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p.
..겨울 지하철은 혼자 타는 사람을 더욱 혼자로 만든다. 그렇게 좁은 장소에 많은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는데 체감으로는 전혀 따뜻하지 않다. - P-1

19p.
...슈퍼에 들어가 볶음밥 재료와 삼겹살과 낫토와 우유를 샀다. 어느 물건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 나는 별과 별을 잇듯이 슈퍼 안을 바삐 움직였다. 내가 걸어간 곳을 선으로 이으면 ‘자취 생활‘이라는 별자리가 완성될 것 같다.... - P-1

35p.
..소용돌이 같은 문자 한복판에서 환하게 웃는 고타로의 초상화가 천장의 전등에 반사되어 순간 보이지 않았다. 역시 이런 건 공감할 수 있는 사람끼리의 영역 안에서 폭발시켜야 하는 거구나, 새삼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면 이렇게 빛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상상력이 없는 사람은 이내 이것을 기회라 생각하고 밖으로 발신한다. 나는 이렇게 애써 왔다고, 나는 이렇게 사랑받고 있다고 알리기 위해 추억을 밖으로 발신한다.
..고타로의 좋은 점은 상상력이 있다는 점이다. 분명 동아리 뒤풀이는 최고로 즐거웠을 테고, 이 롤링페이퍼도 몹시 기뻤을 것이다. 청춘 시절의 모든 것을 응축한 듯한 사진도 많이 찍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무턱대고 발신하지 않는다. 발신하더라도 그 감정에 공명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한다. 이를테면 메일이나 라인으로.
..고타로는 그 사안에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 ‘최고의 동료!‘라든가 ‘다들 사랑해요, 고마워요!‘라는 글을 볼 때, 순식간에 마음이 식어 가는 것을 제대로 상상할 줄 안다. - P-1

59~60p.
..긴지는 지금 아무한테도 전하지 않아도 될 단계의 일을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말을 모아 온 세상에 전하려 하고 있다. 자신밖에 할 수 없는 표현. 무대는 무한. 달콤한 꿀로 코팅한 듯한 말을 구사하여 타인에게 이상적인 자신을 상상하게 하려고 한다.
..상상.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타인에게 상상력을 요구한다. 남과는 다른 자신을 누군가에게 상상하게 하고 싶어 한다. - P-1

69p.
..개인 이야기를 큰 이야기로 바꾸면 아무도 뭐라고 말할 수 없게 된다. 취업 이야기를 하는가 했더니, 어느새 이 나라의 구조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 큰 주제에 정면으로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런 방법으로 자신의 우위성을 확인하는 거라면 다카요시의 입지는 꽤나 위태롭겠구나, 생각했다. - P-1

127p.
..전철을 타고 있으면 도쿄는 생각보다 얌전한 도시라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시골 마을을 떠나 동경하던 도쿄에 왔다고 해도, 도쿄조차 마을과 마을이 이어져서 생긴 장소구나, 하는 걸 깨달을 수 있다. - P-1

178p.
..더더, 연기를 빨아 보았다. 더더더 감추지 않으면 무언가가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줄곧 깊은 곳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꺼내 보면 뜻밖에 얕은 곳에 뒹굴고 있는 듯한 무언가가. - P-1

230~231p.
.."10점이어도 20점이어도 좋으니 네 속에서 꺼내. 네 속에서 꺼내지 않으면 점수조차 받을 수 없으니까. 앞으로 지향하는 바를 멋진 말로 어필할 게 아니라, 지금까지 해 온 것을 모두에게 보여 줘. 너와 다른 곳을 보고 있는 누군가의 시선 끝에 네 속의 것을 꺼내 놓아 봐. 몇 번이나 말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이제 우리를 봐 주지 않아. 100점이 될 때까지 무언가를 숙성시켰다가 표현한들 너를 너와 똑같이 보는 사람은 이제 없다니까."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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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p.
...But she knew better than to wear them into a place like this—where one had nothing to gain from formality and everything to lose by comparison. - P-1

63p.
..It wasn‘t about who had dibs now or who was sitting next to whom in the cinema. The game had changed; or rather, it wasn‘t a game at all anymore. It was a matter of making it through the night, which is often harder than it sounds, and always a very individual business. - P-1

