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신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연일 안타깝기 그지없는 젊은 여배우의 자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매스컴과 사람들의 화제를 장악하고 있다. 그저 살짝 대중의 눈에 겨우 익은 여배우였지만 그의 죽음은 폭파시간을 기다리는 시한 폭탄처럼 끝을 모르고 대한민국 전체를 울분과 노여움 속으로 치닫게 하는 것이다.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온 그의 죽음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성 상납, 폭력, 접대 등 이런 자극적인 단어 뒤에 숨은 그녀의 고통이나 아픔이 필자에겐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필자는 젊은 한 시절, 연예계의 촉망 받는 신인 가수이기도 했는데, 카메라 앞이나 무대의 달콤한 유혹은 거의 마약과 같은 것이어서, 어떠한 부당함과 억울함 따위는 당연히 견뎌내고 참아내야만 했다. 아마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고인이 된 그도 목표를 위해서 이 모든 것을 참아냈으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대한민국은 어느 분야든, 검증되고 안전한 인물을 선호한다.

실력이 객관적인 점수로 뚜렷하게 나오는 스포츠나 국가고시 등과는 달리, 영화, 드라마, 가요, 뮤지컬 등 우리가 문화라 일컫는 분야에선 실력의 잣대가 명확하지 않아 오랜 시간 고생한 유학파를 포함, 많은 실력 있는 신인들은 그야말로 연줄이 없으면 배우, 스태프를 막론하고 제대로 무대에 설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무대 위에서 쓸쓸히 내려와야 하는 것이 다반사인 것이다. 실오라기 같은 연줄이 중요하고, 파워 있는 이들과의 인간 관계가 중요하고, 그리고 무리한 접대까지, 모두 잘못된 관행인 줄 알면서도 스타로 발돋음하는 건 둘째치고, 오직 실력을 보여 줄 기회라도 잡기 위해 기획, 제작사, 매니저먼트는 물론 배우, 가수들까지 이런 끔찍한 관행에 총력을 다 기울이는 것이다.

비단, 이런 문제는 연예계의 배우, 가수에 국한된 문제일까?

필자는 연예계의 문제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계에 널리 퍼져있는 문제라 생각한다. 대기업 혹은, 관공서의 문화찬조금을 얻기 위해 꼼꼼히 준비한 기획서를 가지고 방문해 보라. 대부분 처음 관심을 가지고 물어보는 건, 이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가 누구인가요? 이 뮤지컬을 만드는 기획사는 어떤 작품을 히트 시켰나요? 이 드라마의 연출가의 프로필을 가져오세요라며 지명도 지상주의를 대놓고 드러낸다.

 그렇다면, 도대체, 신인 제작자나 스태프나, 배우, 작가들은 언제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란 말인가? 오디션을 쫓아다닌다 해도 연줄 있는 중고 신인에게 밀리기 일쑤이고, 좋은 작품을 밀어 넣어도 스폰서를 잡아 오라는 메아리일 뿐이다. 그렇다면 결국 대한민국의 신인들은 아르바이트로 십 수 년을 일해 제작비를 모으고, 젊은 청춘을 다 보낸 뒤, 흰머리 풀풀 날리며 불혹의 나이가 되어 데뷔하라는 말인가? 인정하긴 싫지만 우리가 쉽게 만나는 대형뮤지컬, 연극, 블록버스터 영화, 대형 드라마 등은 이름값 시스템과 관료적인 성향으로, 마치 예전 극장에서 보았던 교육용 문화 영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작품도 적지 않다.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방대한 홍보 전략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사람들은 남도 경험했으니 나도 빠질 수 없다는 군중 심리로, 매출에 막대한 기여하는 것이다. 그 뒤로 숨은 작품성이나 대중성은 무시된 채 그저 대한민국의 문화 상품이란 단어에 현혹되어, 부익부 빈익빈의 논리를 이어 나가는 데 대중들도 한몫 거들곤 한다. 이런 악순환으로 인한 실력 있는 신인의 부재는, 대한민국의 문화계를 정형화된 틀에서 깨지 못하게 하고, 대중이 원하는 것이 아닌 대중을 가르치려는 선생님의 주입식 문화로 변질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조금 부유한 집 자제가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고 트레이닝을 부탁해 왔다. 그전 같았으면 내가 직접, 혹은 안면 있는 뮤지컬 인사들에게 부탁했겠지만, 고민 끝에 유학을 권하고, 그나마 루키를 선호하는 외국에서 성공해 화려하게 대한민국으로 금의환향하라고 일러줬다. 연줄을 대어 주는 순간, 그는 이미 진정한 신인이 아니기에

고 장자연님의 명복을 빌며, 하늘나라에서는 진정한 루키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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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콴 2009-11-21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얼마전 장자연의 영화가 개봉된다는 뉴스에 너무 가슴이 아팠다는.. 정말 신인이 살기 힘든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꿈가지고만 살 수없는 철벽같은 구조가 답답합니다.

