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들이 모여 도시를 만들고, 도시가 있어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도시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닮는다. 도시는 단순히 건축물이나 공간들을 모아 놓은 곳이 아니다. 도시는 그 공간을 향유하는 인간의 삶이 반영되기 때문에 인간이 추구하는 것과 욕망을 잘 드러내는 곳이다. 건축가 유현준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자신들이 만든 도시에 인간의 삶이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과연 더 행복해지는지 아니면 피폐해지고 있는지 도시의 답변을 들려준다.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이라는 부제목처럼 이 책은 건축을, 도시를, 공간을, 더 나아가서는 우리 삶을 관통하는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전체 15장을"호텔과 모텔은 창문 하나 차이? / 사무실 자리 배치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 / 왜 보스턴 코먼 공원에는 밤에도 사람이 많은데 뉴욕 센트럴 파크에는 밤에 사람이 없을까? / 절에 들어가는 건 쉬운데 왜 교회에 들어가는 건 어려울까? / 은행가들이 미술가들을 따라 이사를 다닌 이유는?"처럼 일상에서 한 번 쯤은 생각해봤을, 하지만 쉽게 답하긴 힘든 일상의 여러 현장들을 저자는 예리한 감수성과 통찰력으로 도시와 환경 곳곳에 대한 날카로우면서도 흥미로운 관찰을 글로 엮었다.

    이 책은 도시가 사람에게 전하는 공간의 언어를 논리적인 근거를 대며 인간의 말로 바꾸어 놓는다. 도시의 보이는 것들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읽어 내는 저자의 혜안과 통찰이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전공자들이나 이해할 만한 건축 구조, 기법, 디자인 같은 것들이 내용의 주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 안에 숨어있는 정치, 경제, 문화, 과학적 측면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니 건축 관련 지식이 전무한 독자들이라 하더라도 어렵지 않고 흥미롭게 책의 내용을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대목은 책의 끝머리에 저자가 ‘한국적’인 건축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역설한 부분이다. "'시간'이라는 절대적인 재료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전통이 될 것이다."라는 저자의 주장은 재개발을 밥 먹듯이 하는 우리나라의 아파트 위주 개발 공사에 경각심을 준다. 우리의 도시 그 자체를 느끼기 위해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조금이라도 더 많아졌으면 하면서, 우리가 사는 삶의 터전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벽이 만든 세계사
함규진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이 언제부터 '벽'을 만들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벽을 세우고 편을 나눔으로써 대상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벽은 벽일뿐 그 자체론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럼에도 벽이란 단어가 부정적인 느낌을 연상시키는 까닭은 벽이 단순히 어떤 집단과 공간을 구분하는 물리적 실체로 작용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와 '그들', 즉 '이편'과 '저편'을 나누는 차별의 도구로 이용된 적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벽의 첫 번째 목적은 나와 우리를 보호하는 방어의 성격이 짙지만 이내 벽은 공격적인 수단이 되어 차별과 분단을 가져왔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인기 프로그램인 <썰전>에 출연하여 다양한 역사적 소재와 사건을 흥미롭게 전달해주었던 저자 자 함규진 교수는 서문에서 밝힌 대로 모든 역사를 훑는 대신 기억할 가치가 있는 여러 벽들을 4부 12장으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1부의 고대의 만리장성과 하드리아누스 장벽, 중세의 테오도시우스 성벽은 모두 외적들로부터 자국민들을 보호하려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너무도 긴 길이 때문에 만리장성과 하드리아누스 장벽이 정말로 실용적이었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이것들은 방어적으로, 때로는 공격적인 기능을 다하며 제국의 국경선 역할을 했다. 이후에 만리장성에 다소 부정적인 편견이 씌워진 이유를 중국과 한국에 뿌리 깊게 이어진 유교적 전통 때문으로 설명한 대목이 튿히 인상적이었다. 농업을 중시한 유가 사상에게 대규모의 토목 공사는 나라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지키기 위한 테오도시우스 성벽은 오랫동안 그 위엄을 지킨 채 도시를 굳건히 지켜주던 든든한 존재였지만 날로 발전하는 공성 기술과 침략자들의 끈질김 때문에 결국 그 역할을 다 한다.   


