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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 한 그릇
구리 료헤이.다케모도 고노스케 지음, 최영혁 옮김 / 청조사 / 2015년 1월
평점 :
2015년 창립 40주년을 맞은 청조사.
이를 기념하기 위해 청조사 대표 작품인 <우동 한 그릇>을 새해 첫 작품으로 선정했다.
이 책에는 짧은 이야기 2편이 실려 있다.
구리 료헤이 작가의 <우동 한 그릇>,
다케모도 고노스케 작가의 <마지막 손님>.
어렸을 적 학교에서 들었던 <우동 한 그릇>
그때도 참 감동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어른을 위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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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집에서 일 년 중 가장 바쁜 섣달그믐날..
북해정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밤 10시가 넘으면서 손님이 뜸해지고.. 마지막 손님까지 가게를 나서서..
슬슬 가게 문을 닫으려던 순간에..
여섯 살, 열 살 정도 된 사내아이 둘을 데리고 들어오는 한 여인..
머뭇거리며 조심스럽게 우동 일인분을 시킨다.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이는 가게 주인이지만..
세모자의 모습을 보면서.. 손님과 아내 모르게.
우동 한 덩어리에 반 덩어리를 더 넣는다...
다 먹고 난 뒤 그 가족에게..
주인 내외는 진심을 담아 큰 소리로 말한다.
"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 다음 해 12월 31일... 바쁜 하루를 끝내고 가게 문을 닫으려던 순간..
한 여인이 두 명의 남자아이를 데리고 들어온다.
일 년 전과 같은 옷을 입은 여인의 모습을 보고 작년에 마지막 손님임을 알아본 주인 내외...
우동 일인분을 시킨 가족이 안쓰러워 아내는 남편에게.. 삼인분을 삶아주라고 하지만..
남편은 그럼 눈치를 챌 테고... 더 부담스러워하고 불편해할 것이라며..
티나지 않게 우동 한 덩이 반을 삶는다...
북해정 우동을 내년에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가족의 말을 들은 주인 내외는..
다음 해.. 같은 날.. 그 가족들이 올 시간에 맞춰 그들이 앉았던 2번 테이블에 예약석이라는 팻말을 세우고..
여름에 인상된 우동 가격을 작년과 같은 가격으로 바꿔놓고 그들을 기다린다.
10시가 지나고..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지자... 세모자가 들어온다.
이번에는 우동 이인분을 주문하고..
엄마는 아이들에게 그동안의 상황을 설명한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일으킨 사고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배상금을 갚고 있었는데..
큰 아이는 신문배달을 하면서 엄마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하고....
작은 아이는 장보기와 저녁 준비를 해 준 덕분에..
엄마가 일에 집중할 수 있었고.. 계획보다 더 빨리 빚을 다 갚았다는 이야기...
아이들 역시 그동안 엄마에게 하지 못 했던 이야기를 전한다.
동생이 쓴 작문이 북해도 대표로 뽑혔고.. 전국 콩쿠르에 출품하게 되어..
수업참관을 해야 됐는데.. 엄마가 무리해서 회사를 쉴 것 같아.. 그 일을 숨겼고..
동생 친구들이 형에게 말을 해줘서.. 형이 참관을 했다는 것.
학교에서 장래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는 주제로 글을 썼는데.. 동생은 우동 한 그릇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고..
북해정에서 있었던 일을 썼구나..라는 생각에 형은 부끄럽기도 했지만..
동생은 우리가 그동안 겪었던 일...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빚이 생겨서.. 엄마가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형은 신문배달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12월 31일 밤에 셋이서 먹었던 우동 한 그릇이 무척 맛있었다는 얘기와...
일인분만 시켰는데도.. 우동집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큰 소리로 말해줬는데..
그 목소리가 '지지말아라! 힘내! 살아갈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고..
자신도 어른이 되면.. '힘내세요. 행복하세요.'라는 속마음을 감추고..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제일의 우동집 주인이 되는 것이 꿈이라는 것과
형은 동생의 글을 통해 부끄러운 마음 대신..
어머니의 용기를 잊지 않고.. 동생과 함께 어머니를 지켜드리겠다고 다짐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주인 내외는 그 후로 12월 마지막 날이면 그 가족을 위해 예약석을 만들고 그들을 기다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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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야기 <마지막 손님>
과자 전문점 <춘추암>에서 일하는 열아홉 소녀 게이코.
생활력 없고 무능력한 아버지는 무책임하게 집을 나가서 소식도 없고..
엄마는 몸이 아파서 일을 할 수가 없다..
