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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지음 / 허블 / 2020년 1월
평점 :
판매중지
섧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으며 생각한 느낌이다. SF소설을 읽을 때 항상 느끼는 건 기술의 발전과 비례하지도 반비례하지도 않는 규칙성 없는 인간성이다. 기술이 발전해 편리함은 얻었는 데 여전히 인간은 외롭고, 처량하다.
빛은 겹치면 흰색이 된다. 기본적인 상식이다. 한 겹, 한 겹 겹치다 보면 흰색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흰색 빛을 보고 어떤 색을 겹친건지 알 지 못한다. 마치 우리의 표정같다. 무수히 많은 표정들이 겹쳐서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읽어낼 수 없다.
이 소설에서 정확히 ‘어떤 표정‘이라 상상할 수 없는 지점들이 있다. 안나의 무덤덤해보이는 표정, 보현의 우울과 우울체, 지민과 은하의 용서할 수도 용서 받을 수도 없는 관계. 분명 내 마음에 와닿고, 왜 그런지 알 것 같지만 내 얼굴의 표정으로 만들어 낼 순 없다.
그런 백색의 표정들이 떠오르는 소설들이다.
˝그 말을 작정하고 마음에 새긴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수용소로 가져갔다. 그 말이 나와 동행하리라는 것을 몰랐다. 그러나 그런말은 자생력이 있다.˝ -숨그네, 헤르타 뮐러.
이미지와 글의 차이점 중 하나는 서순의 역할이다. 이미지는 통합적이고, 제시되는 순서가 정해져있지 않다. 반면에 글은 분절적이다. 어떤 표현을 먼저 제시하는가에 따라 생각의 틀이 변화한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을 때 첫 목차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이글 전체를 끌고 갈 아이디어, 문장들을 나도 모르게 가지고 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처음 가지고 간 문장은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거야.˝(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이다. 김초엽 작가님의 소설 속 세계관을 적확하게 표현해줄 수 있는 작가님의 표현 아닐까 한다. 복잡하고 심오하고 철학적인 맑음과 선함이다. 아픔을 알기에 선할 수 있는 그런 세계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없다면>을 아직 안 읽은 사람이 있다면 좀 더 기다렸다 읽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 소설들은 미래의 독자들이 읽을 때도 자체적인 발화력을 가질 것이다.
다만 이미 읽었던, 앞으로 읽던 모든 독자들에게 질문을 남기고자 한다.
백색의 표정을 본 적 있는가
백색의 표정을 지어본 적 있는가
백색의 표정을 상상해본 적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