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의미에서는 그랬지. 나는 고독했어. 외톨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무척 고독했어. 왜냐하면 내가 더 이상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것만은 확실히 알고 있었어. 그래서 그때의 모습을 간직한 채로 나는 시간의 흐름이 없는 장소로 들어가고 싶었던 거야." - P-1
..나는 침대에서 나와 창가로 가서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강에 대해 생각하고, 조수에 대해 생각한다. 숲에 대해 생각하고, 용솟음치는 물에 대해 생각한다. 비에 대해 생각하고, 벼락에 대해 생각한다. 바위에 대해 생각하고 그림자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들은 모두 내 안에 있다. - P-1
.."자네도 참 답답한 인간이군. 계시란 그런 거란 말일세" 하고 샌더스는 혀를 차면서 말했다. "계시란 일상성의 테두리를 뛰어넘는 거야. 계시 없는 인생이 무슨 인생이란 말인가! 다만 관찰하는 이성에서 행동하는 이성으로 뛰어 옮겨 가는 것, 그것이 중요하지. 내가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나, 이 얼간이 같은 친구야?" - P-1
.."누구나 사랑을 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결여된 일부를 찾고 있는 법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다소의 차이는 있을망정 언제나 서글픈 기분이 드는 거야. 아주 먼 옛날에 상실한 그리운 방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은 기분이 되는 거지. 당연한 일이야. 그런 기분은 네가 발명한 게 아니야. 그러니까 특허 신청 같은 것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 P-1
...그녀는 시동을 걸었다가 멈추고, 무언가 생각하듯이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다시 시동을 걸고 주차장에서 빠져나간다. 시동을 멈췄다가 다시 걸 때까지의 공백이 너를 몹시 슬프게 만든다. 그 공백이 바다로부터 밀려오는 안개처럼 네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오랫동안 그것은 네 마음에 머물러 있다. 이윽고 너의 일부가 된다. - P-1
"..나는 말한다. "제가 추구하는 것은, 제가 추구하는 강함은, 이기거나 지거나 하는 강함이 아닙니다.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을 받아치기 위한 벽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을 받아 거기에 견뎌 내기 위한 강함입니다. 불공평함이나 불운, 슬픔이나 오해, 몰이해— 그런 것에 조용히 견뎌 나가기 위한 강함입니다." - P-1
.."미궁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만들어 낸 것은, 지금 알려져 있기로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사람들이야. 그들은 동물의 창자를—때로는 인간의 창자를—꺼내서 그 형태로 운명을 점쳤어. 그리고 그 복잡한 형태를 찬양했어. 그러니까 미궁의 기본 형태는 창자야. 즉 미궁의 원리는 너 자신의 내부에 있다는 거지. 그리고 그건 네 바깥쪽에 있는 미궁의 성격과도 서로 통하고 있어." .."메타포?" .."그렇지. 상호 메타포. 네 외부에 있는 것은 네 내부에 있는 것이 투영된 것이고, 네 내부에 있는 것은 네 외부에 있는 것의 투영으로 봐야 한다는 말이야. 그래서 넌 종종 네 외부에 있는 미궁에 발을 들여놓음으로써, 너 자신의 내부에 세팅된 미궁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거지. 그건 대개 굉장히 위험한 일이야." - P-1
..일주일 전이었다면 난 이런 음악을 들어도 단 한 음정도 이해하지 못했을 거야,라고 청년은 생각했다. 이해하려는 마음조차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연히 어느 조그만 찻집에 들어가, 푹신한 소파에 앉아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게 됐고, 덕분에 이 음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그것은 그에게는 상당히 의미 있는 사건처럼 생각됐다. - P-1
.."돌님과 이야기하는 데 음악이 방해되지는 않아?" 하고 청년은 나카타 씨에게 말을 걸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음악은 나카타에게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음악은 나카타에겐 바람과 같은 것이니까요." - P-1
..오시마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론이죠" 하고 대답했다. "그런 일은 있습니다. 무언가를 경험하고, 그것에 의해 우리 내부에서 무언가가 일어납니다. 화학작용 같은 것이죠. 그리고 그후에 우리는 자기 자신을 점검하고, 거기에 있는 모든 눈금이 한 단계 위로 올라간 것을 알게 됩니다. 자기 세계가 한 단계 더 넓어졌다는 것을요. 저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물론 드물기는 합니다만, 가끔 있습니다. 연애와 마찬가지입니다." - P-1
..나는 숲의 한가운데에 발을 들여놓는다. 나는 속이 텅 빈 인간이다. 나는 실체를 잡아먹는 공백이다. 그러니까 더 이상 두려워해야 할 것은 없다. 아무것도 없다. - P-1
.."아저씨, 이제는 아무도 원고를 읽을 수 없게 됐어" 하고 호시노 씨는 말했다. "무엇이 쓰여 있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전부 깨끗하게 사라졌어. 이 세상에서 형태가 있는 것이 조금 줄고, 그만큼 무無가 불어난 셈이지." - P-1
..나카타 씨는 죽음을 통해 간신히 보통의 나카타 씨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청년은 생각했다. 나카타 씨는 너무 철저하게 나카타 씨로 있었기 때문에 나카타 씨가 보통의 나카타 씨가 되기 위해서는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P-1
.."네가 숲에 있을 때 넌 온전히 숲의 일부가 되고, 네가 빗속에 있을 때 넌 온전히 쏟아지는 비의 일부가 되지. 네가 아침 속에 있을 때 넌 온전히 아침의 일부가 되고, 네가 내 앞에 있을 때 넌 내 일부가 돼. 간단히 말하면 그런 이야기야." - P-1
.."말로 설명해 봤자 그곳에 있는 것을 올바로 전할 수 없기 때문에 말을 못 한다는 것 아닌가요?" .."그래, 그런 거야" 하고 사다 씨가 말한다. "잘 맞혔어. 말로 설명해도 올바로 전달되지 않는 것은 아예 말하지 않는 게 제일 좋지." .."가령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그럴까요?" 하고 나는 반문한다. .."그래. 설령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말이야" 하고 사다 씨가 대답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아마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 P-1
.."우리는 모두 여러 가지 소중한 것을 계속 잃고 있어." 전화벨이 그친 다음에 그가 말한다. "소중한 기회와 가능성, 돌이킬 수 없는 감정. 그것이 살아가는 하나의 의미지. 하지만 우리 머릿속에는, 아마 머릿속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을 기억으로 남겨 두기 위한 작은 방이 있어. 아마 이 도서관의 서가 같은 방일 거야. 그리고 우리는 자기 마음의 정확한 현주소를 알기 위해, 그 방을 위한 검색 카드를 계속 만들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되지. 청소를 하거나 환기를 하거나 꽃의 물을 갈아 주거나 하는 일도 해야 하고. 바꿔 말하면 넌 영원히 너 자신의 도서관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거야."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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