그러니 2009-11-22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누구든 신인의 관문은 거쳐야하는데 어디든 연줄이 필요한 현실을 새삼 느낍니다.

문화 2009-11-24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회 전반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연줄..그리고 상하 복종 관계.. 그러면서 신인들에겐 없어지는 기회... 알면서 넘어가야할 비겁함이 새삼 부끄럽습니다.

허실 2009-12-02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너무 불쌍한 대한민국 신인.. 그러나 우린 모두 신인이었다

짱규 2009-12-09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느 업계든 신인은 있기 마련, 어느 업계든 줄이 없으면 성공하지 못하기 마련

현대 2016-03-10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래서 젊은이에게 기회조차 없는 것이고 젊은이는 열정을 빼앗기고 자존심만 높아가고

맥스 2016-10-04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불쌍한 민초 연얘인들 김영란법 시행됐으니 좀 덜하려나

vos 2017-11-14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연옌이 마냥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신 남보다 낫다는 것

정식 2018-04-20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신인은 불쌍하지만 서민은 더 불쌍하다

평창 2018-05-23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문제 다시 수사한다던데 진실이 밝혀지길

조셉 2019-08-28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신인의 비리
 

 

김연아를 내버려둬라!



텔레비전을 틀었다. 김연아다 김연아 선수다.

마치 내 여동생이, 내 딸이, 그리고, 내 언니가 힘들고 고된 훈련 뒤에, 목표 했던 세계 1위로 트리플 악셀 점프한 것처럼,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을 뿐더러, 그러고 싶지도 않다. 더구나 우리나라 야구팀이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세계 2위를 잡아 낸 며칠 뒤라 기쁨은 배가되고, 마치 더운 여름 날, 시원한 사이다를 들이켜고, 가슴에 파스를 붙인 기분이다. 우리나라 야구가 시원한 방망이 소리로 온종일 방송과 매스컴을 장악했을 때도 전혀 지겹지가 않더니만, 김연아 선수의 나긋나긋한 경기 모습 역시, 보고 또 봐도 매번 가슴이 설레었다. 사뭇 똑같은 특기로 여기저기 겹치기 출연하는 연예인의 그 것과는 질적으로 틀린 것이었다. 정말 전국의 축구장을 여름에는 수영장으로, 겨울에는 스케이트 장으로, 봄가을로는 야구장을 만들자는 농담이 괜한 헛소리가 아닌 것 같다.

 더불어 방송에서는 김연아 선수의 광고가 보너스로 앞다퉈 경쟁하듯, 기를 쓰고 나온다. 광고에서 김연아 선수는 스케이팅 외에도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도 하면서, 그의 또다른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를 감동시킨 주연이 아니라고 해도, 실로 광고 속의 그는 시선을 고정시키고, 귀를 붙잡아두기 충분하다. 자본주의 경제논리상, 이렇게 매력적인 그를 각 기업에서는 그냥 내버려둘 리 만무하다. 마케팅적으로 볼 때도 김연아 선수만큼, 홍보 효과가 큰 모델도 없을 터이니 말이다.

 세계 선수권이 끝나고, 많은 기자들이 김연아 선수에게 질문했다. 혹시 연예계에 진출하는 것은 아닌지 그쪽으로 관심은 없는지. 짓궂게도 기자들은 긍정적인 대답을 요구하는 눈치였다. 그는 자분자분한 목소리로 그러나, 당차게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사실 그가 연예계로 진출한다 해도 그리 거부감은 들지 않을 것이다. 어떤 배우가 일 년에 CF로 몇 십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신비주의라는 이름으로 대중들과 사이에 선글라스로 선을 긋는 일 따위와는 분명 차원이 다른 일일 게다. 적어도 김연아 선수는 벌어들인 수입으로 형편이 어려운 후배의 여비를 대주고, 후배 양성에 힘쓰겠다고 늘 다짐한 것처럼, 졸부들이 배워야 할, 돈을 나누며 제대로 쓰는 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 광고를 하면서, 필자는 모델 선정에 김연아 선수가 리스트에 오르