117~118p.
...How little imagination and courage we  show in our hatreds. If we earn fifty cents an hour, we admire the rich and pity the poor, and we reserve the full force of our venom for those who make a penny more or a penny less. That‘s why there isn‘t a revolution every ten years.... - P-1

128p.
..Uncompromising purpose and the search for eternal truth have an unquestionable sex appeal for the young and high-minded; but when a person loses the ability to take pleasure in the mundane—in the cigarette on the stoop or the gingersnap in the bath—she has probably put herself in unnecessary danger. What my father was trying to tell me, as he neared the conclusion of his own course, was that this risk should not be treated lightly: One must be prepared to fight for one‘s simple pleasures and to defend them against elegance and erudition and all manner of glamorous enticements. - P-1

133p.
..It was a cute answer. At least, that‘s what I thought at the time. But on cooler reflection, it struck me that when you‘re asked your favorite day of the year, there‘s a certain hubris in giving any day in June as your answer. It suggests that the particulars of your life are so terrific, and your command over your station so secure, that all you could possibly hope for is additional daylight in which to celebrate your lot. But as the Greeks teach us, there is only one remedy for that sort of hubris. They called it nemesis. We call it getting what you deserve, or a finger in the eye, or comeuppance for short.... - P-1

169p.
...Where for so many, New York was ultimately the sum of what they would never attain, for this crew New York was a city where the improbable would be made probable, the implausible plausible and the impossible possible. So if you wanted to keep your head on straight, you had to be willing to establish a little distance, now and then. - P-1

206p.
..Written by a Belarusian immigrant named Vernon Duke, "Autumnin New York" practically debuted as a jazz standard. Within fifteen years of its first being played, Charlie Parker, Sarah Vaughn, Louis Armstrong, and Ella Fitzgerald had all explored its sentimental bounds. Within twenty-five, there would be interpretations of the interpretations by Chet Baker, Sonny Stitt, Frank Sinatra, Bud Powell, and Oscar Peterson. The very  question that the song asks of us about autumn, we could ask ourselves of the song: Why does it seem so inviting?
..Presumably, one factor is that each city has its own romantic season. Once a year, a city‘s architectural, cultural, and horticultural variables come into alignment with the solar course in such a way that men and women passing each other on the thoroughfares feel an unusual sense of romantic promise. Like Christmastime in Vienna, or April in Paris. - P-1

218p.
...When a mother loses a daughter, she grieves over the future that her daughter will never have, but she can take solace in memories of close-knit days. But when your daughter runs away, it is the fond memories that have been laid to rest; and your daughter‘s future, alive and well, recedes from you like a wave drawing out to sea. - P-1

260p.
..As a quick aside, let me observe that in moments of high emotion—whether they‘re triggered by anger or envy, humiliation or resentment—if the next thing you‘re going to say makes you feel better, then it‘s probably the wrong thing to say. This is one of the finer maxims that I‘ve discovered in life. And you can have it, since it‘s been of no use to me. - P-1

262p.
...I suppose we don‘t rely on comparison enough to tell us whom it is that we are talking to. We give people the liberty of fashioning themselves in the moment—a span of time that is so much more manageable, stageable, controllable than is a lifetime. - P-1

297p.
..Could there have been a more contrary statue to place across from one of the largest cathedrals in America? Atlas, who attempted to overthrow the gods on Olympus and was thus condemned to shoulder the celestial spheres for all eternity—the very personification of hubris and brute endurance. While back in the shadows of St. Patrick‘s was the statue‘s physical and spiritual antithesis, the Pietà—in which our Savior, having already sacrificed himself to God‘s will, is represented broken, emaciated, laid out on Mary‘s lap.
..Here they resided, two worldviews separated only by Fifth Avenue, facing off until the end of time or the end of Manhattan, whichever came first. - P-1

302p.
..He came through the door with two pounds of coal wrapped in newspaper. He got down on his knees in front of the stove and set about lighting the fire, blowing on the flames like a scout.
..He always looked his best, I thought to myself, when circumstances called for him to be a boy and a man at the same time. - P-1

323p.
..In that sense, life is less like a journey than it is a game of honeymoon bridge. In our twenties, when there is still so much time ahead of us, time that seems ample for a hundred indecisions, for a hundred visions and revisions—we draw a card, and we must decide right then and there whether to keep that card and discard the next, or discard the first card and keep the second. And before we know it, the deck has been played out and the decisions we have just made will shape our lives for decades to come. - P-1

