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의 반란!



그저 해프닝으로 지날 줄 알았던 영화 <워낭 소리>가 3월 관객 동원 순위에서도, 무수히 거대한 제작비로 만든 영화들을 제치고, 줄곧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매스컴들이 과도하게 앞다투어 떠든 결과기도 하고 대통령도 친히 관람하셨다고 하니, 그 덕도 톡톡히 봤을 것이다. 필자도 여든 넘으신 부모님의 소망에 바쁜 시간을 쪼개 부모님과 함께 이 영화를 관람했다. 글쎄, 어떤 이는 순수한 독립 영화가 상업성을 띠고 있다고 비평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일반적이고 평범한 소시민적인 촌부와 일소의 일상에서 소나기가 아닌 잔잔한 안개비를 맞는 기분이었다.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불신이 점점 만연하고, 여기저기 한숨이 숨처럼 새어 나온다. 이럴수록 외계인 같은 스타가 아닌 평범한 영웅을 대중이 원한다는 건 오래된 정설이다. 그동안 잘 이해 되지도 않는 복잡한 머리로, 높은 곳에서 무시하듯 대중을 내려다 보는 예술계가,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누구나 갖고 있는 자신 안의 잠재적 능력을 재발견하며, 문화의 주체가 바로 자신이란 당연한 이치를 알아가는 것이다. 시청률도 나오지 않는 텔레비전 밤 시간대 다큐멘터리로 나옴직한 <워낭 소리>가 대한민국의 찬사를 받는 것도 이런 사회적 기류일지도 모른다.

광고에서도 이 법칙은 예외가 아니다. 기존의 예쁘고 멋진 스타들이 애교를 떨며 팔아대던 상품들이, 점점 일반 모델의 거칠고 평범한 연기로 대세를 이루고 있다. 소비자들은 스타 선망의 심리를 이용했던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빅모델 전법에 흥미를 잃은 것이다. 시엠송을 보더라도 예쁘고 듣기 좋은 노래에서, 지난해의 금연 캠페인을 필두로, 투박하고 진실해 보이는 평범한 노래가 모 보험광고, 모 항공회사 광고 등에 유행처럼 번지면서, 스타마저도 평범하게 평가 절하하여 대중의 진심을 얻고 있다.

가요는 어떠한가?

남자 가수들은 소몰이 창법으로, 여자 가수들은 섹시한 댄스로 획일화했던 가요계에 겸손한 직장인 밴드, 소박한 아줌마밴드, 전문직 여자로만 이루어진 일반인의 우먼 프로젝트 등 신선한 아마추어리즘으로 가요계에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방송에서도 이마에 주름이 살포시 내려 앉은 7080의 이제 일반인 된 형님들이 나와 열과 성의를 다해 노래를 하고 우리는 거기에 신나게 박수로 장단을 맞춰 준다. 공연 예술에서도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관절염을 무릅쓰고 뮤지컬을 올리기도 한다.

난공불락일 것처럼 보였던 거대한 경제력으로 탄탄한 보호막을 쓰고 있던 문화계에 저예산으로 문화를 움직이겠다고 용기를 낸 평범한 일반인들은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이미 승리자이다. 그들의 소리를 자신 있게 세상에 주장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그들의 반란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시절이 그리 녹녹하지 않을 때마다 언제나 경제를 일으키고 문화를 일으킨 주체는 스타도, 정치인도, 기업인도 아니었다. 그저 이웃으로 함께 소주를 나눠 마시던 아저씨일 수도 있고, 거리 청소를 같이 하던 이름 모를 아줌마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일 수도, 당신일 수도 있다.

평범함의 반란은 이제 문화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으로 퍼져 나가야 할, 긍정의 힘으로 자리잡길 바란다. 그러나 또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시절이 좋아지면, 포장 예쁜 기득권자에게 열광하느라, 먹다 남은 찬 밥처럼 윗목으로 밀어놓지 않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특별함이란 가장 자연스런 평범함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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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 2009-11-06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왜 조금 늦게 비평을 하시는지요? 그냥 남들처럼 유행을 타시는 것도 좋으련만,, 근데 글은 정말 공감 가네요... 새로운 시각이네요. 문화를 서민에게 돌려주는 글, 참신합니다.

드콴 2009-11-06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문화는 대중의 것, 대중에게 돌려주라는 말, 가슴에 팍 박히네요.숨이 탁트이는 글이네요

승혁 2009-11-07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른 문화평이네요 귀족적이지않은.. 다분히 서민적인 마음을 대변하네요

dusrud 2009-11-09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가장 특별함이란 가장 평범한 것이다라는 말 멋진말입니다.

요한 2009-11-12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재미있다.. 공감 100%

2009-11-18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문화는 대중의 것!!!!! 이런 간단한 이치를 몰랐을까?

허실 2009-12-02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세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써 공감합니다. 모두들 서민, 서민 하지만.. 정작 문화는 아직도 기득권층에 의한 소유물인 것 같습니다

평범 2009-12-09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문화는 평범한 사람의 것!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루팡 2016-02-26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끝가지 읽어보니 옛글도 좋은 글이 많네요 힘이 나는 글입니다

현대 2016-03-10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평범한 사람이 많은 만큼 세상은 평범한 사람위주가 되어야 한다

프리 2016-05-23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평범한 사람에게 힘이되는 글임다

맥스 2016-10-04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평범한 사람의 반란은 있어야 한다. 아, 5시간째 이혁준 선생님의 글을 봤네요 과장한테 죽겠군 ㅎㅎㅎ

ska 2018-01-04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대단한 필력이시네요 계속 보고 있습니다

정식 2018-04-20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평범의 반란 정말 좋은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