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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홍 - 彩虹 : 무지개 김별아 조선 여인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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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8세기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을 물건이나 상품처럼 수단으로 사용하지 말고 그 자체로 존중받는 하나의 목적으로 대하라는 뜻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류는 수 많은 인간을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아프리카에서 잡혀온 수많은 흑인은 강대국들의 노예라는 수단으로 전락하였고 뿐만 아니라 계급주의 사회에는 항상 노예가 존재하였다. 불과 백여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 또한 남성들의 수단에 불과하였으며 이 외에도 인간이 수단으로써 존재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렇다면 과연 위에서 언급한 사람들처럼 하층민만이 수단으로 전락하였는가? 아니다. 잔악한 인간이 인간을 도구로 생각하는 데에는 지위고하가 없다. 필요하면 누구든지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시대 세자의 아내라고 하면 일반인들은 쳐다도 볼 수 없는 높은 신분이다. 얼핏 생각하면 모든 것을 가진 행복한 여인이라고 생각될지도 모르나 채홍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남성위주사회에서 하나의 수단으로 존재할 뿐이였다. 세자와 혼인하여 궁안으로 들어갈지에 대한 그녀의 의견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집안에서는 권력을 위해 그녀를 하나의 수단으로써 궁궐에 들여보낸 것 뿐이다.

 

인간이 하나의 목적으로써 존재하지 못하고 도구로 전락하게 되면 그 인간은 그저 자신의 의지없이 존재하게 될 뿐이다. 남들이 휘두르는 대로 움직이는 칼처럼, 망치처럼. 하지만 채홍은 인간이였다.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목적으로써 존재하는 인간. 그래서 채홍은 자신의 의지가 있는 존재였다. 외로웠고, 사랑받고 싶었고, 스스로 사랑을 찾아 나섰고, 어쩌다 보니 그 대상이 사회에서 금기로 여기는 동성이였지만 자신의 존엄성을 위해 스스로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사회는 개인의 존엄성을 무참히 짓밟는다. 통제되지 않는 개인은 위험요소요 불협화음이다. 사회의 지배계층은 통제하기 쉬운 균일한 인간상을 원한다. 그리하여 개인을 도구로 전락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결국 채홍이라는 개인은 사회에 의해 처단 받는다.

 

작가가 아주 먼 옛날 어느 레즈비언(비하의 의도 절대 없음, 다른 용어를 모름)의 이야기를 굳이 다시 꺼낸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레즈비언은 아주 먼 옛날부터 존재하였다. 따라서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일까? 그럴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몇 백년 전의 이야기가 아직도 우리에게 가슴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아직도 이 사회가 조선시대처럼 개인을 도구로 전락시키려 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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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 쁘리띠 뻐허리 - 나쁜나라 네팔에서 배운 착한 사랑
반영난 지음 / 반얀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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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학시절 방학기간이 되면 캠퍼스 곳곳에는 제3세계 사람들의 사진이 인쇄된 벽보들이 부착되었다. 이름하야 방학맞이 대학생 해외봉사 활동

짧게는 2주일에서 길게는 2달 정도까지 참가국도 다양하고 체류기간도 다양하며 참가비용도 다양하다. 방학때 무얼해야 방학이 끝나고 나서 내 스펙을 높여주는 증서를 마련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몇몇 학생들은 지원서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잊고 살았다 어렸을 적부터..’라는 과거 이야기부터 불투명하기 그지 없었던 미래도 그 순간만큼은 장차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이라는 선명한 그림으로 바뀐다.

 

그래서 일까. 나는 해외봉사활동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특히 단기간 특집?으로 행해지는 종교단체나 대학생의 봉사여행은 그저 취미활동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봉사에는 자신의 삶이 녹아들어가야 한다. 마더 테레사나 이태석 신부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처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봉사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삶은 분명 일반인들에게는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해외로 나가지 않더라도 주변에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많다. 왜 그사람들을 도울 생각은 하지 않고 굳이 해외까지 나가는 걸까? 주변의 사람들을 돕는 것은 자신의 삶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한번 도와주면 계속 찾아오면 어떡하지?’ ‘한 번 가기 시작하면 왠지 계속 가야할 것 같은데..’ 등과 같이 나의 삶의 영역을 침범할꺼라는 두려움. 누군가는 아니라고 제3세계 사람들이 우리보다 훨씬 못살아서 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국내에 거류주인 제3세계 노동자들에게는 한번이라도 관심을 가져본 적은 있는가? 아니라면 왜? 그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기 때문에? 거리를 더럽히기 때문에? 위화감을 조성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그러한 이유로 나는 대부분의 봉사활동은 그저 남을 돕는 것에서 스스로 보람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의 다른 취미생활에 비해 조금은 이타적일지도 모르는 취미생활로 생각한다. 진정 그들을 돕고 싶다면 어설프게 며칠 다녀오는 것보다 그 비행기 값을 아껴서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것이 그들에게 훨씬 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에도 불구하고 나는 해외봉사활동 한번 다녀온 적도 없는 주제이기에 사실 이런 판단을 내릴 자격은 없다. 해보지도 않은 주제에 구구절절이 욕할 자격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혼란스럽다. 이 책의 저자도 어느 정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p. 21

이런 마음 어떨까. 난 그들에게 고마웠다. 나보다 불행해줘서.