324p.
..I love Val. I love my job and my New York. I have no doubt that they were the right choices for me. And at the same time, I know that right choices by definition are the means by which life crystallizes loss.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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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p.
..특수 청소란 무엇이냐. 요컨대 사람을 집에서 해방시켜 주는 일이야. 대부분은 반대로 생각하지. 시체때문에 집이 더러워졌으니까 깨끗하게 청소하는 일이라고. - P-1

468p.
..일찍이 어머니가 자신을 안고 있었던 곳을 요새처럼 둘러싸고, 마지막 정도는 누구 눈에도 띄지 않는 컴컴한 암흑 속에서 잠들고 싶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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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p.
..그런 거야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말입니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건 쇼세이도 잘 아는 사실입니다. 처리 능력이 높은 인간 특유의 뇌로 이제까지 온갖 생각을 곱씹고 정리해 [온전함]을 찾았으므로 그 정도 수준의 고민은 논리적으로 해결했답니다. 그러나 인간이란 종은 때로 어떤 조짐도 없이 자신을 보는 시선을 사회라는 공동체에 빼앗기고 맙니다. 맑았던 날이 갑자기 흐려질 때처럼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정리되었을 어둠이 느닷없이 우르르 나타납니다. - P-1

71p.
..쇼세이, 공동체의 확대, 발전, 성장이 늦어지는 것에 대한 분노가 등장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어느 정도 방법을 확립해 놓았습니다.
..우선은 [생각은 사람마다 다른 법]부터 시작합니다. 이겁니다. [다양성]이라는 단어가 본래 의미에서 벗어나 범람하게 되면서 의견이 다른 개체들의 논쟁이 상당히 줄었습니다. 단어의 제대로 된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고방식은 저마다 다르지. 대체로 여기서 대화는 중단됩니다. 쇼세이에게는 정말, 좋은 흐름이죠.
..다만 같은 직장에서 오래 얼굴을 맞대야 하는 관계라면 그 무기 하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다음에는 보듬어 줘야 합니다. 쇼세이가 채택한 방법은 [너는 다른 개체보다 매사를 본질적으로 바라본다]라며 상대를 깊이 이해하는 척 다가간 다음 [그러니까 눈앞의 일부터 하나씩 하자]라며 장기적인 관점으로 격려하는 겁니다.
..이 방법은 대체로 잘 먹힙니다. - P-1

93p.
..외지 벌이라고 해도 좋겠죠. 쇼세이는 자기가 사는 생식지(자택)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다른 세계로 매일 돈을 벌러 나가는 느낌입니다. 출근이라기보다는 다른 행성으로 매일 돈을 벌러 나갔다가 돌아온다는 표현이 더 [온전하게] 느껴집니다. 그런 매일입니다. - P-1

94p.
..쇼세이, 그 상태에 도달했을 때 생각했습니다.
..살 수 있겠다고.
..이성애 개체에게는 이 감정이 보통 출발 지점 아닌가요?
..쇼세이는 골인 지점입니다.
..다이스케와 이쓰키, 소우는 그 상태를 0으로 시작해 1, 2를 쌓아 갑니다. 쇼세이가 죽어라 달려온 서바이벌의 단계를 이미 끝내고 순식간에 컨스트럭션, 즉 구축의 단계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자기 인생을 구축하면 이번에는 신세를 졌던 공동체나 차세대 개체를 위해 이 세계의(기껏해야 백 년 전후의 시간적 척도에서) 나쁜(그렇다고 인간이 판단하는) 부분을 수정하는 레지스턴스, 즉 저항을 시작합니다. 생존, 구축, 저항, 그렇게 한 단계씩 오르는 게 그들 그녀들의 일반적인 인생 형태입니다. - P-1

95p.
..쇼세이는 발생한 순간부터 내내 0을 향해 달린 느낌입니다.
..언젠가 자신이라는 개체와 세계의 구조가 일치할 곳에 도달하기를 바라며 내내 혼자 걸었습니다. 주어진 이 개체 그대로 살아남는 상태가 종의 보존에 반하거나 생물학의 근간을 흔든다고 얘기되지 않는 장소를, 줄곧 찾아 헤맸습니다. - P-1

