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를 내버려둬라!
텔레비전을 틀었다. 김연아다… 김연아 선수다.
마치 내 여동생이, 내 딸이, 그리고, 내 언니가 힘들고 고된 훈련 뒤에, 목표 했던 세계 1위로 트리플 악셀 점프한 것처럼,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을 뿐더러, 그러고 싶지도 않다. 더구나 우리나라 야구팀이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세계 2위를 잡아 낸 며칠 뒤라 기쁨은 배가되고, 마치 더운 여름 날, 시원한 사이다를 들이켜고, 가슴에 파스를 붙인 기분이다. 우리나라 야구가 시원한 방망이 소리로 온종일 방송과 매스컴을 장악했을 때도 전혀 지겹지가 않더니만, 김연아 선수의 나긋나긋한 경기 모습 역시, 보고 또 봐도 매번 가슴이 설레었다. 사뭇 똑같은 특기로 여기저기 겹치기 출연하는 연예인의 그 것과는 질적으로 틀린 것이었다. 정말 전국의 축구장을 여름에는 수영장으로, 겨울에는 스케이트 장으로, 봄가을로는 야구장을 만들자는 농담이 괜한 헛소리가 아닌 것 같다.
더불어 방송에서는 김연아 선수의 광고가 보너스로 앞다퉈 경쟁하듯, 기를 쓰고 나온다. 광고에서 김연아 선수는 스케이팅 외에도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도 하면서, 그의 또다른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를 감동시킨 주연이 아니라고 해도, 실로 광고 속의 그는 시선을 고정시키고, 귀를 붙잡아두기 충분하다. 자본주의 경제논리상, 이렇게 매력적인 그를 각 기업에서는 그냥 내버려둘 리 만무하다. 마케팅적으로 볼 때도 김연아 선수만큼, 홍보 효과가 큰 모델도 없을 터이니 말이다.
세계 선수권이 끝나고, 많은 기자들이 김연아 선수에게 질문했다. 혹시 연예계에 진출하는 것은 아닌지 그쪽으로 관심은 없는지. 짓궂게도 기자들은 긍정적인 대답을 요구하는 눈치였다. 그는 자분자분한 목소리로 그러나, 당차게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사실 그가 연예계로 진출한다 해도 그리 거부감은 들지 않을 것이다. 어떤 배우가 일 년에 CF로 몇 십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신비주의라는 이름으로 대중들과 사이에 선글라스로 선을 긋는 일 따위와는 분명 차원이 다른 일일 게다. 적어도 김연아 선수는 벌어들인 수입으로 형편이 어려운 후배의 여비를 대주고, 후배 양성에 힘쓰겠다고 늘 다짐한 것처럼, 졸부들이 배워야 할, 돈을 나누며 제대로 쓰는 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 광고를 하면서, 필자는 모델 선정에 김연아 선수가 리스트에 오르
면, 내심 그가 하지 않았으면 하는 못된 소망을 가지곤 한다. 그냥 김연아 선수를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아니, 그냥 스케이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 연습시간 외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실컷 할 수 있도록, 마음 놓고 친구들과 떡볶이도 먹으러 다니게 하고, 놀이 동산에서 자이로드롭도 타게 하면서, 다시 은반 위에서 날렵한 점프를 할 수 있도록 재충전시켜 줘야 한다. 결코 기업의 욕심에, 방송사 욕심에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지쳐가게 해서는 안될 일이다.
김연아 선수의 갖가지 다른 매력을 우린 다 보고 싶지만, 조금만 참아주었으면 한다. 우울한 요즘,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그의 시원한 트리플 악셀 점프를 오랫동안 보고 싶은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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