그래서 내가 적어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게 해 주어서 고마웠다.

 

취미활동으로써의 봉사라는 의도가 조금은 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현지에서 좌충우돌 하면서 아이들과 사랑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저자의 진심을 의심하기는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만남은 처음부터 이별을 예정하고 시작된다는 점에서 나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p. 127

비까스, 내 꼴을 봐. 너 찾으러 오느라 이렇게 됐어. 보여? 내가 얼마나 널 사랑하는지? 그래도 안 돌아갈래?”

그랬더니 비까스가 대뜸 내 마음에 못질을 한다.

미스는 한국으로 가버릴 거잖아요. 어서 가요. 왜 날 데리러 왔어요. 난 여기서 할머니랑 살 거에요. 미스는 왜 날 데리러 왔어요.”

 

그렇다 저자는 결국 그곳을 떠난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라하더라고 결과적으로 남겨지는(버려지는?) 사람들은 여전히 네팔의 어린이들이다. 1년정도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저자는 다시 자기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저자는 다시 삶으로 돌아와 힘들 때 꺼내볼수 있는 추억이 생겼을 것이고 네팔의 어린애들은 어떻게 될까? 또 새로운 사람이 와서 정을 붙이면 또 떠나가는 것일까?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맞다. 최대한 부정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그래 사람이 만나면 헤어짐도 있는것이지.. 어쩌겠냐 저기서 평생 살수도 없는 노릇이고 1년 고생했으면 나보다는 훌륭한 위인이다.. 그들만의 삶이 있겠지..’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결국 결론은 없다.

 

그래도 나만의 생각을 덧붙여 보자면, 자신의 삶을 쏟아붓지 않을 것이라면 해외봉사는 가지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일상에서부터 주변이 외국 노동자들, 소외받은 사람들을 사랑하기 시작하면 그 사랑이 점점 넓어져서 네팔까지 가는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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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일까? 1
김인호 그림, 남지은 글 / 홍익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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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이라는 측면에서 별다른 가치도 없고 아무도 읽지 않을 서평에 이런 사족을 다는 것이 열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당신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이미 누군가가 이 것을 읽는다는 뜻이 되겠고 아무도 읽지 않는다면 이 글을 읽어 볼 사람이 없기 때문에 괘념치 않고 써봐도 괜찮을 듯 싶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과 같이 사족을 단다.

 

이 서평은 별 다른 까닭없이 매우 부정적이고 편향적인 서평이 될 예정이다. 따라서 읽는 이로하여금 눈살을 찌푸르게 할 우려가 있으니 이 책(우연일까)에 대해 좋은 감정을 품고 있거나 별다른 생각이 없던 분들, 또는 기분을 상하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읽지 말아주시기를 바란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철저히 개인적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라는 개인이 겪은 것들을 토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의 세계는 주변으로 한정되어있고 나는 근본적으로 그 안에서 사고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게 된다. 그래서 나름 자신있게 말한다.

 

이건(이 책에서 묘사하는) 사랑이 아니다.

 

우연일까?’는 사실 새로울 것은 전혀 없는 만화이다. 그래서 결국 끝까지 보지 못하고 중간에 접었다(1권은 다 봤다). 하지만 결말은 쉽게 예상된다. 뻔하니까. 남녀 몇이 서로 얽히고 설켜있다가 몇몇은 잘 되고 잘 되지 못한 몇몇은 어디론가 떠나겠지. 중간에 뭐 부모나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사람들 때문에 고비도 몇 번 찾아 올테고...(근데 이게 뭐 꼭 나쁘다는 건 아니다. 어차피 해 아래 새로운 건 없다고도 하니까)

 

사실 이 만화에서 그리는 것들이 현실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사실적인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사랑이 이렇기에 그것이 만화로 표현될 것인가 아니면 만화에서 이게 사랑이야! 라며 반복적으로 이야기하기에 현실의 사랑이 그런 것으로 생각되어버린 것일까?