154p.
..인간은 어차피 자기가 듣고 싶은 정보만 받아들인다니까요. 애당초 전문서란 [그것]과 관련된 삼라만상이 적혀 있기보다는 저자가 인지한 정보, 저자가 연구한 주제와 관련된 정보가 모여 있으니까요. 인간은 항상, 한 방향으로 편향된 정보를 취사선택합니다.
..감정을 갖고 살아가는 이상, [그것]에 대해 조사하면 할수록 [그것]의 진실에서 멀어집니다. - P-1

163p.
..수요를 넘어서 신제품을 계속 발매해야 성립하는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아주 적당한 순간에 자신을 다시 새롭게 상품화합니다.
..대체로 인간은 다음 세 단계 중 무언가를 선택하고 조합하며 상품화합니다.
..첫 번째는 Maryam처럼 차세대 개체를 낳아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확대하는 단계. 이쓰키도 지금, 이 패턴의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겠죠. 다른 하나는 기시처럼 노동으로 회사라는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단계. 마지막은 소우가 말하는 SDGs로 대표되는, 그야말로 사회의 성장과 지구 전체의 개선과 이어지는 구조에 도전하는 단계입니다.
..이쓰키의, 자신이 원하는 게 진짜 뭔지 모르겠다는 어정쩡한 고민도 다음에는 어떻게 자신을 새로 상품화할지를 고민하는 겁니다.
..인간은 대체로 이 세 가지 패턴 중 하나에서 벗어나는 길, 즉 자신을 전혀 새롭게 상품화하지 않는 삶을 좀처럼 선택할 수 없습니다. 너의 [다음]은 무엇이냐고 공동체 감각의 감시 카메라가 감시하고, 본인도 자신을 새롭게 상품화해 새로운 생산성을 얻음으로써 자신은 확대, 발전, 성장한다고 생각하고 그에 따라 행복 수준도 오르니까요. - P-1

229p.
.."부정형의 의사 표시는 아무도 안 봐 줘요."
..쇼세이, 침을 삼킵니다.
.."외부와 차단하고 자기로부터 홀로 도망쳐 온갖 일을 [하고 싶지 않아]라고 결정해도."
..쇼세이, 소우의 눈에 비친 자신을 바라봅니다.
.."그렇게 세상을 부정해도 제삼자에게는 그냥 거기 있는 사람일 뿐이에요."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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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p.
..저 멀리 떨어진 나선형 성운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알 수 있지만, 넘버원의 회색 주름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역사가 과학이기보다 신탁인 것은 아마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중에야, 한참 지난 뒤에야 역사는 통계표라는 도구로 가르쳐지고 해부학적 절단면으로 보충될는지도 모른다. 선생은 어느 특정한 시기의 특정한 나라에 살던 대중이 처한 삶의 조건들을 보여 주는 대수학 정식을 칠판 위에 그리게 될지도 모른다. "자, 시민 여러분, 여기 이 역사적 과정을 있게 한 객관적 요소를 보시오"라고 말하면서.... - P-1

75p.
...만성적인 감옥 몽상가들은 거의 언제나 미래를 꿈꾸었다. 만일 과거를 생각한다 해도 그것은 실제 있던 일이 아니라 자기들이 추측하거나 바라는 대로 각색된 것이었다. 루바쇼프는 자기의 정신 기관에 또 다른 놀라운 일이 저장되어 있지 않을까 궁금했다. 죽음과의 대면은 늘 사고의 메커니즘을 바꾸었고, 자극에 끌리는 나침반처럼 가장 놀라운 반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그는 경험으로 알았다. - P-1

120p.
.."물론이지. 언젠가 한 수학자가 말하길, 대수학은 게으른 사람을 위한 학문이라고 하더군. x를 풀지 않고서도 마치 아는 듯 조작하기 때문이라네. 우리의 경우, x는 익명의 대중, 즉 인민을 상징하지. 정치란 x의 실제적 본질을 생각하지 않은 채 x로 작업하는 걸 의미하네. 그러나 역사를 만든다는 것은, 방정식에서 x가 차지하는 의미로서의 x를 인식한다는 것이지." - P-1

137p.
..……궁극적 진리는 끝에서 두 번째 지점에서는 언제나 거짓이다. 결국 옳다고 입증될 사람은 그 전에는 틀린 것으로, 그리고 해로운 것으로 나타난다. - P-1

