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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 원서 전면개정판 ㅣ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43
퀜틴 스키너 지음, 임동현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4월
평점 :
SPQR, 즉 'Senatus Populusque Romanus'의 줄임말로 로마 원로원과 인민들을 뜻하는 이 단어는 기원전 100년대 즈음부터 로마 공화국을 상징하는 국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공화정을 유지해 온 로마는 황제가 즉위하고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더욱 단일한 가치에 매진했다.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국으로 바뀌고, 훗날 로마가 멸망하고 교황령에서도 로마의 정통성을 자처하며 SPQR이란 국호는 계속 명맥을 유지했으나 당시 이탈리아 반도의 수많은 도시 국가들 중 하나인 피렌체에서 나고 자란 마키아벨리의 생각은 달랐다. 진정한 공화국의 가치는 전제정, 과두정, 민주정의 형태가 혼합된 데에서 나오며 이들의 상호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정한 법률과 체제가 마련되어야 국가는 최고로 발전하여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대표 저서인 <로마사 논고>의 주장이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오늘날이지만 마키아벨리의 주장은 오늘날에도 유효하여 작금의 제도가 과연 완전한 것인지 돌아보게 만든다. 그러나 오랫동안 마키아벨리는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은 어떠한 것이라도 상관없다는 <군주론>에서의 주장 때문에 역사적으로 많은 오해를 받았다. 무작정 인자함만 추구하는 것보다는 때로는 잔인한 수단도 가리지 않아야 한다고 요약할 수 있는 군주론의 내용은 고귀한 도덕성을 추구하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전통을 이어받은 당시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들, 그리고 선한 가치를 수호하고 전파해야할 교황청에겐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통치자의 덕치를 강조한 유교 문화권의 영향을 받은 동양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마키아벨리는 그렇게 곡해를 받아 전통적인 인문학을 경시하고 훗날 폭압적인 전체주의의 사상을 마련해줬다는 악명을 떨쳤다.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이란 단어 속의 부정적인 늬앙스는 곧 그에 대한 평가와 인식을 보여준다.
그러나 군주론의 주장이 당대 기준으론 너무 파격적이라 당대의 평가가 박했기에 마키아벨리의 다른 저작과 주장을 흐리는 감이 있다.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가 이웃의 프랑스나 스페인처럼 통일된 왕국을 이루지 못하고 여러 도시로 분열되었기에 몇 차례나 외세의 침공을 받았던 조국 피렌체의 핍박과 서러움을 몸소 겪었다. 그래서 셔로마 제국 멸망 이후 오랫동안 분열된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고 이끌어 줄 강력한 지도자를 염원했고, 강력한 지도자가 폭압적으로 변할 경우를 대비해 온갖 장치를 마련하여 나라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재도와 사상을 마련한 이가 마키아벨리다. 그는 오랫동안 도덕과 종교에 눌려있던 정치를 끄집어 내어 역사 속에서 정치현상을 탐구하고 바람직한 미래를 논한 정치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다. 대상을 한 쪽에서만 바라보면 우리는 그 대상을 온전히 파악할 수가 없다. 마키아벨리에 관한 색안경을 바라보고 그를 입체적으로 바라봐여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의 사상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같은 대표작을 읽어야겠으나 여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이렇게 그의 생에와 사상을 요약하여 보여주는 이런 책이 더 반갑다. 오랫동안 르네상스와 근대 지성사를 연구해 온 퀜틴 스키너 교수의 저작은 마키아벨리에 대한 오해를 명료히 걷어준다. 정치철학과 정치사상을 공부하면서 마키아벨리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데, 국내에는 김경희 교수나 곽차섭 교수가 마키아벨리의 생애와 사상에 관한 책을 많이 내놓았으나 분량을 생각하면 이 책으로 마키아벨리에 관한 탐구를 시작하면 제격일 것 같다. "외교관" "군주의 조언자" "자유의 이론가" "피렌체의 역사가"라는 네 개의 상으로 요약할 수 있는 마키아벨리의 진면모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 교유당 서포터즈 활동으로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서평은 전적으로 제 의견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