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억 - 철학자 김진영의 아포리즘
김진영 지음 / 한길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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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리즘 aphorism
[명사] 깊은 진리를 간결하게 표현한 말이나 글. 격언, 금언, 잠언, 경구 따위를 이른다.


한 번 뱉은
말은
두 번 다시 주울 수 없고 허공에 흩어지지만,
한 번 쓴
글은
기록으로 남아 지속성을 얻고
누군가의 뇌리에 침잠해 이윽고 영원성을 얻는다.

4년,
독일이란 머나먼 타국에서의 유학 생활 중
갑작스레 접한 동생의 사망이란 비보와
낯선 땅에 다시 돌아와서도 느끼는
끊임없는
고독감, 무력감, 우울감, 아니 멜랑콜리.
그리고 불면.

그러한 와중에도
사물과 세상의 본질을 꿰뚫는 듯한
날카롭지만 따스한 관찰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는가.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느끼는가.


늦었지만 2018년에 타계한 철학자 김진영의 명복을 빌면서 그의 생전 빛을 보지 못했던 고인의 다른 미발표 원고도 출간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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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랄리아 - 플루타르코스에게 배우는 지혜 한길그레이트북스 170
플루타르코스 지음, 윤진 옮김 / 한길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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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지식과 체계의 근본은 절대 다수가 서양에서 나온 것이며 그 근원에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전통이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그리스와 로마의 전통은 보통 함께 묶이는 경우가 많지만 둘은 같은 점만큼이나 다른 점도 많았다. 그리스의 경우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중심으로 지중해 유역에 수많은 도시 국가들이 존재했고 저마다 다른 개성과 특징을 자랑했다. 예컨대 아테나이와 스파르타를 비교해보면 공통점보단 차이점이 훨씬 두드러진다. 그에 반해 로마는 공화정으로 출발하긴 했지만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에 걸친 대제국으로 변모했고 이 광대한 영토를 하나로 묶기 위해선 ‘로마’라는 정신이 자리잡을 필요가 있었다. 황제라는 정치 권력이 등장하면서 로마인들의 신앙 역시 그리스 신화의 다신교에서 유일신앙의 기독교로 변모한 것은 그래서 필연적이었다.

    이렇게 다른 점이 많은 그리스와 로마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한 인물이 플루타르코스(Plutarchos, 46~119?)다. 그는 그리스 태생이었지만 당시 그리스는 제정 로마의 속주, 다시 말해 식민지 상태였다. 로마 시민권을 받을 정도로 로마의 통치를 긍정적으로 생각했지만 그는 아폴론의 신탁을 계시해주는 무녀가 있는 곳으로 유명한 델포이에서 신관으로 죽기 전 30년 정도나 봉직했기에 그리스의 전통도 잘 이해하고 있던 인물이라 볼 수 있다. 그가 남긴 가장 유명한 작품은 영웅 50명의 전기인 흔히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라 알려진 <대비열전 Bioi Paralleloi>이지만 교육, 지혜, 역사, 철학, 종교에 관한 담론들을 담은 <모랄리아>도 14세기 초 이래 여러 학자들이 편집하여 오늘날까지 읽히고 있다. 이 책은 충북대에서 역사학을 연구하는 윤진 교수가 지혜에 관한 담론 다섯 편을 추려낸 것이다.

    플루타르코스가 이 책을 쓴 게 거의 2천년 전인데 책에 나오는 일화들은 그보다 전이다. 당대의 수많은 인명들이 쏟아져 나오기에 마치 러시아 문학을 읽을 때처럼 머리가 어지러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어디까지나 짧은 일화들의 모음집이기에 호흡도 짧으며, 인물의 이름에 집착하지 않고 이 인물들이 어떤 ‘말’을 남겼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과 울림을 주는 지를 곱씹어 본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카이사르같은 유명한 인물이 남긴 말도 찾아볼 수 있지만 역시 눈길이 가는 건 책의 후반 스파르타인들의 어록이다.

    앤더슨의 <상상된 공동체>나 홉스봄의 <만들어진 전통>의 주장처럼 근대 국가는 산발적인 개인들을 하나의 개념으로 묶으면서 성립했는데, 이 과정에서 가장 주요한 역할을 한 것은 국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교육제도였고, 이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스파르타식 교육’에서 기원한 것이다. 국가와 민족을 강조하는 근대적 교육의 원형은 이미 고대 그리스 일부에 존재하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내용은 이 책의 일부이고, 미번역된 내용과 소실되어 현재에 전하지 않는 전체 분량을 생각하면 극히 일부겠으나 이러한 사상이 단초가 되어 유럽에 독일이나 이탈리아 같은 국가가 어떻게 근대에 출현했는지 살펴보면 분명 흥미로울 것이다.

