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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의 궤적
리베카 로언호스 지음, 황소연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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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책은 발견했을 때부터 읽는 게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책을 주문하고 도착하는 걸 기다리기까지의 기대조차 즐겁기 때문이다. 책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나는 책의 내용이 어떨지, 스토리는 어떻게 구성되었을지, 결말을 어떻고 편집과 책 만듦새는 어떨지 상상한다. 


우연히 서평을 신청하게 되었을 때, 나는 이 책을 읽어야만 한다고 느꼈다. 굳이 서평단으로 선정되지 않더라도 구매해서 읽을 생각이었다. 운 좋게 서평단에 선정되고, 책을 받았을 때 나는 직감했다. 이건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재밌는 책일 거라고. 앉은 자리에서 허겁지겁 읽어내렸던 기억이 난다. 집중력이 저하되어 어지간한 책은 한두 번 끊어야만 완독할 수 있었던 내가 순식간에 완독을 마쳤을 때의 쾌감이란. 무척 오랜만에 느낀 즐거움이기에 행복했다. 


미국 원주민들을 주제로 한 책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은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와 '달빛 노래'인데 이번에 이 책이 추가될 것 같다. <천둥의 궤적>은 미국 원주민의 사회와 설화를 바탕으로 한 판타지 소설이다. 새로운 종말, 생존을 위한 장벽, 누군가 인공적으로 만든 괴물과 그에 대항할 수 있는 신비한 힘. 모험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지나칠 수 없는 내용이다. 그래서 난 저당잡혔고, 뒤늦게 이 소설이 아직 출간되지 않은 시리즈물의 첫 편이란 걸 알고 뒷목을 잡았다.


<천둥의 궤적>은 상냥한 소설은 아니다. 하나하나의 설명 보단 툭툭 튀어나온 떡밥을 주워 먹으며 독자는 세계관을 상상해야 한다(어려운 세계관은 아니니 걱정 말길). 주인공인 매기 호스키조차 상냥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예민하고 신경질적이고 외로운 사람이다. 예민하고 신경질적이고 외로운 여성 영웅. 나같이 허구헌 날 비주류 소설을 주워먹으며 맛있다고 우는 사람에게 딱인 주인공 아닌가. 매기 호스키는 완벽하지 않아서 완성되었다. 이런 캐릭터는 좋아할 수밖에 없다. 나는 원래 이런 타입의 여성 주인공을 좋아한다. 어쩔 수 없다. 


익숙한 바탕이 아니기에 몰입할 수 있었고, 당연하단 듯이 등장하는 남성 주인공이 아니기에 즐길 수 있었으며, 매기와 카이의 캐미에 완독할 수 있었다. 


나는 다음 권을 기다릴 생각이다. 출판사가 얼른 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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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달님만이
장아미 지음 / 황금가지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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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가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살아간다 함은, 말 그대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소설마다 꽤 다양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오직 달님만이>의 살아감의 형태는 내가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평범한 보통의 여자아이가 살아가는 이야기. 그 대척점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 나는 보통의 여자아이가 살아가는 내용이 좋다. 그가 받는 시선과 시련과 감정들에 보통의 것과 특별한 것이 뒤섞이는 것이 좋다. 같은 여자이기에 이해할 수 있는 보통의 특별함이 드러나는 것이 좋다. 그래서 <오직 달님만이>의 모현이 좋았다.

별개로 희현은, 나는 책을 처음 읽은 순간부터 그를 연민할 수밖에 없었다. 모현의 두려움을(예를 들면 단오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 이해한 것과 같은 맥락일까. 내가 장녀라서 장녀인 희현을 연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그의 상황, 그의 남편의 됨됨이, 그러한 것들을 생각하면 희현이 안쓰러웠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어쩌면 모현은 운이 좋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모현은 둘째였기에 장녀인 희현과 다른 방법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성정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정말 잘 읽은 소설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족스럽고 배부른 느낌의 소설이었다. 만약, 독특한 구성의 흥미진진한 단권 짜리 이야기를 찾는 사람이 있다면 <오직 달님만이>를 추천하고 싶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에 따라 다양하게 공감하고 연민할 구석이 많은 다정한 책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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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여왕- 레이디 제인 그레이
앨리슨 위어 지음, 권영주 옮김 / 루비박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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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중세를 여행하는 사람들
아베 긴야 지음, 오정환 옮김 / 한길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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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목 매달린 자의 노래- 프랑수아 비용 연구
김준현 지음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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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주문하면 "6월 7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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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신분, 중세 여성의 역사
슐람미스 샤하르 지음, 최애리 옮김 / 나남출판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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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 스트라이크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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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는 사람들>




줄거리를 정말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살아남아 살아가고 존재하는 이야기>이다. 서로의 무리에서 소외된 '루'와 '비오'가 만나 변화를 이루고, 그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살아가는 이야기. 끝내 살아남진 못했지만 이 세상엔 존재할 사람에 대한 이야기. 서로 엇갈렸으나 타협점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지배당하는 쪽이 평등을 외치는 이야기. 