, 내심 그가 하지 않았으면 하는 못된 소망을 가지곤 한다. 그냥 김연아 선수를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아니, 그냥 스케이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 연습시간 외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실컷 할 수 있도록, 마음 놓고 친구들과 떡볶이도 먹으러 다니게 하고, 놀이 동산에서 자이로드롭도 타게 하면서, 다시 은반 위에서 날렵한 점프를 할 수 있도록 재충전시켜 줘야 한다. 결코 기업의 욕심에, 방송사 욕심에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지쳐가게 해서는 안될 일이다.

 김연아 선수의 갖가지 다른 매력을 우린 다 보고 싶지만, 조금만 참아주었으면 한다. 우울한 요즘,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그의 시원한 트리플 악셀 점프를 오랫동안 보고 싶은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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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사랑 2009-11-13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래, 제발 김연아를 내버려두자

허성 2009-11-13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누구도 못하는 얘기다. 그러나 공감백배! 잘못하면 그리고 님 맞겠다 ㅋㅋ

원가희 2009-11-16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늦었지만, 계속 공감가네요 요즘 한창 김연아 선수가 뜨는 중이라,,, 진실된 얘기는 시간하고는 상관없는 듯합니다. 김연아 선수 저도 오래 보고싶습니다.

2009-11-18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김연아가 안타깝게 2위한 것도 이런 이유? 절대 동의 합니다. 많은 사람이 보고 반성했으면 좋겠습니다.

재성 2009-11-19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김연아에 대해 관계자가 이글을 봤으면 좋겟다

허실 2009-12-02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들이 신선하고 재미있네요

연아짱 2009-12-09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 연아, 스케이트만 타게 해줘~~ 그녀의 직업은 피겨 선수인데...

현대 2016-03-10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요즘 많이 편해보이는 우리 연아

맥스 2016-10-04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연아 보고시포

ska 2018-01-04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연아 좋아

정식 2018-04-20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김연아 중심 잡고 있어서 너무너무 조하

문화 2018-05-21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바른 생각 바른 행동 김연아 넘 좋아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여성의 음악’ 나온다


주부, 메이크업 아티스트, 성우, 마케팅 컨설턴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여성 8명이 참여한 프로젝트 앨범이 발매된다.

‘Woman Project Season 1-WaW!’는 남성 중심적인 가요계에 신인 여자 작곡자 발굴과 자기 분야에서는 내로라하는 30세 이상의 전문직 여성들이 부르는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여성의 음악’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치열한 오디션을 통해 뽑힌 신인 작곡자 이 소림, 허 선영, 정 혜윤, 주 영민, 김 지영, 김 희진의 곡을 높은 경쟁률을 뚫은 30세 이상의 전문직 신인 여성 가수들이 불렀다. 가수들은 김선민(광고PD), 진정애(주부), 허민희(문화재 복원가), 이유진(그래픽 디자이너), 이 선(성우), 김수영( 메이크업 아티스트) 신영미( 성악가), 서옥석(마케팅 컨설턴트) 등으로 각 분야 전문직 여성들이다.




대학가요제 출신이자 드라마 음악감독으로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한 이혁준씨는 “3여년에 걸쳐 가요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자 하는 문화 균등 프로젝트”라고 설명하며 “가요계에 진출하기 조차 힘들었던 신인 작곡자 여성들에겐 한 발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30세 이상 전문직 여성 가수에겐 바쁜 시간 잠시 잊었던 꿈을 찾는 기쁨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앨범 발매에 앞서 오는 22일 서울 압구정동 예홀에서 쇼케이스가 개최될 예정이다.

홍동희 기자/mystar@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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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2015-04-04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다재다능하시군요 부럽습니다 종합문화인이네요

트리오 2015-12-16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먼프로젝트 이 음반이군 매장에서 파나요?

