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베를린, 러브스토리
에리카 피셔 지음, 신혜원 옮김 / 열대림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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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 릴리와 유대인 소녀 펠리체의 사랑은 동성애라는 힘겨운 난관뿐 아니라 나치라는 비극적인 시대까지 겪어내야만 했다. 게다가 릴리는 네 아이의 엄마이자 나치 장교의 부인이었고 펠리체는 유대인 지하조직에 몸담고 있었다. 사는 세계가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는 많이 있지만 릴리와 펠리체의 사랑은 나치 시대라는 배경때문에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마치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스러워야 할 이들의 사랑은 위태로웠고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알수없었다. 그야말로 불안하고 가슴 졸이는 사랑이었다.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더 뜨거웠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릴리와 펠리체의 친구,주변 인물들의 증언과 기록을 통해서 쓰여졌다. 때문에 어떤 부분은 세월이 많이 흐른 탓인지 기억이 일치하지 않았고 상대방에 대한 오해도 더러 있었다. 또 소설처럼 매끄럽게 쓰여지지 않고 갑자기 화제가 전환되거나 하는 등 몰입을 방해하는 부분도 많았다. 릴리와 펠리체에게 완전하게 감정이입이 되지 못한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사랑을 이해하는덴 하등 문제되지 않았다. 편하고 쉬운 사랑을 택하지 않고 기꺼이 불같은 사랑에 빠져든 두 사람의 용기와 믿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펠리체의 친구가 릴리의 집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이 둘은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펠리체가 처음 만난 릴리에게 호감을 표시하고 잘 익은 빨간 사과를 선물하지 않았다면 둘은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이런 가정은 다 쓸데없는 짓이다. 이 둘은 어떻게 해서든지 사랑에 빠졌을 것이다. 그게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들의 사랑이 더 안타깝고 아름답게 보인다. 운명을 거스를수 없는 강력한 사랑에 빠진 릴리와 펠리체. 비록 이들이 함께한 시간은 너무도 짧았지만 그만큼 더 강렬했다.

처음엔 아이가 4명이나 되는 릴리가 이성이 아닌 동성을 사랑한다는게 이해되지 않았다. 펠리체는 자신이 레즈비언인걸 자각하고 있었지만 릴리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알았다면 남자와 결혼하지도, 다른 남자들과 관계를 맺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릴리는 어린시절을 되돌아보며 자신이 여자를 사랑할수밖에 없다는걸 깨닫게 된다. 여자들에게 특별한 관심이 있었다는 것과 그로인해 부모님이 걱정한 사실을 말이다. 사회는 릴리를 이성애자로 교육시켰지만 펠리체와의 만남은 릴리의 감춰진 본능을 드러내게 만든다.

만약 이 둘이 40년대가 아니라 현재 만났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적어도 전쟁이라는 끔찍한 일 만이라도 없었으면 어땠을까. 유대인에 대한 인종청소가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그로인해 벌어지는 수많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릴리와 펠리체는 평생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한채, 행복의 정점에 서있던 순간에 갑작스런 이별을 맞지도 않았을 것이다. 행복했던 릴리와 펠리체의 사진을 보면서 안타까움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마음껏 사랑할수있었던 내 삶이 얼마나 축복받았는지를 알게되었다. 내겐 당연하고 평범한 것들이 다른 시대, 다른 이에겐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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