    2부에선 오스트레일리아의 토끼 장벽과 파리 코뮌 시절에 시민들의 저항을 위해 설치된 장벽을 다룬다. 어느 영국 이민자의 토끼 사냥을 하고 싶었다는 지극히 사적인 취향 때문에 처음 호주에 들어온 토끼들은 유럽보다 훨씬 더 온화한 기후 속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한다. 물리적인 벽을 세우고 이것으로 소용이 없자 대규모의 토끼 사냥, 심지어는 토끼를 잡을 바이러스까지 쓰지만 이 모두에 적응한 토끼들은 지금 이 순간도 식물의 씨앗까지 통쨰로 먹으며 손 쓸 수 없이 불어나 호주의 사막화를 가속화하고 있는 주범으로 꼽힌다. 이어지는 파리 코뮌과 3부의 마지노선, 게토 장벽, 베를린 장벽, 한반도 군사분계선, 4부의 팔레스타인 장벽, 각종 난민 장벽은 모두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과 연관이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도시는 황폐화된다. 전쟁이 끝나도 전쟁은 벽을 남겨 여전히 공간과 집단을 단절시킨다. 한국전쟁이 종전도 아닌 휴전으로 일단 마무리되고 여전히 분단이라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는 우리나라에겐 이 사실이 더욱 아프게 다가올 테다.


    책의 마지막인 4부 12장에선 물리적 실체를 가진 벽이 아닌 인터넷 공간의 사이버 장벽을 다룬다. 악명 높은 중국의 '황금 방패'는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국민의 알 권리를 크게 제한하고, 다국적 IT 기업의 중국 진출을 방해하는 가장 커다란 장애물이다. 중국 정부와 당의 지원을 받으면서 중국의 IT 기업들은 내수 시장을 넘어 세계적인 규모로 성장했지만 이에 따른 반작용 역시 점점 더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물리적이진 않지만 이 사이버 장벽 역시 집단을 나누고 차별의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에서 열거한 벽들과 맥락이 다르지 않다. 벽은 눈에 띄는 주연은 아니더라도 역사의 줄기를 바꾼 커다란 역할을 해왔으며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과장을 보태 세계사(World History)는 곧 벽의 역사(Wall-ed History)라고 이야기해도 될 정도이다.


    저자의 인상적인 서문을 인용하고 재구성하여 글을 마무리한다. "인류는 장벽을 통해 '자신들'을 '저들'과 구분 지었고, 그리하여 '우리'의 정체성을 확보했다. 장벽을 새롭게 세울 것인가, 기존의 장벽을 무너뜨릴 것인가? 장벽 '이편'과 '저편'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이 책의 내용에서 무엇을 인식하고, 아마도 자신의 눈앞이나 손끝에, 또는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을 장벽에 대해 어떻게 바라볼지, 판단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베토벤 - 절망의 심연에서 불러낸 환희의 선율 클래식 클라우드 17
최은규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2월
평점 :
품절


클래식엔 문외한이지만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이라는 음악가는 어릴 적부터 내게 무척이나 선명하게 다가왔다. 어린 시절 집 한 구석 책장에 꽂혀 있는 위인전 시리즈를 읽었는데 내가 가장 먼저 읽었던 음악가가 다름아닌 베토벤이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음악에 놀라운 재능을 발휘해 당대 유럽 최고의 음악가였던 베토벤은 음악가에게 가장 중요한 청력을 어느 날부터인가 문득 잃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고난과 역경, 그리고 음악가로선 치명적인 약점을 뚫고 베토벤은 오늘날까지 꾸준히 연주되는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그야말로 '위인'의 표본이라 할 만하다.