209p.
.."역사의 가장 위대한 범죄자는 네로와 푸케 타입이 아니라, 간디와 톨스토이 타입이네. 간디의 내면 목소리는 인도의 해방을 막는 데 영국의 총보다도 더 많은 역할을 했지. 은화 서른 닢에 자기를 파는 건 정직한 거래야. 그러나 자기를 자기 양심에 파는 건 인류를 포기하는 것이지. 역사는 선험적으로 도덕과는 무관한 거야. 그건 양심을 안 가졌어. 역사를 주일 학교의 가르침에 따라 이끌고자 하는 건 모든 것을 그냥 그대로 놔둔다는 의미이지. 그건 자네도 잘 알 거야. 이 내기에 무엇이 걸렸는지 알고 있는 자네가 보그로프의 울먹임을 얘기하다니……. 뚱뚱한 알로바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다니……." - P-1

228~229p.
..인민들이 지배하거나 지킬 수 있는 개인적 자유의 양은 이들의 정치적 성숙도에 달려 있다. 앞에서 언급한 진자 운동은, 대중의 정치적 성숙도가 한 개인의 성장처럼 지속적인 상승 곡선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더 복잡한 법칙에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중의 성숙도는 그들 자신의 이해관계를 파악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그러나 그것은 상품의 생산과 분배의 과정에 대한 일정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인민들이 스스로를 민주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능력은 전 사회 조직체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이해의 정도에 비례한다.
..그런데 모든 기술적 개선은 경제 기구에 새로운 분규를 야기하고, 새로운 요소와 결합 관계의 모습을 보여 주는데, 이러한 현상을 대중은 한동안 꿰뚫어 보지 못한다. 기술적 진보의 모든 도약은 상대적으로 대중의 지적 발전을 한 걸음 뒤처지게 한다. 그로 인해 정치적 성숙도의 온도계는 하강 국면을 맞이한다. 인민들의 이해 수준이 변화된 상황에 점차 적응하기까지는, 곧 그것이 문명의 낮은 단계에서 이미 소유한 것과 같은 자기 통치 능력을 회복할 때까지는, 때로 수십 년 혹은 여러 세대가 걸린다. 그러므로 대중의 정치적 성숙도는 하나의 절대적 수치가 아니라 오로지 상대적으로, 즉 그때그때 문명의 단계에 비례해 측정될 수밖에 없다.
..대중의 의식 수준이 상황의 객관적 상태를 따라잡을 때 평화적으로든 폭력에 의해서든 민주주의의 정복이 불가피하게 이어진다. 그것은 기술적 문명의 다음 도약(예를 들면 베틀의 발명과 같은)이 대중을 상대적인 미성숙 상태로 되돌려 놓고 어떤 형태의 전제적 통치의 출현을 가능케 하거나 필요하도록 만들 때까지 그렇다. - P-1

251p.
...루바쇼프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사람은 허영의 마지막 찌꺼기까지 태워 버려야 한다. 자살이 허영의 뒤집힌 형식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 P-1

283~284p.
..루바쇼프는 기소된 자의 육체를 완전히 망가뜨리는 이런 방법에 대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보통 두 명 혹은 세 명의 조사 책임자가 교대로 대질 심문을 진행한다고 했다. 그러나 글레트킨은 절대로 다른 사람과 교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루바쇼프만큼이나 자기 자신도 혹사시켰다. 그럼으로써 그는 루바쇼프에게서 마지막 심리적 안식처, 즉 학대받는 자의 비애나 희생자의 도덕적 우월성 같은 것마저 박탈했다. - P-1

290~291p.
..루바쇼프는 코안경을 소매에 문질렀다. 그 대화가 자신이 애써 믿으려는 것처럼 정말로 무해한 것이었을까? 물론 그는 분명 ‘협상‘도 하지 않았고, 어떤 합의점에 이르지도 않았다. 그리고 Z 역시 그럴 만한 어떤 공식적 권위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 대화 전체가 기껏해야 외교적 용어로 ‘수심 측정‘이라고 일컬어지는 것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수심 측정은 그 당시 그의 생각을 연결하는 논리적 사슬의 한 고리였다. 게다가 그것은 당의 일정한 관례들과 일치했다. 혁명 직후 옛 지도자도 망명에서 돌아와 혁명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그 나라의 장군 참모로서 복무하지 않았는가? 나중의 첫 평화 조약에서 그는 평화에 대한 대가로 특정 영토를 포기하지 않았는가?
.."옛 지도자는 시간을 얻기 위해 공간을 희생시킨 거지."
..루바쇼프의 재치 있는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 P-1

