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가 된 식물들 - 에르메스 조향사가 안내하는 향수 식물학의 세계
장 클로드 엘레나 지음, 카린 도어링 프로저 그림, 이주영 옮김 / 아멜리에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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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가 단순히 후각을 넘어 우리의 감각과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건지 관심이 생겨 구매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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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2023.8 2023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브누아 브레빌 외 지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잡지)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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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8주년 광복절에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를 하루 후에 관람했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라 불린 물리학자 오펜하이머의 삶을 다룬 전기 영화지만, 격동적인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극이기도 했다. 역사는 아이러니하게 흘러갔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1년 전, 독일 과학자들은 우라늄 원소에 중성자를 때려주면 핵분열을 하며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해낸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러한 과학적 발견과 이를 응용해 대량 살상 무기를 만들어내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게 상식이다. 하지만 양자역학이 태동한 이후 과학은 전례없는 속도로 진보했다. 원자폭탄 개발도 전례없는 속도로 추진되었다. 나치 독일보다 어떻게든 먼저 핵무기를 개발하여 전쟁에서 주도권과 억제력을 지녀야 한다는 과학자들의 의견에 미국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하면서 이른바 맨해튼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1945년 7월 트리니티 실험 결과 미국은 원자폭탄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히틀러는 4월에 자살했고, 독일 역시 5월에 항복하여 유럽 전선은 마무리됐다. 독일에 투하될 예정이었던 핵무기는 결국 일본을 겨냥했다. 8월 6일 히로시마에 리틀보이가, 8월 9일 나가사키에 팻맨이 떨어졌다. 일본은 8월 15일 무조건 항복했다. 이제 남은 문제는 패전국으로 전락한 두 추축국, 독일과 일본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였다. 모두가 알다시피 독일은 동서로 분단되어 이념 대립의 상징이 되었고, 일본은 운좋게 분할되진 않았다. 왜 독일은 분단됐는데 일본은 분단되지 않았을까?


  피에르 랭베르 기자가 쓴 '모건도 계획'에 관한 글(p.44~49)에서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1944년 9월 15일, 캐나다에서 있었던 제2차 퀘벡 회담에선 패전 후 독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여러 의견이 있었다. 헨리 모건도는 당시 미국 재무부 장관이자 루스벨트 대통령의 측근이었다. 그는 세계 대전을 두 번이나 일으킨 독일이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도록 아예 농경과 목축 국가로 전락시키자고 강변했다. 군수 산업을 해체하고, 중화학 공업을 제거 혹은 파괴하여 독일을 무장 해제하고, 남북으로 분단시키는 걸 골자로 하는 계획이다. 


  유대인이었던 모건도는 악랄한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나치와 독일이란 나라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에게 독일은 그렇게 되어도 좋은 나라였다. 하지만 이 강경한 계획에는 반대하는 이도 많았으며, 이견은 미국 내에서 나왔다. 헨리 스팀슨 전쟁부 장관과 코델 헐 국무장관은 모건도 계획을 전후 청산이 아니라 또다른 학살이자 문명 파괴로 바라봤다. 나치의 등장과 발흥에는 베르사유 조약에서 규정한 가혹한 처사가 있었고, 모건도 계획은 여기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터였다. 결국 1945년 2월 얄타 회담에서 모건도 계획은 원안과 크게 달라졌고, 4월에 루스벨트 대통령이 사망한 후에는 폐기됐다. 


  1944년 아르덴 대공세가 무위로 돌아가면서 나치의 패망은 그때 이미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독일은 서부 전선에서 미국, 영국, 프랑스 연합군을, 그리고 동부 전선에서 소련을 동시에 맞상대할 수 없었다. 일본 역시 끈질기게 저항하고 있었지만 이미 기울어진 전황을 뒤집기엔 무리였다. 빠르든 늦든 간에 두 추축국은 곧 패전국이 될 참이었다. 처칠은 나치 독일과 대항한 소련의 뒤통수를 칠 '언씽커블 작전'까지 세웠지만, 명분도 없는 이 전쟁이 또다른 세계 대전으로 확산될 위험이 너무나 컸다.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 덕분에 미국이 계획한 '몰락 작전' 역시 시행되진 않았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세계는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이 맞선 냉전으로 재편되었다. 패전국 독일은 동서로 분단됐다. 역시 패전국인 일본은 분단되지 않았다. 대신 남북으로 쪼개진 건 35년 동안 일제 치하 식민지로 갖은 수모를 겪었던 한반도였다. 냉전의 틈바구니 속에 한 나라의 운명도 어느 과학자의 삶만큼이나 기구하게 흘러갔다. 1945년 여름이었다.  



