 열병을 앓고나서 벙어리가 됐으니 찢어지는 마음을 가눌길이 없었다. 하지만 지혜로운 아내와 펑샤,아들 유칭이 있기에 다시 한번 힘을 냈다. 비록 힘든 농사 일이지만 부지런히 일하고 아이들을 키우는게 가장 큰 행복이고 보람임을 알게된 것이다.

때로는 가난 때문에 모진 결심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서로를 보듬고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은 뭉클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아직 모진 불행은 끝난게 아니었다. 옛 전우의 아내에게 수혈을 해주던 아들 유칭이 병원의 어이없는 실수로 목숨을 잃게 된 것이다. 건강했던 아들이 너무도 허무하게 싸늘한 시신이 된 그 날, 푸구이가 느꼈을 분노와 슬픔이 얼마나 컸을지를 생각해본다. 하지만 그는 모든것을 용서한다. 너무도 힘든 선택이었지만 참혹한 전쟁을 함께 겪은 전우였기에, 아무리 화를 내도 죽은 아들이 살아돌아오지 않음을 잘 알기 때문에. 하나 남은 딸 펑샤가 있기에 기운을 차렸다.

실제로 딸의 결혼식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 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딸이 아이를 낳다 죽고, 사위 또한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건 손자 뿐 이었지만 운명은 그 작은 행복도 허락하지 않을 셈이었는지 손자 마저 앗아갔다. 나 같았으면 미쳐버렸을 것이다. 누구에게라도 화를 내고 분노를 터트렸을 것이다. 한명도 아니고, 자신에게 남은 모든 가족을 앗아가버린 잔혹한 운명이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가족을 주지 않았더라면 덜 슬펐을까.

이제 늙은 노인이 된 푸구이에게 남은건 자신의 이름을 붙인 소 한마리 뿐이다. 중국의 급변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민중으로, 한 가족의 가장으로 수많은 일을 겪었다. 그리고 이젠 조용히 죽을 날을 기다리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손수 죽은 가족의 무덤을 만들어야만 했던 푸구이. 더이상 잃을게 없는 그의 모습에서 살아간다는게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알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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