    사실 이러한 내용은 차치하고서 이 책을 그저 재미있는 옛 이야기 모음으로 봐도 충분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형용사로 ‘도덕적인, 도의상의’ 그리고 명사로 ‘교훈’을 뜻하는 영단어 moral과 책의 제목 Moralia를 떠올려보자. 진정한 가르침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그 함의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지식은 시간이 지나며 얼마든지 바뀔 수 있지만 지혜는 우리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 우리를 한층 더 성장시킨다.



*. 한길사 대학생 서포터즈 4기 활동으로 한길사 출판사로부터 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서평은 전적으로 제 의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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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 원서 전면개정판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43
퀜틴 스키너 지음, 임동현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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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QR, 즉 'Senatus Populusque Romanus'의 줄임말로 로마 원로원과 인민들을 뜻하는 이 단어는 기원전 100년대 즈음부터 로마 공화국을 상징하는 국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공화정을 유지해 온 로마는 황제가 즉위하고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더욱 단일한 가치에 매진했다.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국으로 바뀌고, 훗날 로마가 멸망하고 교황령에서도 로마의 정통성을 자처하며 SPQR이란 국호는 계속 명맥을 유지했으나 당시 이탈리아 반도의 수많은 도시 국가들 중 하나인 피렌체에서 나고 자란 마키아벨리의 생각은 달랐다. 진정한 공화국의 가치는 전제정, 과두정, 민주정의 형태가 혼합된 데에서 나오며 이들의 상호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정한 법률과 체제가 마련되어야 국가는 최고로 발전하여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대표 저서인 <로마사 논고>의 주장이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오늘날이지만 마키아벨리의 주장은 오늘날에도 유효하여 작금의 제도가 과연 완전한 것인지 돌아보게 만든다. 그러나 오랫동안 마키아벨리는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은 어떠한 것이라도 상관없다는 <군주론>에서의 주장 때문에 역사적으로 많은 오해를 받았다. 무작정 인자함만 추구하는 것보다는 때로는 잔인한 수단도 가리지 않아야 한다고 요약할 수 있는 군주론의 내용은 고귀한 도덕성을 추구하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전통을 이어받은 당시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들, 그리고 선한 가치를 수호하고 전파해야할 교황청에겐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통치자의 덕치를 강조한 유교 문화권의 영향을 받은 동양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마키아벨리는 그렇게 곡해를 받아 전통적인 인문학을 경시하고 훗날 폭압적인 전체주의의 사상을 마련해줬다는 악명을 떨쳤다.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이란 단어 속의 부정적인 늬앙스는 곧 그에 대한 평가와 인식을 보여준다.


    그러나 군주론의 주장이 당대 기준으론 너무 파격적이라 당대의 평가가 박했기에 마키아벨리의 다른 저작과 주장을 흐리는 감이 있다.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가 이웃의 프랑스나 스페인처럼 통일된 왕국을 이루지 못하고 여러 도시로 분열되었기에 몇 차례나 외세의 침공을 받았던 조국 피렌체의 핍박과 서러움을 몸소 겪었다. 그래서 셔로마 제국 멸망 이후 오랫동안 분열된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고 이끌어 줄 강력한 지도자를 염원했고, 강력한 지도자가 폭압적으로 변할 경우를 대비해 온갖 장치를 마련하여 나라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재도와 사상을 마련한 이가 마키아벨리다. 그는 오랫동안 도덕과 종교에 눌려있던 정치를 끄집어 내어 역사 속에서 정치현상을 탐구하고 바람직한 미래를 논한 정치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다. 대상을 한 쪽에서만 바라보면 우리는 그 대상을 온전히 파악할 수가 없다. 마키아벨리에 관한 색안경을 바라보고 그를 입체적으로 바라봐여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의 사상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같은 대표작을 읽어야겠으나 여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이렇게 그의 생에와 사상을 요약하여 보여주는 이런 책이 더 반갑다. 오랫동안 르네상스와 근대 지성사를 연구해 온 퀜틴 스키너 교수의 저작은 마키아벨리에 대한 오해를 명료히 걷어준다. 정치철학과 정치사상을 공부하면서 마키아벨리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데, 국내에는 김경희 교수나 곽차섭 교수가 마키아벨리의 생애와 사상에 관한 책을 많이 내놓았으나 분량을 생각하면 이 책으로 마키아벨리에 관한 탐구를 시작하면 제격일 것 같다. "외교관" "군주의 조언자" "자유의 이론가" "피렌체의 역사가"라는 네 개의 상으로 요약할 수 있는 마키아벨리의 진면모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 교유당 서포터즈 활동으로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서평은 전적으로 제 의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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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탈리아, 미술과 걷다 - 어슬렁어슬렁 누비고 다닌 미술 여행기
류동현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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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은 우연일지 몰라도 반복은 필연이다. 저자가 이탈리아를 처음 여행하게 된 것은 배낭여행이라는 계획 속의 일부, 그러니까 어느 정도는 우연이었지만 이탈리아라는 낯선 공간이 그리는 풍경과 분위기에 매료된 나머지 이후로도 기회가 될 때마다 계절을 막론하고 이탈리아 전역을 여행했다고 한다. 찾으면 찾을수록, 보면 볼수록 더 궁금해지고 더 매력적인 곳이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탈리아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독일에 교환학생으로 머물 때였는데 학기 중에 2주나 되는 부활절 방학이 생겼다. 우중충한 독일 날씨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목적지로 강렬한 태양이 이글거리는 남유럽의 어딘가를 택하려고 마음 먹었다. 하지만 고민 끝에 내가 선택한 곳은 이탈리아 반도가 아니라 이베리아 반도였다. 겉핥기로 미술사와 미학을 조금 읽어본 게 전부인 내가 이탈리아에 즐비하게 남아있는 예술작품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나 있을지 걱정스럽기도 했고, 한국에서 흔히 가는 한두 달 짜리 유럽 패키지 여행에는 이탈리아가 꼭 포함되지만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유럽 서쪽 끝에 있기에 상대적으로 사람들이 덜 가는 곳을 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은 나에게 간접경험 역할을 충실히 해주었다.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이탈리아란 공간의 내밀한 속살을 유감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베네치아, 밀라노, 피렌체, 로마, 나폴리, 시칠리아를 비롯한 근방의 도시들과 거기에 있는 예술 작품들에 얽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저자가 몇 번이나 이탈리아를 찾으면서 곳곳을 여행한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통일된 이탈리아라는 나라는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졌기에 이탈리아는 유럽의 여느 나라보다 지방색이 강하다. 책에선 한 도시가 중심이 되는 장마다 서로 다른 색감을 부여했고 몇 장에 걸친 설명이 끝나면 그 뒤에는 명화와 건축물, 풍경 등의 도판이 충실하게 실려있어 앞의 내용을 보충해준다. 편안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편집에도 눈길이 갔다.