덧1) 공격적 현실주의자로 명망 높은 정치학자 미어샤이머가 쓴 글(p.7~13)과 프랑스판 발행인 세르주 알리미가 쓴 글(p.14~17)은 꼭 일독을 권하고 싶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이 취했던 유화적인 태도가 아니었다면 미국이 지금같은 위기에 직면하지 않았을 거란 주장에 대한 근거가 인상적이었다. 이어지는 글에선 우크라이나 지원을 놓고 미국이 처한 딜레마가 잘 드러나있다.


덧2) 축알못이라 FC 바르셀로나 관련 글(p.73~79)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엘 클라시코가 왜 그리 관심을 모으는지, 카탈루냐의 대표 도시 바르셀로나와 카스티야의 대표 도시 마드리드 간 라이벌 구도를 역사적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카탈루냐는 북부 바스크 지방과 더불어 스페인에서 가장 독립 요구가 높은 지역이다. 



*. 르몽드코리아에서 모집한 신간 서평단에 선정되어 이 잡지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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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라이프
가이 대븐포트 지음, 박상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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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탁 위에 올려진 과일 바구니. 그 속에 든 사과, 배, 포도처럼 형형색색인 과일. 그 옆에 있는 잔. 보통 잔에는 물이 채워져 있지만, 와인이 담겨있을 때도 있다. 테이블 너머엔 창문과 벽난로가 있고, 촛대와 각종 장신구도 곳곳에 있다. 우리가 '정물화'를 연상할 때 머릿속에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다.


  이 책이 서문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정물화가 회화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는 유럽 근대 무렵부터였다. 오랫동안 이어졌던 중세 시대에서 그림은 곧 성경 내용을 옮기고 쉽게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르네상스를 지나 근대 시기에선 비로소 신을 넘어 인간이 더 주목받게 되었다. 신체적으로 열등해 다른 동물들과 생존 경쟁에서 불리했던 인간이 이토록 번성할 수 있었던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인간이 발명한 갖가지 도구 덕분이다. 문명의 발달은 곧 도구의 발명과 크게 연관되어 있다.

 

  초상화는 인간을 직접 그려 대상, 즉 존재의 특징을 나타낸다. 그런데 정물화에선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인간을 그림에서 배제한 풍경화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드러낸다면 정물화는 조금 성격이 다른 듯하다. 정물화가 부각하는 건 사람이 아니라 인간이 쓰는 일상 생활 속 도구와 공간이다. 이를 통해 사람이 그림 속에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떤 생활을 누리고 있으며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유추해낼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물건에 관심을 갖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며, 이처럼 '간접적'인 수단으로 범벅이 된 정물화를 읽어내는 데엔 맥락을 알 필요가 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기독교의 오랜 금언은 오랫동안 유럽 사람의 사고 방식과 생활 양식을 지배했다. 재산을 축적하고 더 많은 물건을 탐하는 건 경건하고 독실한 신앙 생활과 정반대되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이 기피했다. 고인물은 썩기 마련이라, 금욕을 강조하던 가톨릭의 폐단 때문에 개신교가 새로 유행했다. 온 유럽을 전란에 휘말리게 한 17세기 30년 전쟁 이후 유럽에는 이제 가톨릭과 개신교가 공존하게 됐다. 그 후 유럽에서 주도권을 잡은 건 네덜란드와 영국 같은 알프스 이북의 나라였다. 이 두 나라는 대항해시대로 가장 큰 이득을 보기도 했다. 종교의 안정, 과학의 발달, 그리고 세계관의 확장 같은 이유 덕택에 유럽에는 갖가지 도구가 수입, 발명되었다.


