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공부하는 슬픔.평이 좋길래 빌려본 책.타인의 슬픔을 글을 통해 공부한다는 그의 말들을 읽어나갔다. 궁금했다.내 깊은 곳에서 울리는 말은 한결같았다.당신의 글이라면 과연 나의 슬픔을 이해할까?나는 당신이 슬픔을 이해한다고 느낄 수 있을까?나는 누군가 타인의 슬픔을 이해한다는 말을조금도 믿지 않는다.사람들은 어떤 슬픔의 관객이 될수는 있다.하지만 이해할 순 없다.살면서 단 한번이라도 그렇지않은 사람을 만나봤더라면인생은 결코 고독하지만은 않고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는 존재라며신을 믿고 살고있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난 세상 어디서도 신을 발견하지 못했다.내가 애초에 타락한 영혼이기 때문인가.모르겠지만그럼에도 계속해서 나도 모르게 기웃거리고 있다.반례가 나타나주기를 말이다.이 책에서 그가 타인의 슬픔을 이해했단 증거는 없었다.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그랬다.하지만 위선자는 아니라고 느꼈다.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은 타인의 슬픔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느꼈다.대체 왜 그런 답이 없는 시도를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나는 문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때문에그가 언급하는 다른 사람들의 글들과 그의 평론이얼마나 훌륭한지는 사실 전혀 모르겠다.내 서평이 너무 불손한가?하지만 나는 없는 말을 보태며 사는 것에 이제 지쳤다.세상은 누군가 불행해도 잘만 돌아가는데.당신은 굳이 왜? 묻고싶을 뿐이다.그래도 그가 타인의 슬픔에 닿기를 희망한다.그는 이해하는 척 하지 않았다.아니 이해 못했으면 좋겠다.슬픔을 품고 사는 건 마음속에 서늘한 우물을 갖고 사는 일이니까.나는 그가 선의 속에, 빛 속에 계속 머물렀으면 좋겠다.그냥 이렇게 노력하는 채로 있었으면 좋겠다.그렇게 이 책을 덮는다.
그는 자기자신과 자신의 생각에 대해 직접 설명하기보다는 자신이 일과 현실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독자가 판단하도록 맡기는 방식을 택했다. 그래서 나는 자유롭게 그에 대해 내 방식대로 판단할 수 있었고, 어쩌면 처음엔 좀 오만한 태도로 바라봤던 것 같다. 19개의 직업을 통해 당신이 무엇을 얻었는지 보겠다고...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그는 계속 일과 현실에 대해서만 이야기했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방어적인 사람으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는 조금씩 스스로를 드러냈고 비로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그의 상처, 속살, 욕망 등을 엿보았다. 그런 그만의 개성이, 스스로를 ”무산계급“이라고 계속해서 칭하는 그의 담담함, 성실함과 대비되어 비로소 한 사람이 입체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 생각에 그게 가장 확실히 느껴졌던 부분은 책의 에필로그였다. 그는 버지니아 울프가 쓴 서평을 이야기했는데, 바로 래티샤 필킹턴이라는 인물에 대해서였다. 일과 세상에 대한 그의 묘사는 정말 세밀하고 성실하고, 담담해서 그 상황과 입장을 이해하기에 크게 도움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갑갑한 마음도 들었었다. 다행히 책의 후반부에 그가 글에 대해 얘기하고부터 마음을 열기 시작하는 것처럼 보였고 응원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비로소 자신과의 화해를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20년 동안 경험한 19개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담으면서 유일하게 “눈물을 흘렸다”고 적은 부분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책을 읽으며 그가 진작에 여러번 울었어야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