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신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연일 안타깝기 그지없는 젊은 여배우의 자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매스컴과 사람들의 화제를 장악하고 있다. 그저 살짝 대중의 눈에 겨우 익은 여배우였지만 그의 죽음은 폭파시간을 기다리는 시한 폭탄처럼 끝을 모르고 대한민국 전체를 울분과 노여움 속으로 치닫게 하는 것이다.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온 그의 죽음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성 상납, 폭력, 접대 등 이런 자극적인 단어 뒤에 숨은 그녀의 고통이나 아픔이 필자에겐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필자는 젊은 한 시절, 연예계의 촉망 받는 신인 가수이기도 했는데, 카메라 앞이나 무대의 달콤한 유혹은 거의 마약과 같은 것이어서, 어떠한 부당함과 억울함 따위는 당연히 견뎌내고 참아내야만 했다. 아마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고인이 된 그도 목표를 위해서 이 모든 것을 참아냈으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대한민국은 어느 분야든, 검증되고 안전한 인물을 선호한다.
실력이 객관적인 점수로 뚜렷하게 나오는 스포츠나 국가고시 등과는 달리, 영화, 드라마, 가요, 뮤지컬 등 우리가 문화라 일컫는 분야에선 실력의 잣대가 명확하지 않아 오랜 시간 고생한 유학파를 포함, 많은 실력 있는 신인들은 그야말로 연줄이 없으면 배우, 스태프를 막론하고 제대로 무대에 설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무대 위에서 쓸쓸히 내려와야 하는 것이 다반사인 것이다. 실오라기 같은 연줄이 중요하고, 파워 있는 이들과의 인간 관계가 중요하고, 그리고 무리한 접대까지, 모두 잘못된 관행인 줄 알면서도 스타로 발돋음하는 건 둘째치고, 오직 실력을 보여 줄 기회라도 잡기 위해 기획, 제작사, 매니저먼트는 물론 배우, 가수들까지 이런 끔찍한 관행에 총력을 다 기울이는 것이다.
비단, 이런 문제는 연예계의 배우, 가수에 국한된 문제일까?
필자는 연예계의 문제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계에 널리 퍼져있는 문제라 생각한다. 대기업 혹은, 관공서의 문화찬조금을 얻기 위해 꼼꼼히 준비한 기획서를 가지고 방문해 보라. 대부분 처음 관심을 가지고 물어보는 건, “이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가 누구인가요?” “이 뮤지컬을 만드는 기획사는 어떤 작품을 히트 시켰나요?” “이 드라마의 연출가의 프로필을 가져오세요”라며 지명도 지상주의를 대놓고 드러낸다.
그렇다면, 도대체, 신인 제작자나 스태프나, 배우, 작가들은 언제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란 말인가? 오디션을 쫓아다닌다 해도 연줄 있는 중고 신인에게 밀리기 일쑤이고, 좋은 작품을 밀어 넣어도 스폰서를 잡아 오라는 메아리일 뿐이다. 그렇다면 결국 대한민국의 신인들은 아르바이트로 십 수 년을 일해 제작비를 모으고, 젊은 청춘을 다 보낸 뒤, 흰머리 풀풀 날리며 불혹의 나이가 되어 데뷔하라는 말인가? 인정하긴 싫지만 우리가 쉽게 만나는 대형뮤지컬, 연극, 블록버스터 영화, 대형 드라마 등은 이름값 시스템과 관료적인 성향으로, 마치 예전 극장에서 보았던 교육용 문화 영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작품도 적지 않다.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방대한 홍보 전략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사람들은 남도 경험했으니 나도 빠질 수 없다는 군중 심리로, 매출에 막대한 기여하는 것이다. 그 뒤로 숨은 작품성이나 대중성은 무시된 채 그저 대한민국의 문화 상품이란 단어에 현혹되어, 부익부 빈익빈의 논리를 이어 나가는 데 대중들도 한몫 거들곤 한다. 이런 악순환으로 인한 실력 있는 신인의 부재는, 대한민국의 문화계를 정형화된 틀에서 깨지 못하게 하고, 대중이 원하는 것이 아닌 대중을 가르치려는 선생님의 주입식 문화로 변질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조금 부유한 집 자제가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고 트레이닝을 부탁해 왔다. 그전 같았으면 내가 직접, 혹은 안면 있는 뮤지컬 인사들에게 부탁했겠지만, 고민 끝에 유학을 권하고, 그나마 루키를 선호하는 외국에서 성공해 화려하게 대한민국으로 금의환향하라고 일러줬다. 연줄을 대어 주는 순간, 그는 이미 진정한 신인이 아니기에…
고 장자연님의 명복을 빌며, 하늘나라에서는 진정한 루키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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