현대 2016-03-10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이 음반 너무 좋던데요

맥스 2016-10-04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왜 2집까지만 나오고 안나와요? 음악 무지 좋던데요

정식 2018-04-20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음악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신선한 건 확실
 

가수에게 스타일은 음악을 표현하는 수단 중 하나다. 흑인 특유의 펑키한 헤어스타일에선 레게 음악이, 머리에 두른 수건과 헐렁하게 내려입은 바지에선 힙합이 읽힌다. 드레시한 정장은 리듬앤드블루스(R&B)나 발라드곡일 확률이 높고, 어깨가 강조된 재킷은 레트로풍 음악이 다시 돌아왔음을 확신하게 한다. 특히 시각적 효과를 강조하는 걸그룹의 경우라면 노래를 듣지 않고도 의상에서 노래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보여주는 음악’이 대세인 요즘, 걸그룹은 의상으로 음악을 입는다.


‘보여주는 음악’, 패션이 더욱 중요한 걸그룹들

 
 


» 맨 위부터 원더걸스, 2NE1, 브라운아이드걸스, 소녀시대. 사진 한겨레 자료, YG 엔터테인먼트, 내가네트워크, 한국방송 제공
 
 
 

 


‘걸그룹 춘추전국시대’로 통하는 올여름 가요계에서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소녀시대, 브라운아이드걸스, 카라 등 기존 걸그룹과 2NE1, 포미닛, 티아라 등 신인까지 다양한 걸그룹이 각종 온라인 음원차트 순위권과 방송사 가요 프로그램을 장악했다. 엠넷 <엠카운트다운>의 김기웅 PD는 “소녀시대와 원더걸스가 흥행 카드로 자리잡으면서 여러 기획사에서 걸그룹을 양산한 결과”로 분석한다. 걸그룹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쇼 프로그램 무대 위는 패션쇼 디자이너들이 경쟁하는 런웨이를 방불케 한다. 노래가 안 되면 의상으로라도 튀려는 이들의 무대 위 4분은 라스베이거스의 쇼 무대처럼 화려하다.

두 번째 미니앨범 수록곡 <소원을 말해봐>로 돌아온 소녀시대는 밀리터리 머린룩을 입고 늘씬한 각선미를 뽐낸다. 마네킹처럼 고른 몸매를 가진 이들은 맞춤 유니폼을 입고 일사불란한 군무를 추며 “난 그대 소원을 이루어주고 싶은 행운의 여신”이라고 노래한다. 데뷔 두 달 만에 <파이어> <아이 돈 케어>로 각종 음원차트 1위를 차지한 2NE1은 컬러플 한 팝아트 티셔츠에 찢어진 레깅스를 입고 등장해 스트리트 패션을 보여준다. ‘여자 빅뱅’이라고 불린 이들은 “뛰뛰뛰뛰뛰고 싶어, 미미미미미치고 싶어”라고 노래하며 독특하고 자유로운 의상을 뽐낸다. ‘유니폼 대 자유복’의 차이만큼 소녀시대와 2NE1은 걸그룹 10년사의 같기도, 다르기도 한 변천사를 보여준다.

1990년대 말, 핑클과 S.E.S의 등장은 걸그룹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요정 콘셉트로 등장한 이들은 유니폼 스타일의 똑같은 옷을 맞춰 입고 무대에서 춤을 췄다. 음악성을 뽐내며 노래를 들려주는 것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표현하는 게 중요했다. 핑클과 S.E.S가 성공하자 베이비복스, 샤크라 등 수많은 걸그룹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룹 이름만 바뀌었지 상황은 비슷하다. 원더걸스와 소녀시대가 뜨자 씨야, 다비치, 애프터스쿨 등 귀엽거나 섹시한 걸그룹이 쏟아졌다. ‘핑클 대 S.E.S’, ‘원더걸스 대 소녀시대’의 경쟁 구도가 그때도, 지금도 걸그룹의 부흥을 이끌었다.

유행은 돌고 돈다고, 걸그룹의 고정적인 스타일도 여전하다. 소녀를 강조하는 ‘큐티걸’ 콘셉트는 ‘걸그룹 생성 매뉴얼 1단계’다. 소녀시대는 <키싱유>를 부르며 막대사탕춤을 춰 존재감을 보였고, 카라도 손가락으로 꿀을 찍어먹는 춤을 추며 귀여움을 강조했다. 원더걸스의 소희도 <텔미>에서 ‘어머나’ 같은 표정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면 소녀들은 나이를 먹고, 대중은 자극을 원한다. 음반이 늘어날수록 귀여운 소녀는 섹시한 숙녀가 됐다. 핑클과 S.E.S는 힙합 의상과 정장 패션의 변화를 거쳐 노출 의상이 있는 섹시 콘셉트까지 보여줬다. 소녀시대, 원더걸스, 카라도 소녀에서 숙녀로 변신 중이다.