어릴 때엔 위인전에 실린 인물들의 삶을 접하면서 그저 대단하다고만 느끼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 때보다 나이를 먹은 요즘엔 위인전이란 것이 사실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아무리 위인이라 할지라도 어떤 인물의 삶이란 너무도 복잡하고 입체적이기에 한 면만으론 그 사람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판단하기 힘든 이유에서이다. 다른 #클래식클라우드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거장의 삶과 행적을 폭넓게 다루는 이번 #베토벤 역시 이 인물을 다채롭게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베토벤의 흔적을 찾아 떠난 작가 #최은규 의 여정은 그가 태어난 독일 본과 대부분의 음악 활동을 한 오스트리아 빈에 집중되어 있다. 책에서 베토벤이 눈을 감기 전까지 그리워했다던 고향 본의 풍경과 도시를 흐르는 라인강의 묘사가 내가 교환학생으로 독일에 머무르는 시절 본을 여행해 베토벤 생가에 들렀던 때를 떠울리게 했다. 고향을 떠나 당시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였던 빈에서도 베토벤은 예술적 실력과 재능을 발휘해 최고 음악가의 반열에 올랐다. 이는 물론 베토벤이 누구보다 뛰어난 음악가였기 때문이지만, 클래식 음악이 궁정과 귀족 중심에서 점차 대중에게로 확대되는 시점에서 베토벤은 이전의 음악가들과 차별화되는 기법과 표현을 적극 활용했기도 했고, 수많은 귀족들의 후원을 바탕으로 생계 걱정없이 오로지 연주와 작곡에 몰두할 수 있었던 환경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청력 상실이라는 커다란 난관 앞에서도 끝끝내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 베토벤의 예술을 향한 열정과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순수함이었다. 뛰어난 연주자였던 베토벤은 청력을 잃은 후 작곡 활동에 매진하여 주옥같은 교향곡을 남겼다. <전원>, <영웅>, <운명>, <합창>같은 그의 대표 교향굑들은 당시의 복잡한 정치적, 역사적 맥락을 반영하기도 했지만 인간의 의지와 희망, 그리고 하나됨을 그리는 그 자체로 인간을 향한 거대한 찬사와 다름없다. 


