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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적 친화력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27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장희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6월
평점 :
촉매란 "반응 과정에서 표준 깁스 자유 에너지를 바꾸지 않으면서 반응 속도를 높여주는 물질"을 뜻한다. 여기에서 나아가 이런 비유적 표현, 즉 촉매는 특정 사건이나 현상이 발생하도록 도움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여느 생물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역시 생존을 넘어 종족을 보전하려는 번식욕이 있다. 다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이런 생물학적 욕구를 보완해줄 장치가 필요했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그렇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서로 다른 가정에서 태어나 다른 환경 속에서 성장한 이들이 남은 인생을 평생 함께 하면서 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닐 터이다. 새로운 가정을 만들고 자손을 낳기 위해서, 그리고 이들이 모여 더 큰 집단을 만들고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선 두 사람의 결합을 법적으로 보완하는 장치가 중요하단 걸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은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 혼인이란 제도는 이런 맥락에서 나온, 서로 다른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촉매처럼 작용한다.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나고,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연애를 하고, 연애가 무르익으면 결혼을 통해 남은 평생을 약속한다. 하지만 요즘에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자유 연애가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귀족이었고, 주로 귀족들과 어울렸다. 귀족이 결혼할 때에는 배우자 그 자체를 보기보다는 그 사람이 속한 가문을 볼 때가 더 많았다. 자유로운 연애를 추구했던 괴테에겐 분명 이런 불만이 있었을 거 같다. 평민 출신 여성 불피우스와 오랫동안 동거하다가 15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정식으로 혼인할 수 있었던 괴테에겐 결혼이란 제도가 도대체 뭔지 고민해볼 여지가 많았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그 결과 그는 사랑과 결혼에 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소설 『선택적 친화력(Die Wahlverwandtschaften)』을 남겼다.
1749년생인 괴테는 이 작품을 1809년에 발표했다. 인생이 원숙하고도 남을 무렵 발표한 작품이지만 슈투름 운트 드랑(Strum und Drang), 즉 독문학에서 질풍노도 시기에 발표한 괴테의 대표작 『젊은 베르터의 고통(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만큼, 아니 내용을 따져보면 오히려 그때보다 더욱 격정적이라 놀라울 따름이다. 어린 시절 서로를 사랑했던 에두아르트와 샤를로테는 집안의 반대로 서로 이뤄지지 못한다. 서로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다가 각자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내고 두 사람은 꿈에 그리던 혼인 관계를 맞이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 생활엔 에두아르트의 친구 대위, 샤를로테가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의 딸 오틸리에가 끼어들면서 균열을 보인다. 에두아르트는 어린 오틸리에에게, 오틸리에는 순수한 에두아르트에게 이끌린다. 반면 샤를로테는 눈치가 없는 남편 에두아르트와는 너무 다르게 섬세한 대위와 점점 깊은 관계를 나눈다.
결혼으로 맺어진 에두아르트와 샤를로테는 이제는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 법적인 배우자보다 더욱 진심으로 사랑하는 상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괴테의 주변 사람들은 이 작품을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작품이라고 폄하했지만, 괴테는 자신의 작품 중 이 작품이 가장 재밌으며 이 소설에는 자신이 경험한 것만 들어있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결혼은 사랑을 더욱 튼튼하고 안정감 있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이는 법적, 제도적, 관습적 장치일 뿐이다. 애초에 결혼은 사랑을 전제로 성립하기 때문이다. 물론 귀족 간 결혼에는 사랑을 따지지 않고 가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괴테에겐 이런 현실이 아주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의문스러웠을 것이며 이를 제대로 따져보고 싶었을 것이다. 괴테가 보기엔 결혼에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면 결혼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작품에 등장하는 에두아르트, 샤를로테, 대위, 그리고 오틸리에 네 사람은 도덕적으로 떳떳하지 못한 사랑을 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사랑이란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이고,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사랑이라도 그 사랑은 진심으로 가득하다면, 허울 뿐인 결혼이란 관계보다 더욱 진정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