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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식당 - 마음이 담긴 레스토랑과 소박한 음식의 이야기들
박진배 지음 / 효형출판 / 2024년 5월
평점 :
아마 오디션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보통 음악 경연을 떠올릴 것이다. 최근 중장년층을 휘어잡고 있는 미스˙미스터트롯, 10년이나 이어졌던 슈퍼스타 K와 쇼미더머니, 지상파에서도 화제가 됐던 나는 가수다와 K팝스타, 그리고 이 분야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아메리칸 아이돌과 브리튼스 갓 탤런트까지. 이렇게 시대별로 유행하는 서바이벌 음악 경연 중에 내가 그나마 챙겨본 건 쇼미더머니, 그것도 매주 챙겨본 건 시즌 5부터이다. 공교롭게도 내가 챙겨본 시즌 5때 정점을 찍고 11에서 멈춰버린 쇼미더머니와는 달리 내가 정말 꾸준히 찾아본 서바이벌 장르가 있는데 다름 아닌 요리 경연 프로그램이다. 가장 대표적인 프로그램인 마스터셰프 시리즈와 헬스키친 시리즈를 재밌게 보았다. 수많은 참가자가 다양한 성장 배경과 문화 속에서 선보이는 요리를 감상하는 것도, 매주 색다른 미션을 어떻게든 돌파해나가는 노력을 보는 것도 모두 감상 포인트다. 하지만 내 생각에 가장 핵심은 이미 전문 셰프이자 레스토랑 경영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고든 램지 같은 심사위원들이 참가자들에게 건네는 조언이다.
여러 미션 중에서도 참가자들이 대판 깨지고 멘붕을 경험하는 건 팀 미션이다. 두 팀으로 나눠서 보통 100명쯤 되는 사람들에게 코스 요리를 내야 한다. 혼자서는 어림 없는 일이라 제대로 된 역할 분담은 물론, 팀장이 구성원을 잘 조율해 나가고, 음식 퀄리티가 들쑥날쑥 해지지 않도록 확인하는 것도 필수다. 워낙에 일도 많고 정신 없다보니 제대로 조리되지 않은 음식이 나가기 일쑤다. 고든 램지는 심사위원 이전에 셰프로서 이런 일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이다. "이따위 음식을 돈 내고 식당에 온 손님들에게 대접할 겁니까?"
사실 조리라는 건 아주 손이 많이 가고 무척 귀찮은 일이다. 식재료를 보관 혹은 먹기 좋게 잘 다듬는 것부터 일이다. 재료마다 신경 써야할 일도 은근히 많다. 불 세기도 신경 써야하고 겉보기에 단순한 양념장에는 생각보다 더 많은 재료가 어우러진다. 1인 가구가 갈수록 많아지는 요즘 하루에 세 끼 차려먹는 건 생각만 해도 고단한 일이 됐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음식은 배달시켜 먹거나 직접 식당에 가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왕에 시간과 돈을 써서 외식을 하는 건데, 단순히 음식 맛 말고도 이것저것 따질 게 많아진다. 공간에 대해 여러 통찰을 담은 책을 낸 박진배 작가의 이번 신간은 '음식'과 '공간'에 주목한다. 매일 해결해야 할 끼니가 이를 제대로 뒷받침 할 공간에서 이뤄지는 행위는 예술 체험이나 다를 바 없고, 이는 곳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이어진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책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챕터 Plat '미식가의 여정'에서는 그간 저자가 돌아다닌 전 세계 20곳 레스토랑을 소개한다. 여기는 단순히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가 뿐만이 아니라 해당 음식이 레스토랑이라는 공간과 얼마나 어우러져 방문객들에게 특별하고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하는지를 중점적으로 소개한다. 런던과 뉴욕 같은 세계적인 미식 도시는 물론 부르고뉴, 바스크, 아르헨티나 등지까지 다룬다. 여기서 인상적인 건 각종 그릴 요리와 아사도를 알려주는 4장과 11장이다. 단순히 '불에 굽는다'는 행위를 어떻게 조리를 넘어 예술로 승화시키는지 읽으며 무척 궁금해졌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준 건 아주 예전이지만 인간이 이토록 불을 섬세하게 다뤄 요리에 활용할 줄은 몰랐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이어지는 두 번째 챕터 Gourmandies '맛, 사람, 문화'에서는 갖가지 요리가 탄생한 배경을 설명한다. 새 영상이 뜰 때마다 챙겨보는 유튜브 채널 14F의 돈슐랭과 비슷한 느낌이라 더욱 쉽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미국에 거주 중인 저자의 이력을 감안하면 앞선 챕터에서는 뉴욕 레스토랑을 많이 소개했다면 이번에는 미국 요리를 많이 다룬다.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피자, 햄버거, 바비큐, 프라이드 치킨 같은 익숙한 음식 속에서 새로움을 찾는 재미가 있다.
쉽게 읽히는 건 장점이지만 한 꼭지 당 설명이 조금 짧은 느낌이라 아쉽긴 했다. 하지만 한 꼭지 당 분량이 더 길어졌다간 책에 소개된 레스토랑과 음식 가짓수가 더 줄었을테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쉽게 읽히는 덕택에 음식에 대한 지식이 많이 늘었다. 내가 직접 방문하기엔 너무 먼 곳들이 많지만 인생은 길지 않은가. 저자가 고르고 골라 설명해준 레스토랑에 방문해 음식을 먹으며 책 내용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나저나 책을 마치는 글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바에는 더 많이 관심을 기울여야겠다. 한식의 세계화와 관련된 부분인데, 양적으로 큰 성장을 이뤘지만 일방적인 정부 주도, 그리고 부족한 서비스 의식으로는 더 이상 한식이 발전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인 요리는 없지만 영국의 런던이 세계 미식 수도로 자리잡은 데에는 어쩌면 음식 맛보다도 더 중요한 서비스가 있었다는 대목에는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비스직이 갈수록 많아짐에도 여전히 서비스직에 대한 대우가 박하고 서비스의 가치가 낮은 우리나라에서 계속 곱씹어볼 사실이다.
*. 효형출판에서 모집한 신간 서평단에 선정되어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