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바다 암실문고
파스칼 키냐르 지음, 백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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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유문화사에서 모집한 신간 서평단에 선정되어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사랑 바다』라는 책 제목을 처음 보고 내 머리에 바로 떠오른 건 몇 년 전에 본 영화 〈헤어진 결심〉 속 명대사였다. 한 번 본 건 여간해서 다시 보지 않는 내가 두 번이나 봤을 정도로 인상 깊고 감명 깊게 본 영화인데, 작중 주요 인물인 해준과 서래는 이런 대사를 한다. 


"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 거야." - 해준


"你说爱我的瞬间, 你的爱就结束了。你的爱结束的瞬间, 我的爱就开始了啊。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 서래


  처음 접하는 파스칼 키냐르의 소설은 사실 읽기 여간 쉽지 않았다. 원래부터 음악에 조예가 깊은 작가가 17세기 실존 예술가들과 자기 작품 속 인물들을 한데 엮어 버무렸다. 서로 다른 네 남녀의 시점으로 번갈아가며 서술하는 문체는 밀란 쿤데라를, 소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시 형식은 페르난두 페소아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이 소설에서 주목할 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서사도, 친절하지 않은 서술과 파편화된 성격과 행동에서 쉬이 따라가기 힘든 인물도 아니다. 바로 파도가 넘실거리듯 뭐라 말하기 힘들지만 유려함과 탐미성이 물씬 느껴지는 문체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나. 사람이 무언가를 싫어하는 데엔 오만 이유를 댈 수 있어도, 무언가를 좋아하는 데엔 좋다는 말 한 마디면 충분하다는 말. 


  사랑과 바다와 죽음과 음악이 모두 어우러지는 소설은 부족하기 그지 없는 이 글에선 뭐라 더이상 설명하기 힘들다. 결국 우리가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건 극히 일부 아닌가. 그래서 얼마 전 타계한 작가 파스칼 메르시어는 대표작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라며 의문을 표한 걸지도. 온갖 방법과 문체, 그리고 인물을 통해 이런 주제로 소설을 쓴 작가 파스칼 키냐르에게 박수를, 그리고 존경심을. 마치 파도에 몸을 맡겨 이끌리는대로 가다 보면 도달하는 곳이 곧 이 소설일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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