이탈리아는 하나의 나라지만 그 내면에는 수많은 도시들이 있고, 역사, 문화, 예술, 자연은 교차하면서 가지각색의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지금은 비록 머릿 속에서 이탈리아를 그리지만 그곳의 거리를 거닐며 직접 체감할 날을 고대해본다.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서로 다른 풍경 속에서도 하나의 이야기가 나오고 하나의 풍경 속에서도 수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_「프롤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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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철학 - 원서 전면개정판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42
레이먼드 웍스 지음, 박석훈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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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차 개정 교육과정 당시 고등학생이던 나는 수능 때 사회탐구 과목 중 하나로 ‘법과 사회’라는 과목을 선택했다. 고3 학교 수업시간에 처음 배운 이 과목의 도입부는 “‘법’이란 무엇이며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가”에 관해서, 다시 말해 법철학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법들이 있고 법들은 우리 행동의 폭을 결정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복잡해지고 변화의 속도도 빨라지고 있는 우리 생활의 커다란 일부가 된 법을 잘 알기 위해선 그 기저에 있는 이념, 그러니까 법에는 과연 어떤 철학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포문을 여는 것은 자연법론이다.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과 함께 법은 보편적이고 항구적이어야 한다는 사상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추적한다. 뒤이어 자연법에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인 법실증주의를 다룬다. 법의 효력 밑에는 추상적인 가치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법에 관한 다른 이념을 품은 두 대립항은 뒷장의 법과 도덕, 권력과 정의, 법과 사회와의 관계를 묻는 대목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책은 최근 학제간 연구의 산물인 비판적 법이론을 소개하며 앞서 소개된 법철학 논의들을 다시 생각해볼 여지를 남기고 법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한 저자와 역자의 후기로 마무리된다.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지만 입문서를, 그것도 한정된 분량에 내용을 정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법학처럼 두꺼운 서적이 당연시되는 분야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 책은 법철학의 흥미로운 주제들 위주로 우리에게 법은 무엇이며 어때야 하는가라는 난제에 관해 우리 나름의 답을 찾는데 도움이 되기에 충분하다. 부담없는 분량으로 내가 오랜만에 접하는 분야에 생각거리르 던져주고, 더 깊은 호기심을 유발해 다른 책을 찾아보는 마중물 역할을 충분히 해줬으니 말이다.


옥스퍼드 대학의 유명 입문서 시리즈인 A Very Short Introdiction의 일부인 이 책외에도 다른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이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로 많이 번역이 되었다. 출간목록을 살펴보니지금 정치사상을 공부하고 나중에 들을 수업과 졸업논문을 위해서 세계사의 흐름과 주요 사건을 숙지해야 할 내게 도움이 될 만한 다른 시리즈들이 많이 보이던데 틈틈이 독서해야겠다.


*. 이 책은 교유당 서포터즈 2기 활동으로 출판사에서 제공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서평은 전적으로 제 의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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