어렵고 낯설게만 느껴졌던 #클래식음악 에 관한 설명도 책에 삽입된 도판과 소개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qr코드 덕분에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내용 전달에도 신경을 많이 쓴 꼼꼼한 편집이 돋보인다. 마지막으로 책의 표지를 장식한 건 베토벤처럼 거의 평생을 빈에서 활동했던 오스트리아의 화가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의 대표작 <베토벤 프리즈(Beethoven Frieze)>의 일부이다. 음악과 미술이라는 다른 분야지만 베토벤이 장르와 시대를 초월해 다른 예술가에게 어떤 영감을 불어 넣었는지 그대로 느껴진다. 그림에선 여러 인물들이 같은 표정과 몸짓을 한 채 하나가 되어 '합창'을 하고 있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인 올해 베토벤의 음악은 어느 때보다 많이 연주될 것이다. 그가 남긴 작품을 들으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뮈 - 지중해의 태양 아래에서 만난 영원한 이방인 클래식 클라우드 16
최수철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처음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의 작품을 접했던 건 대학 새내기 때 그의 대표작인 <이방인(L’etranger)>을 통해서였다. 하나밖에 없는 어머니의 죽음과 너무나도 냉소적인 주인공 뫼르소의 태도, 연인과의 유희와 해변에서 시비가 붙은 아랍인 남성을 죽인 우빌적인 행위, 살인이라는 죄목보다 어머니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는 기색을 보였다는 괘심죄로 인한 사형 선고, 이 모든 일에도 아랑곳없이 당당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며 세상을 등지는 주인공. 짧은 분량이지만 지중해의 태양만큼 강렬하게 다가온 이 소설은 부조리 그 자체인 우리 인간의 삶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고발한다.
.
몇년 후에 읽었던 또다른 그의 대표작 <페스트(La peste)>는 2차 대전의 전운이 감돌기 전의 알제리의 오랑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중세 유럽을 휩쓸어 당시 인구의 1/3 가까이 되는 목숨을 앗아갔던 이 전염병이 온 도시를 덮치면서 사람들은 고립되고, 정신적으로도 크나큰 갈등을 겪는다. 하지만 죽음의 기운이 엄습한 이 상황에서도 카뮈는 인간을 주목한다.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이 천재지변과 같은 상황에서도 결국 우리 인간의 희망, 의지, 협력, 그리고 사랑이 전례없는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는 열쇠가 되는 것이다.
.
단 두 작품을 읽었을 뿐이지만 카뮈란 작가는 내게 큰 여운을 주었다. 첫 작품에서 반항적인 인간의 태도와 이를 둘러싼 부조리한 사회와 제도를 조망한 작가가 어떤 이유로 궁극적인 인간 찬가에 탐닉하게 된 건지 몹시 궁금했는데, 최수철 작가와 함께 한 이번 여정을 통해서 그 의문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
문학에서 작가의 삶과 작품을 따로 떼어놓긴 힘들다. 당시 프랑스 치하의 식민지인 알제리에서 자란 이민자 3세인 카뮈는 이질적인 문화를 동시에 느끼면서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다. 평생을 불어로 직품 활동을 하며 파리로 가던 중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작품엔 지중해의 강렬한 태양과 기후가 중요한 모티프로 다루어진다. 프랑스와 알제리, 둘 중 하나를 명확히 택하지 않았던 이유로, 또 정치적으로는 공산 노선도 반공 노선도 거부하며 오로지 도덕주의에 탐닉했던 그는 생전에 파리 지식인 사회에서 고립되었다. 하지만 문학은 으레 경계인의 삶을 다루는 법이고 카뮈 역시 그러했다. 인간은 한 면으로 판단하기엔 너무도 복잡한 존재인 법이다.
.
지중해에서 대서양에 이르기까지, 알제리외 프랑스 여기저기를 가로지른 긴 여정으로 카뮈의 발자취를 좇아왔다. 내가 알 수 있었던 건 그가 인간이란 존재를 얼마나 유심히 관찰하고 또 사랑했는지에 관한 점이다. 인간을 사랑했기에 카뮈는 우리를 억죄는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사회의 관습과 제도, 뭇사람들의 인식, 그리고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저항’하는 당당한 모습을 묘사했다. 또 이를 보다 객관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지나친 감정이입 보다는 약간의 거리를 두어 담담하게 우리의 행동과 감정을 관찰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외중에도 잊지 않았던 건 인간이 그려낼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이었다.
.
그가 죽기 전까지 집필했던 <최초의 인간(Le premier homme)>는 카뮈의 급사로 인해 미완성으로 남았다. 하지만 최수철 작가의 말마따나 우리는 태어나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최초’의 인간이자 죽음으로 삶을 마무리하는 ‘최후’의 인간이기도 하다. 각자의 삶에는 정답도, 모범답안도 없기에 이 작품이 미왼성으로 남은 건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주는 게 아닐까. 지중해의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우리의 인생을 생각하는 건, 카뮈와 악수하는 것과 다름없지 않을까.
-
-
(본 서평은 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했음을 밝힙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들은 왜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가 - 문화재 약탈과 반환을 둘러싼 논쟁의 세계사
김경민 지음 / 을유문화사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빼았긴 물건을 돌려받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당연한 일이다. 개인 간의 문제는 이렇게 해결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이지만 이것이 만약 국가 대 국가의 문제가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더군다나 그것이 '문화재 반환'에 관한 것이라면 이 경우엔 양상이 훨씬 복잡하고 어려워진다.

