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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기르다 ㅣ 청년사 작가주의 1
다니구치 지로 지음, 박숙경 옮김 / 청년사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일본 만화계에서 작가주의 작품을 하는 사람, 다니구치 지로
그의 만화다.
개를 만나고, 기르고, 나이 들어 죽어가는 모습을
기록하고 그렸다.
단편이다.
짧은 내용 속에 탐탐의 얘기가 있다.
그러나 작가 부부가 개 탐탐을 만나
크고 성장하고 행복했던
과거의 기억은 이 책에 없다.
이 책에선 오롯이 늙고 죽어가는 탐탐의 모습만을 기록한다.
그래서 읽는 사람들은 그들의 과거를 모르지만
그들이 늙어가는 탐탐을 돌보고, 뒷바라지 하는 모습에서
그들이 과거에 얼마나 충분히 탐탐과 행복했었는지를 짐작한다.
인연을 맺음은 곧 고통의 시작이다.
사랑은 이별로 가는 시작이고,
소소한 감정의 문제가 모여서 사랑을 이룬다.
생명과 생명이 만나서 이루는 인연은 다 비슷하게 그러하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도
사람과 개가 만나도
별반 달라지는 건 없다.
개와 만화가 만나면
주로 스토리는 행복하다
보기만 해도 행복한 객체인 개와
행복을 그리기에 안성맞춤의 기제인 만화가 만났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개도 생명이고
늙고 죽어감은 당연한 자연적인 현상이다.
그래서 다니구치 지로의 시도는 옳았지만
탐탐을 보내는 태도엔 그리 동감되지 않는다.
이 작가에게 탐탐이 어느 정도의 의미였는지가 그대로 느껴지는데
그걸 탓할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결국 관계의 문제일진데…작가에겐 책임으로의 관계가 강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그건 반려동물이 자기에게 어떤 의미였는지의 차이일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삶의 각각 다른 위치에 반려동물의 의미를 짓는 법이니까.
그래서 탐탐의 죽음을 보며 둘 사이의 관계를 정리하는 씬이 없다는 건 나로선 아쉬운 부분이었다.
“좀처럼 죽어지지가 않아. 좀처럼 갈 수가 없어.”
늙은 탐탐을 보며 이런 말을 하는 할머니가 등장한다.
거기에 포인트가 있지 않을까.
할머니도 그렇게 말은 하지만 죽고 싶지 않은 것처럼
건강하게 더 살고 싶은 것처럼
탐탐도 가족들과 더 ‘살아 있고’ 싶었을 게다.
사랑했던 가족과, 행복했던 가족과,,,,,자연이 목숨을 허락할 때까지.
몇 년 전 《뽀삐》라는 독립영화를 봤다.
강아지가 죽고 끝도 없이 슬퍼하는 아들을 보며 엄마가 한 마디 한다.
“개 하나 죽었다고 언제까지 이럴래, 응??”
그러자 아들의 대답.
“뽀삐가 왜 그냥 개야. 뽀삐는 뽀삐지. 엄마는 엄마 죽었는데 그냥 사람이 죽었다고 그러면 좋겠어?”
이런 문제인 게다.
그저 하나의 몸짓이 나에게로 와서 꽃의 되듯이
개는 그냥 개지만
함께 살면 탐탐이 되고, 뽀삐가 되고,,,,,그리고 찡이가 되는 것이다.
울 찡이도 열두살, 나도 두렵지만
내가 내 죽음을 기다리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의 생명이 다른 곳으로 옮아감을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