  유럽의 지식 세계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19세기와 20세기 초 유럽의 중심지는 프랑스 파리나 오스트리아 빈 같은 도시였다. 문학, 철학, 예술, 과학 분야의 전문가들이 서로 모여 교류하면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래서 이 시기를 다루는 예술사를 독해하다 보면 인명의 홍수 속에서 정신을 부여잡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내 경우엔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얇고 작은 책에다가 중간에는 도판도 많지만 온갖 참고문헌과 인용, 그리고 인명이 등장해 독서 중에 헤맨 적이 꽤 있었다. 첫 장에서 밝히듯 이 책이 서술하는 내용은 정물화 속 오브제처럼 어지러이 나열되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혼돈chaos 속에 질서cosmos가 있듯, 이집트 신화에서 오시리스가 생명과 죽음, 힌두 신화에서 시바가 파괴와 창조라는 상반되는 개념을 함께 관장하듯, 적은 텍스트 안에 이토록 방대한 내용이 담겨있다는 건 참 오묘하다. 



덧) 읽는 내내 나의 배경지식이 많이 부족하단 걸 느끼게 해준 책이다... 셜록 홈즈와 포의 고딕 소설을 중심으로 토르소와 두상에 관한 2장이 많이 어려웠고, 사과와 배라는 상반된 기의를 중심으로 한 정물화 해석이 이어진 3장은 퍽 흥미로웠다.



*. 을유문화사에서 모집한 신간 서평단에 선정되어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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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순간 - 역사로 미래를 전망하다 북저널리즘 (Book Journalism) 95
강원국 외 지음 / 스리체어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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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흐른다. 시간은 물리학적 개념이라 인간과 조금 더 가깝게 표현하즈면 시간을 곧 역사라 할 수 있겠다. 역사가 언제나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역사는 더 나은 쪽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전체적으로 우상향을 그리는 그래프라도 자세히 보면 정체해 있거나 오히러 역행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서글픈 사실이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이 그렇다.

양극화의 시대다. 전통적으로 있었던 빈부 격차는 물론 이념, 세대, 지역, 성별 갈등이 함께 어우러져 양상은 더욱 복잡해졌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지 않고 칼로 잘라서 문제를 해결했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대담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를 본받아야겠으나 그 방법을 있는 그대로 따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저런 일방적인 방법을 선택한다면 분명 누군가는 큰 피해와 상처를 입게될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새로운 갈등으로 이어진다면 우리는 더 큰 혼란 속에서 더 첨예하게 분열하고 대립할지도 모른다.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답을 찾기 위해 저자들은 저마다 다른 지점에 주목했다.
먼저 한계레 최우리 기자는 1970년 개통된 경부 고속도로 개통을 언급한다. 경부 고속도로 덕분에 우리는 시간을 크게 아끼고 생활권도 더욱 넓어졌지만 효율성과 결과만을 우선시하게 됐다.
강원국 작가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독도 특별 담화문을 소개한다. “독도는 우리땅”이라며 중요한 화두를 바로 제시하는 이 연설문에는 한일 관계는 물론 동아시아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홍성수 법학자는 우리나라에서 유독 지지부진한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해 말한다.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바탕에 둔 체제이고, 이를 보장하기 위해선 무분별한 차별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동춘 사회학자는 여순 사건과 제주 4•3 사건을 예로 들며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의 문제점을 설명한다. 일제강점기 치안유지법의 뒤를 이어 반공 체제를 조성하기 위한 국가보안법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구조적 문제와 사회 병폐의 원인이라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나라스페이스 박재필 대표는 스페이스X가 개발한 팰컨 헤비 Falcon Heavy가 2018년 2월 6일에 성공적으로 동시 착륙했던 사건을 꼽는다. 우주 탐사에 드는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하면서 우리는 우주 산업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올드스페이스에서 뉴스페이스로 전환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모두 일리가 있는 주장이었고 흥미가 생기는 주제였지만 역시 강연까지 들었던 강원국 작가님의 글에사 생각해볼 대목이 많이 생겼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은 더욱 많아졌지만 말은 공허한 메아리로 남을 뿐이다. 상대방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태도가 없다면 소통은 일어나지 않는다. “말의 혼돈시대”에서 허우적대지 않으려면 극단을 넘어 화합과 이해, 공감을 우선시하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 북저널리즘 북클럽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이 책을 제공받았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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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적 친화력 을유세계문학전집 127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장희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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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촉매란 "반응 과정에서 표준 깁스 자유 에너지를 바꾸지 않으면서 반응 속도를 높여주는 물질"을 뜻한다. 여기에서 나아가 이런 비유적 표현, 즉 촉매는 특정 사건이나 현상이 발생하도록 도움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여느 생물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역시 생존을 넘어 종족을 보전하려는 번식욕이 있다. 다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이런 생물학적 욕구를 보완해줄 장치가 필요했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그렇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서로 다른 가정에서 태어나 다른 환경 속에서 성장한 이들이 남은 인생을 평생 함께 하면서 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닐 터이다. 새로운 가정을 만들고 자손을 낳기 위해서, 그리고 이들이 모여 더 큰 집단을 만들고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선 두 사람의 결합을 법적으로 보완하는 장치가 중요하단 걸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은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  혼인이란 제도는 이런 맥락에서 나온, 서로 다른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촉매처럼 작용한다.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나고,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연애를 하고, 연애가 무르익으면 결혼을 통해 남은 평생을 약속한다. 하지만 요즘에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자유 연애가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귀족이었고, 주로 귀족들과 어울렸다. 귀족이 결혼할 때에는 배우자 그 자체를 보기보다는 그 사람이 속한 가문을 볼 때가 더 많았다. 자유로운 연애를 추구했던 괴테에겐 분명 이런 불만이 있었을 거 같다. 평민 출신 여성 불피우스와 오랫동안 동거하다가 15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정식으로 혼인할 수 있었던 괴테에겐 결혼이란 제도가 도대체 뭔지 고민해볼 여지가 많았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그 결과 그는 사랑과 결혼에 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소설 『선택적 친화력(Die Wahlverwandtschaften)』을 남겼다.