 

이러한 류의 만화에서는 대부분 사랑이란 서로 보고싶어서 안달이 나고 잠시도 연락이 안되면 안절부절하고 사소한걸로 삐졌다가 이벤트 같은 것에 풀어지는 신파로 묘사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상대에 대한 숨막히는 열망. 이러한 관계에서 개인은 연인에 잠식되어 간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열정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만화는 현실이 닥쳐올때쯤 하여 행복하게 막을 내린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서로 그리워하고 중간중간 한번씩 애달파하고 정렬적으로 몸을 섞고 항시 그렇게 24시간 서로를 생각하며 뜨겁게 달아오르는게 사랑인가? 한순간도 떨어져 있지 않는 것?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열이 다 타고 재만 남았을 때, 그래도 상대와 함께 하고 싶다면, 그때부터 사랑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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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리얼 쇼크 - 이미지는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는가?
최효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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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하나. 00아파트 베란다에서 행복한 모습으로 지나가는 평범한(?)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유명연예인의 아파트 광고

 

장면 둘. 땀구멍하나 보이지 않는 뽀얀 얼굴에 00화장품을 바르며 흡족한 표정으로 피부관리요? 별거 없어요. 00하나면 다 되거든요!’라고 외치는 마찬가지로 유명연예인의 화장품 광고

 

티브이를 거의 보지 않는 관계로 요즘 광고들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아마 요즘도 비슷할거라고 생각하지만 몇 년 전까지는 확실히 저런 광고들이 많았다. 아직 완공되지도 않은, 살아보지도 않은 아파트에서 살아서 행복해졌다고 웃으면서 구라를 치는 연예인(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불쌍하다는 듯이 내려다본다, 또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다). 몇 천 만원짜리 피부관리를 받으며 광고찍기 전까지 써본적도 없는 그 화장품 덕이라고 구라를 치는 연예인(이쯤되면 화장품이 아니라 현자의 돌 수준이지요?).

 

이렇게 우리가 티브이라는 미디어가 당당하게 치는 구라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이 구라인지도 모른채, 아니 알면서도 별 도리 없이 그 환상들을 손아귀에 넣기 위해 발버둥친다.

 

하이퍼 리얼 쇼크는 그러한 현상에 대해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보드리야르의 말을 빌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설명한다. 핵심 메커니즘은 시뮬라르크가 시뮬라시옹을 거쳐 하이퍼리얼이 되는 것이다. 각 용어의 개념은 다음과 같다

 

p. 19

시뮬라르크 : 원본이 없는 이미지로, 실재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며 실재보다 더 실재적인 것이다.

 

시뮬라시옹 : 하이퍼리얼을 산출하는 작업. 실재가 원본도 사실성도 없는 하이퍼리얼로 전화되는 과정이다.

 

하이퍼리얼 : 시뮬라르크, 즉 원본 없는 이미지가 새롭게 지배적인 현실이 되는 것을 말한다. 시뮬라르크가 실재를 대신하고 거꾸로 현실에 영향력을 발휘한다.

 

, 살아보지도 않은 아파트에 대한 행복감(시뮬라르크)을 표출하는 유명연예인의 구라를 듣고 시청자는 ,, 저런데 살면 정말 행복하겠다..’라는 시뮬라시옹 과정을 거쳐 ‘00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 그렇지 못하면 조금 불행한 거에요라는 하이퍼리얼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학구열이 불타오르던 시절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를 펼친 적이 있었다. 그 난해하기 짝이 없는 글 앞에서 좌절하고 애꿎은 역자만 탓하며 책을 덮고 말았다. 그래서 일까 제법 난해해 보이는 표지를 넘기자 등장하는 장 보드리야르의 이름을 보고 나는 덜컥 겁을 먹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저자는 나처럼 무지한 독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례를 곁들어주었다. 소비욕망의 주체도 모르고 소비하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욕망을 들춰보게끔 해주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책 안에서 같은 용어에 대한 설명(시뮬라르크, 라시옹, 하이퍼리얼)이 거의 매 챕터마다 나올정도로 과잉반복되어 독자로 하여금 지치게 한다는 점이다. 마치 매회 따로 따로 작성된 글들이 단순한 편집만을 거쳐 하나로 묶여 나온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p.166에 나온 사르트르의 피투체는 정확히 4페이지 후에 또 등장한다. 그리고 그 전 페이지에도 나왔었다).

 

또 한가지는 하이퍼리얼의 부정적인 현상에 대한 해결방안을 다룬 마지막 부분에서 대부분의 책임을 개인에게 지운다는 점이다. 위키피디아와 같은 사례도 제시되지는 개인적으로 이는 아직은 매우 미약하고 앞으로도 크게 무언가를 변화시킬것으로 기대되지는 않는다. 개개인이 현명한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결론?은 사실 가장 근본적인 답이긴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지키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이퍼리얼을 만들어내는 미디어라는 거대한 집단 앞에서 개인의 의지는 무력하기만 하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 집단적인 제제를(허위광고 제제강화와 같은 법적 제제라던지) 기대하였으나 그렇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해하기 짝이 없는 장 보드리야르의 여러 개념들을 여러 사례를 통해 쉽게 풀이해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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