조류가 충돌한다는 뜻인 '버드스트라이크'와 결합하면 제목만으로도 완벽해진다. 충돌은 다양한 맥락에서 존재할 것이다. 익인과 도시 사람의 충돌, 비오와 루의 충돌, 가치관과 가치관의 충돌, 전통의 답습과 해체의 충돌, 그 외 기타 등등. 중요한 것은 충돌을 통해서 변하는 것이 있고 나아가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우리가 그러하듯이, 혹은 그러하기 힘들 듯이.


아무튼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나는 살아남는 사람들(특히 여자가 살아남는)에 관한 이야기를 무척 좋아한다. 어찌 되었든 간에 캐릭터가 살아남는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정말 내 취향이었고, 구병모 작가님의 글이니만큼 더욱 더 취향일 수밖에 없었다. 작가님이 쓰시는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말.. 너무.. 좋다.. 


제일 좋았던 부분은 마지막의 편지 부분이었다.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모든 것이 정리된 후에 두 여자가 주고받는 편지엔 타인에 대한 이해가 묻어났기 때문이었다. 이런 은근한 배려들, 혹은 대놓고 보내는 이해 같은 건 언제나 좋은 법이니까. 그중 저절로 웃음이 난 내용은 루가 사와와 아무개의 결정을 수긍하는 것과 지요의 결혼을 환영하는 것이었다. 왜냐면 그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으니까. 


자신이 충분한 고민 끝에 본인의 삶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면, 그것에 관해 타인이 가타부타 말을 얹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도 타인에게 그렇게 대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지만, 가까운 사람일수록 힘들다. 아니, 대부분 다 그러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루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고, 친구로 되고 싶은 사람이며,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다. 


읽으면서 구절구절 좋은 부분을 표시해두었는데, 그걸 다 쓰려니 너무 중구난방의 글이 될 것 같아서(이미 중구난방이지만) 이만 줄여야 할 것 같다. 만약에 살아남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꼭 읽어보았으면 한다. 


+) 구병모 작가님의 문체는 종결어미 부분이 하강하는 느낌을 주기에 하강하는 문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문체와 소설이 완벽하게 맞물린다. 상승과 하강이 주는 가파른 순간을 좋아한다면 버드 스트라이크를 한 번 읽어보았으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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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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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에 뽑히고 쓰는 두 번째 서평. 


이번에 읽게 된 소설은 정세랑 작가님의 <옥상에서 만나요>에 실린 '이혼 세일'이었다. 


단편의 제목이 '이혼 세일'인 이유는, 이혼을 결심한 이재가 자신의 친구들에게 그동안 자신이 결혼 생활 동안 갖고 있었던 물건을 싸게 팔았기 때문이다. 정말 객관적이고 깔끔한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이 담백함은 이재와 가장 비슷한 성질이 아닐까 생각했다. 소설을 읽으면 알 수 있듯이 이재는 너무나도 담백한 사람이기 때문에. 


소설엔 총 여섯 명의 여자들이 나오고, 그들은 전부 학창시절의 친구였으며, 각자의 사정을 가진 어른이 되었다. 현실의 우리들처럼 제각각의 삶을 살고, 제각각의 생각을 가진 다섯 사람들을 엮는 매개체는 이재다. 그들은 이재의 이혼 세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재를 떠올린다. 


독특하고, 특출나고, 무난하면서도, 어딘지 빛이 나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친구를. 


이혼세일을 읽으면서 가장 감탄했던 부분은 사람의 감정과 사고가 명확하게 그려진 부분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생각, 감정, 치부 따위를 명확한 단어나 문장으로 담담하게 적은 글을 읽는 것을 즐긴다.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정의되지 않은 추상을 구체화하는 데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나의 진솔한 감정(굳이 선하지 않더라도)을 정확히 적어내리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소설은 충분히 정확하게 담담하게 아무렇지 않게 그러한 부분을 그렸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아영과 지원의 이야기.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누구의 이야기를 가장 좋아할지 궁금하다. 


누군가를 동경하면서도 사랑하고, 사랑하면서도 질투하지 않고(여기서 질투란, 내 사고도 마비시킬 정도로 지독한 것), 질투하지 않으면서도 동경하는 관계란 존재할 수 있을까. 사실은 잘 모르겠다. 내가 너무나도 편협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아직까지 그런 식의 완벽한 관계를 가져본 적이 없다. 물론, 그 이전에 존재조차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왜냐면 동경, 사랑, 질투하지 않음이 하나의 관계로 굳어지려면 마땅히 그것을 가질 법한 사람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관계의 가운데에 있는 이재도 마냥 행복하진 않은 사람이다. 그의 남편 때문에. 


그러나 작품은 철저히 여섯 명의 여자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다섯이 보는 하나와 여섯의 시선으로 보는 세계. 각기 다른 성격과 삶을 가진 여섯 여자들이 무난하게 뭉쳐 굴러가며 살아가고, 이해하지 못해도 수용하고, 부러워하되 흠집 내지 않고, 누군가의 나아감을 걱정하는 동시에 축하하며 함께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이 좋았다. 


언젠가 나도 나이가 들어 이들과 같은 나이대, 혹은 그 이상의 나이대가 되었을 때 진심으로 내 주변의 모든 이들의 결정과 삶을 축하해주고 지지해주고 싶단 생각이 들어서. 


이번 달 23일에 본품이 발매된다고 한다. 다른 이야기들은 얼마나 다정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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