  1749년생인 괴테는 이 작품을 1809년에 발표했다. 인생이 원숙하고도 남을 무렵 발표한 작품이지만 슈투름 운트 드랑(Strum und Drang), 즉 독문학에서 질풍노도 시기에 발표한 괴테의 대표작 『젊은 베르터의 고통(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만큼, 아니 내용을 따져보면 오히려 그때보다 더욱 격정적이라 놀라울 따름이다. 어린 시절 서로를 사랑했던 에두아르트와 샤를로테는 집안의 반대로 서로 이뤄지지 못한다. 서로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다가 각자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내고 두 사람은 꿈에 그리던 혼인 관계를 맞이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 생활엔 에두아르트의 친구 대위, 샤를로테가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의 딸 오틸리에가 끼어들면서 균열을 보인다. 에두아르트는 어린 오틸리에에게, 오틸리에는 순수한 에두아르트에게 이끌린다. 반면 샤를로테는 눈치가 없는 남편 에두아르트와는 너무 다르게 섬세한 대위와 점점 깊은 관계를 나눈다.


  결혼으로 맺어진 에두아르트와 샤를로테는 이제는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 법적인 배우자보다 더욱 진심으로 사랑하는 상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괴테의 주변 사람들은 이 작품을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작품이라고 폄하했지만, 괴테는 자신의 작품 중 이 작품이 가장 재밌으며 이 소설에는 자신이 경험한 것만 들어있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결혼은 사랑을 더욱 튼튼하고 안정감 있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이는 법적, 제도적, 관습적 장치일 뿐이다. 애초에 결혼은 사랑을 전제로 성립하기 때문이다. 물론 귀족 간 결혼에는 사랑을 따지지 않고 가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괴테에겐 이런 현실이 아주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의문스러웠을 것이며 이를 제대로 따져보고 싶었을 것이다. 괴테가 보기엔 결혼에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면 결혼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작품에 등장하는 에두아르트, 샤를로테, 대위, 그리고 오틸리에 네 사람은 도덕적으로 떳떳하지 못한 사랑을 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사랑이란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이고,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사랑이라도 그 사랑은 진심으로 가득하다면, 허울 뿐인 결혼이란 관계보다 더욱 진정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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