하지만 요즘 걸그룹은 소녀에서 숙녀가 되는 ‘걸그룹 변신 매뉴얼 2단계’를 있는 그대로 따라가지 않는다. 이미지가 중요한 시대임에는 변함이 없지만 개성을 존중하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복고풍 의상과 헤어스타일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하기 시작하면서 원더걸스는 미국 시장까지 진출했다. 유니폼은 변함없지만 소녀시대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여성미를 강조하기 시작했고, 에프터스쿨은 트레이닝복 하나만으로도 섹시함을 강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알록달록한 비비드 컬러의 티쳐츠와 액세서리가 강조된 의상을 선보이는 포미닛과 2NE1의 의상은 무대 아래로 내려와도 이질감이 없다. 2NE1과 빅뱅의 스타일리스트인 양승호씨는 “가수에겐 음악이 제일 우선이지만 그에 어울리는 비주얼은 음악을 더 빛내준다고 생각한다”면서 “대중 사이에서 생소했던 패션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유행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음악성 뒷받침 안 되면 밀려날 수밖에


걸그룹의 스타일은 그들의 존재감을 무대 밖으로 전달하는 힘까지 가졌다. 여성 아이돌이 곧 ‘스타일 아이콘’인 시대에서 이들이 입는 의상은 패션산업을 이끄는 유행을 낳기도 한다. 패션스타일리스트 서정은씨는 “걸그룹이 10대들이 따라 하고픈 ’워너비’가 되고 있다”며 “걸그룹의 패션이 파리 컬렉션의 런웨이 의상처럼 과감하고 트렌디해지면서 10대들을 타깃으로 한 캐주얼 시장도 흔들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타일이 곧 가수의 생명력을 책임져주지 못한다. S.E.S와 핑클도 귀여움에서 출발해 섹시함에서 멈췄다. 음악평론가인 이혁준씨는 “보여주는 것에만 치중했던 걸그룹이 음악성을 보여주지 못하면 생명력을 이어갈 수 없다”며 “성공한 걸그룹의 전신을 따라가는 안전한 길을 택하기보다 스타일과 음악성 면에서 발전된 모습을 보여줘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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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희 2015-08-15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래전에 선생님의 말씀을 걸그룹들이 귀담아들어야 하는데, 결국 풍요속의 빈곤 가요계가 됐네요

24 2016-01-05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걸그룹의 양적 생산 질적 하락

현대 2016-03-10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ㅇ걸그룹이 인스턴트 식품이라면 선생님의 음악은 장인의 사골국같아요

키친 2016-04-10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음악에 대한 깊은 인식이 보인다

맥스 2016-10-04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마디 한마디가 버릴 게 없네요

정식 2018-04-20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참 오래된 분이시구나 이혁준 선생님
 

 

평범의 반란!



그저 해프닝으로 지날 줄 알았던 영화 <워낭 소리>가 3월 관객 동원 순위에서도, 무수히 거대한 제작비로 만든 영화들을 제치고, 줄곧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매스컴들이 과도하게 앞다투어 떠든 결과기도 하고 대통령도 친히 관람하셨다고 하니, 그 덕도 톡톡히 봤을 것이다. 필자도 여든 넘으신 부모님의 소망에 바쁜 시간을 쪼개 부모님과 함께 이 영화를 관람했다. 글쎄, 어떤 이는 순수한 독립 영화가 상업성을 띠고 있다고 비평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일반적이고 평범한 소시민적인 촌부와 일소의 일상에서 소나기가 아닌 잔잔한 안개비를 맞는 기분이었다.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불신이 점점 만연하고, 여기저기 한숨이 숨처럼 새어 나온다. 이럴수록 외계인 같은 스타가 아닌 평범한 영웅을 대중이 원한다는 건 오래된 정설이다. 그동안 잘 이해 되지도 않는 복잡한 머리로, 높은 곳에서 무시하듯 대중을 내려다 보는 예술계가,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누구나 갖고 있는 자신 안의 잠재적 능력을 재발견하며, 문화의 주체가 바로 자신이란 당연한 이치를 알아가는 것이다. 시청률도 나오지 않는 텔레비전 밤 시간대 다큐멘터리로 나옴직한 <워낭 소리>가 대한민국의 찬사를 받는 것도 이런 사회적 기류일지도 모른다.