남동생 둘과 여동생 셋이 있고.. 아버지의 가출 이후..
학교를 가는 것 대신.. 자신이 직접 생계를 이끌어 가고 있으며..
춘추암에서 근무한지 4년이 되었다.
매일 아침 사원 식당에서 조례를 하는데..
게이코는 손님에게서 선물 받은 시집의 한 구절(상인의 생활 자세)과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사장과 직원 모두 따뜻하고 친절한 춘추암...
늦은 시각 퇴근하던 게이코는 큰길을 접어들 무렵.. 지붕까지 눈이 가득 쌓인 자동차를 보게 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개를 돌려 보니.. 가게 쪽을 향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자를 사러 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서둘러 가게를 향해 뛰어가고..
그 손님에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한다.
문을 열고 난방을 하면서.. 손님을 맞는 게이코.
시로도..라는 그 손님은 자신의 어머니가.. 암으로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계셨는데..
삶의 마지막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원하는 것을 해드리고 싶어 여쭤보니..
춘추암 과자가 맛있었다며.. 다시 한 번 드시고 싶다고 해서 오게 됐는데..
눈이 많이 내려서.. 시간이 지체되어 지금에서야 도착을 했다는 것..
이 말을 들은 게이코는 자신이 직접 최대한 먹기 좋은 부드러운 과자만 골라 담았지만..
혹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그럴 경우 다른 것으로 전해드려야지..라고 생각하고..
손님에게 연락처를 묻는다.
또한 손님의 어머님께 드리는 가게의 성의라는 말을 하면서.. 과자값을 받지 않고..
자신이 겨울 코트를 사려고 모았던 돈에서 지불한다.
다음날 걱정이 되어 연락을 해보니.. 손님의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따로 과자를 주문하고.. 휴가를 내서 직접 장례식장에 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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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 한 그릇.. 이 짧은 이야기가 25년간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티나지 않게 남을 배려하는 주인의 모습,
우동 한 그릇을 나눠 먹으며 가족 간의 마음을 나누는 모습.
그리고 주인 내외의 마음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세모자의 모습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고마움을 잊지 않고 찾아와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모습을 보며..
진정한 배려와 감사란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었고..
특히나 인간과 인간.. 사람 사이에 정과 사랑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두 번째 이야기는 상인의 자세... 장사하는 사람이 지켜야 하는 진정한 도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글에서도 게이코의 마음 씀씀이를 보면서 가장 먼저 사람의 정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자신도 어려운 처지에 있지만.. 다른 사람에 대한 따뜻한 배려를 잊지 않는 게이코...
어린 나이지만.. 너무나 성숙한 행동을 보면서.. 부끄러운 마음과 함께..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냉철하고 자기중심적인 나카가와..라는 사람과는 달리..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직원이지만.. 열정과 책임감을 갖고 행동하는 모습은 정말로 본받아야 할 자세가 아닐까 싶었다.
방송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실제로 우동 한 그릇이나 마지막 손님과 같은 이야기를 가끔씩 전해 들을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세상은 아직 따뜻하구나..라는 생각을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누군가에게 진정한 배려를 하거나.. 마음속 깊이 감사하고 그 일을 잊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도
베풀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려운 시기도 있었고.. 그럴 때마다 주변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알게 모르게 호의를 베풀어 주신 분들이 계셔서.. 지금의 내가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고..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 좋은 기운을 나누고 싶지만..
선뜻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 수 없을 만큼..
사회에서 안 좋은 일이 많이 생기고 있고.. 그런 사건사고를 보면서..
타인에 대한 불신이 점차 심해지고.. 믿을 수 없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기에..
점점 호의를 베풀 생각을 안 하게 되고..
또 누군가 나를 도와준다고 해도.. 모르는 사람의 도움을 좋게만 생각할 수 없게 된 것이 사실이다..
또한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에 외면해 버리는 일이 많아지는 것도 그렇고...
이 책을 읽고 생각하니.. 더욱 씁쓸한 현실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릴 때보다 지금 더 이 책이 감동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마도 어른이 되고.. 사회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얼마큼 냉정하고 치열한 곳인지 직접 겪으면서..
세상이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누군가를 향해가 배려와 호의를 베푸는 것이 마음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겨울 날씨만큼이나 차갑게 얼어붙었던 마음에 한 줄기 빛처럼 느껴진 <우동 한 그릇>
세상을 밝게 하는 일, 따뜻한 사회가 되게끔 하는 일이..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며..
뜨거운 감동과 함께 인간답게 사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