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카뮈 - 지중해의 태양 아래에서 만난 영원한 이방인 ㅣ 클래식 클라우드 16
최수철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월
평점 :
내가 처음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의 작품을 접했던 건 대학 새내기 때 그의 대표작인 <이방인(L’etranger)>을 통해서였다. 하나밖에 없는 어머니의 죽음과 너무나도 냉소적인 주인공 뫼르소의 태도, 연인과의 유희와 해변에서 시비가 붙은 아랍인 남성을 죽인 우빌적인 행위, 살인이라는 죄목보다 어머니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는 기색을 보였다는 괘심죄로 인한 사형 선고, 이 모든 일에도 아랑곳없이 당당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며 세상을 등지는 주인공. 짧은 분량이지만 지중해의 태양만큼 강렬하게 다가온 이 소설은 부조리 그 자체인 우리 인간의 삶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고발한다.
.
몇년 후에 읽었던 또다른 그의 대표작 <페스트(La peste)>는 2차 대전의 전운이 감돌기 전의 알제리의 오랑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중세 유럽을 휩쓸어 당시 인구의 1/3 가까이 되는 목숨을 앗아갔던 이 전염병이 온 도시를 덮치면서 사람들은 고립되고, 정신적으로도 크나큰 갈등을 겪는다. 하지만 죽음의 기운이 엄습한 이 상황에서도 카뮈는 인간을 주목한다.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이 천재지변과 같은 상황에서도 결국 우리 인간의 희망, 의지, 협력, 그리고 사랑이 전례없는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는 열쇠가 되는 것이다.
.
단 두 작품을 읽었을 뿐이지만 카뮈란 작가는 내게 큰 여운을 주었다. 첫 작품에서 반항적인 인간의 태도와 이를 둘러싼 부조리한 사회와 제도를 조망한 작가가 어떤 이유로 궁극적인 인간 찬가에 탐닉하게 된 건지 몹시 궁금했는데, 최수철 작가와 함께 한 이번 여정을 통해서 그 의문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
문학에서 작가의 삶과 작품을 따로 떼어놓긴 힘들다. 당시 프랑스 치하의 식민지인 알제리에서 자란 이민자 3세인 카뮈는 이질적인 문화를 동시에 느끼면서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다. 평생을 불어로 직품 활동을 하며 파리로 가던 중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작품엔 지중해의 강렬한 태양과 기후가 중요한 모티프로 다루어진다. 프랑스와 알제리, 둘 중 하나를 명확히 택하지 않았던 이유로, 또 정치적으로는 공산 노선도 반공 노선도 거부하며 오로지 도덕주의에 탐닉했던 그는 생전에 파리 지식인 사회에서 고립되었다. 하지만 문학은 으레 경계인의 삶을 다루는 법이고 카뮈 역시 그러했다. 인간은 한 면으로 판단하기엔 너무도 복잡한 존재인 법이다.
.
지중해에서 대서양에 이르기까지, 알제리외 프랑스 여기저기를 가로지른 긴 여정으로 카뮈의 발자취를 좇아왔다. 내가 알 수 있었던 건 그가 인간이란 존재를 얼마나 유심히 관찰하고 또 사랑했는지에 관한 점이다. 인간을 사랑했기에 카뮈는 우리를 억죄는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사회의 관습과 제도, 뭇사람들의 인식, 그리고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저항’하는 당당한 모습을 묘사했다. 또 이를 보다 객관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지나친 감정이입 보다는 약간의 거리를 두어 담담하게 우리의 행동과 감정을 관찰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외중에도 잊지 않았던 건 인간이 그려낼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이었다.
.
그가 죽기 전까지 집필했던 <최초의 인간(Le premier homme)>는 카뮈의 급사로 인해 미완성으로 남았다. 하지만 최수철 작가의 말마따나 우리는 태어나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최초’의 인간이자 죽음으로 삶을 마무리하는 ‘최후’의 인간이기도 하다. 각자의 삶에는 정답도, 모범답안도 없기에 이 작품이 미왼성으로 남은 건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주는 게 아닐까. 지중해의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우리의 인생을 생각하는 건, 카뮈와 악수하는 것과 다름없지 않을까.
-
-
(본 서평은 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