광고에서도 이 법칙은 예외가 아니다. 기존의 예쁘고 멋진 스타들이 애교를 떨며 팔아대던 상품들이, 점점 일반 모델의 거칠고 평범한 연기로 대세를 이루고 있다. 소비자들은 스타 선망의 심리를 이용했던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빅모델 전법에 흥미를 잃은 것이다. 시엠송을 보더라도 예쁘고 듣기 좋은 노래에서, 지난해의 금연 캠페인을 필두로, 투박하고 진실해 보이는 평범한 노래가 모 보험광고, 모 항공회사 광고 등에 유행처럼 번지면서, 스타마저도 평범하게 평가 절하하여 대중의 진심을 얻고 있다.

가요는 어떠한가?

남자 가수들은 소몰이 창법으로, 여자 가수들은 섹시한 댄스로 획일화했던 가요계에 겸손한 직장인 밴드, 소박한 아줌마밴드, 전문직 여자로만 이루어진 일반인의 우먼 프로젝트 등 신선한 아마추어리즘으로 가요계에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방송에서도 이마에 주름이 살포시 내려 앉은 7080의 이제 일반인 된 형님들이 나와 열과 성의를 다해 노래를 하고 우리는 거기에 신나게 박수로 장단을 맞춰 준다. 공연 예술에서도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관절염을 무릅쓰고 뮤지컬을 올리기도 한다.

난공불락일 것처럼 보였던 거대한 경제력으로 탄탄한 보호막을 쓰고 있던 문화계에 저예산으로 문화를 움직이겠다고 용기를 낸 평범한 일반인들은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이미 승리자이다. 그들의 소리를 자신 있게 세상에 주장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그들의 반란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시절이 그리 녹녹하지 않을 때마다 언제나 경제를 일으키고 문화를 일으킨 주체는 스타도, 정치인도, 기업인도 아니었다. 그저 이웃으로 함께 소주를 나눠 마시던 아저씨일 수도 있고, 거리 청소를 같이 하던 이름 모를 아줌마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일 수도, 당신일 수도 있다.

평범함의 반란은 이제 문화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으로 퍼져 나가야 할, 긍정의 힘으로 자리잡길 바란다. 그러나 또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시절이 좋아지면, 포장 예쁜 기득권자에게 열광하느라, 먹다 남은 찬 밥처럼 윗목으로 밀어놓지 않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특별함이란 가장 자연스런 평범함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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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 2009-11-06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왜 조금 늦게 비평을 하시는지요? 그냥 남들처럼 유행을 타시는 것도 좋으련만,, 근데 글은 정말 공감 가네요... 새로운 시각이네요. 문화를 서민에게 돌려주는 글, 참신합니다.

드콴 2009-11-06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문화는 대중의 것, 대중에게 돌려주라는 말, 가슴에 팍 박히네요.숨이 탁트이는 글이네요

승혁 2009-11-07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른 문화평이네요 귀족적이지않은.. 다분히 서민적인 마음을 대변하네요

dusrud 2009-11-09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가장 특별함이란 가장 평범한 것이다라는 말 멋진말입니다.

요한 2009-11-12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재미있다.. 공감 100%

2009-11-18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문화는 대중의 것!!!!! 이런 간단한 이치를 몰랐을까?

허실 2009-12-02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세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써 공감합니다. 모두들 서민, 서민 하지만.. 정작 문화는 아직도 기득권층에 의한 소유물인 것 같습니다

평범 2009-12-09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문화는 평범한 사람의 것!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루팡 2016-02-26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끝가지 읽어보니 옛글도 좋은 글이 많네요 힘이 나는 글입니다

현대 2016-03-10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평범한 사람이 많은 만큼 세상은 평범한 사람위주가 되어야 한다

프리 2016-05-23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평범한 사람에게 힘이되는 글임다

맥스 2016-10-04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평범한 사람의 반란은 있어야 한다. 아, 5시간째 이혁준 선생님의 글을 봤네요 과장한테 죽겠군 ㅎㅎㅎ

ska 2018-01-04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대단한 필력이시네요 계속 보고 있습니다

정식 2018-04-20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평범의 반란 정말 좋은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