 

  2006년부터 약 1년 동안 MBC에서 방영된 <위대한 유산 74434>라는 프로그램을 혹 아시는지? 제목의 74434라는 숫자는 우리나라에서 해외로 불법적으로 약탈되거나 반출된 유물의 숫자라고 한다. 20세기 초는 서구의 제국주의라는 욕망의 물결이 전세계를 뒤덮었던 시기였고 대부분의 나라들이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 크나큰 고통을 겪었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었고 1945년에 광복을 맞이하기 전까지 일제의 치하에서 많은 아픔을 겪었다. 이 시기에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 유산들이 불법적으로 약탈되거나 밀반출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무려 7만여점이라는 유물이 불법적인 행위를 통해 우리나라를 떠나게 됐다는 사실이 참 안타깝지만 소재가 불분명한 유물들까지 고려하면 그 숫자는 더욱 클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나라로 돌아와야할 약탈 문화재의 대부분이 지금 일본에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비단 일본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일본보다 훨씬 많은 식민지를, 더욱 오랫동안 지배했던 영국과 프랑스같은 유럽의 열강들은 영국 박물관과 루브르 박물관으로 대표되는 세계적인 박물관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논란이 되는 것은 이 거대한 시설들의 대부분은 자국의 문화재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약탈한 그 나라의 소중한 문화 유산이란 점이다. 자국의 문화재를 반환해달라는 요청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들은 일관되게 요청을 무시 또는 거절하거나, 심지어는 적반하장으로 문화재 관리와 보전에는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드는데 이것을 우리가 대신해주고 있는 것이니 오히려 문화재를 빼았긴 원산국은 시장국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는 논리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그중에서도 영국의 문화재 약탈 사례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저자는 1부에서 전세계의 여러 사례를 통해 문화재 약탈의 역사를 살피고, 2부에서는 영국이 문화재 반환을 거부하는 이론적/법률적 근거를 꼼꼼하게 살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UN이 설립된 이후 많은 나라들은 타국과의 협력과 교류를 증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고 있다. 그렇지만 협력이 있으면 분쟁도 있기 마련이라 이런 사태를 방지하고 중재하고자 관련된 국제법 조항도 많다. 책에서 소개했던 문화재 반환 문제 사례들이 그저 국제법으로 해결될 수 있다면 사안이 이렇게 복잡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국제법이 지닌 실질적인 한계를 고려한다면 문화재 반환 문제는 단순히 법률적인 토대 위에서만으론 풀리지 않는다. 약탈된 문화재가 원래 소유국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윤리적으로 당연한 주장, 우리의 문화재는 반드시 우리가 되찾아야 한다는 맹목적인 민족주의 감정, 다른 국가들의 동정적인 시선만으론 문화재 반환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운 것이 슬픈 현실이다. 

 

  프랑스의 TGV를 모델로 해 개통된 우리나라의 고속철도 KTX는 병인양요 때 약탈되었던 외규장각 도서가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영구반환'이 아닌 5년마다 '임대 갱신'이라는 형태였다. 한국인을 포함한 피약탈국민 누구나 침략에 대한 사과를 포함한 영구적인 문화재 반환을 원한다. 그러나 약탈국의 현행 국내법을 무시한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며, 국내의 반대파와 피약탈국의 요구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를 감수해야 하는 약탈국 정부의 사정, 약탈국의 국민이지만 약탈된 문화재가 한국에 돌아갈 수 있도록 추진중인 지한파 인사들의 정치적 입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하기로 마음 먹은 가장 큰 이유다.

 

 빼았긴 문화재를 바로 반환받는 것은 대내외적인 여러 문제를 고려해서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문화재 반환은 원산국과 시장국 사이의 문제이니만큼, 단순히 원산국의 민족주의적이고 도덕적 정당성에 기댄 주장에서 벗어나 시장국에서 펼치는 반환 거부 논리를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 논리적으로 반박하려는 노력 역시 꼭 필요하다. 슬프지만 냉정히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 나라의 문화재는 당연히 원래 있던 나라로 돌아와야 한다"는 주장만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으니 말이다.

내부의 민족주의적 감정이나 외부의 동정론과 같은 기존의 도덕적 우월성에만 기대지 말고, 영국과 같은 시장국의 반환 거부 논리를 구체적 사례와 함께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작업이 병행되어야만 정당한 문화재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 P34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