305p.
...이바노프는 최후까지 자신의 과거를 질질 끌고 다녔다. 그래서 그가 하는 무슨 말에나 장난기 어린 우수의 빛이 서려 있었다. 글레트킨이 그를 두고 냉소주의자라고 부른 이유는 바로 그 점 때문이었다. 글레트킨의 무리에게는 지워야 할 어떤 것도 없었다. 그들은 어떤 과거도 안 가졌기 때문에 과거를 부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탯줄도 없이, 경쾌함도 없이, 우울도 없이 태어났다. - P-1

330~331p.
.."세상이 지금 이렇게 된 것은 영리함과 품위가 서로 싸우기 때문이야. 한쪽 편만 드는 사람은 다른 쪽은 없이 지내야 해. 사람이 여러 생각을 다 말하면 좋지 않은 거야. 그래서 『성경』에도 이렇게 적혀 있는 거야. ‘너희는 그저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라. 그 이상의 말은 악에서 오는 것이니라." - P-1

338~339p.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바쇼프에게 다가갈 길은 아직 있었다. 가끔 그는 예기치 않게 어떤 가락 혹은 어떤 가락에 대한 기억에, 아니면 <피에타>의 구부러진 손이나 어린 시절의 어떤 장면에 대한 기억에 반응했다. 마치 소리굽쇠를 친 것처럼 응답하는 진동이 일어나고, 이것이 시작되면 신비주의자들이 ‘황홀‘이라고 부르거나 성자들이 ‘정관‘(靜觀)이라고 부르는 상태가 되곤 했다. 현대 심리학자들 중 가장 위대하고 진지한 사람들도 이런 상태를 하나의 사실로 인정했고, 그걸 ‘대양적 감정‘이라고 불렀다. 그리하여 한 인간의 존재는 바닷가의 소금 한 알갱이처럼 녹아버렸다. 그러나 동시에 무한한 바다는 소금 한 알갱이에 모두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알갱이는 더 이상 시간과 공간에 놓일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건 사고가 그 방향을 잃고 마치 나침반의 바늘처럼 돌기 시작하는 상태와 같았다. 그래서 그것은 마침내 그 축에서 벗어나 공간 속에, 마치 밤하늘의 빛 무리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그리하여 결국 모든 사상과 모든 감정, 심지어 고통과 기쁨 자체도 의식의 프리즘 속에 분열하는, 그저 같은 빛줄기의 분광인 것처럼 여겨졌다. - P-1

341p.
..당은 개인의 자유 의지를 부정하는 동시에 자발적 자기희생을 강요했다. 당은 개인의 양자택일 능력을 부정하는 동시에 한결같이 옳은 것을 택하길 요구했다. 당은 선과 악을 분간할 수 있는 개인의 능력을 부정하는 동시에 죄와 배반에 대해 열정적으로 말했다. 개인은 경제적 숙명성이라는 계시 아래 서 있었다. 개인은 영원히 감기기만 하고 멈추거나 어떤 것에 영향받아 움직일 수 없는 시계 장치 속 한 바퀴였다. 그런데도 당은 그 바퀴가 시계 장치에 반역을 일으켜 그 경로를 변화시키길 요구했다. 어디선가 계산 착오가 있어 방정식은 풀리지 않았다. - P-1

344p.
...역사의 맥박은 느렸다. 인간은 햇수로 계산했지만, 역사는 세대로 계산했다. 아마 지금도 창조의 둘째 날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간이 살아남아 대중의 ‘상대적 성숙의 법칙‘을 세울 수 있겠는가! - P-1

345p.
..어쩌면 먼 훗날에야 비로소 새로운 깃발과 함께 새로운 운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경제적 숙명성‘과 ‘대양적 감정‘을 모두 아는 새 정신이 일어나리라. 아마도 새로운 당의 당원들은 수도사 옷을 걸칠 테고, 오직 순수한 수단만이 목적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전도할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한 인간이란 1백만 명을 1백만 명으로 나눈 결과라고 말하는 교리는 틀렸다고 가르칠 것이며, 곱셈에 근거한 새로운 종류의 산수를 도입할지도 모른다. 즉 1백만 명의 개인이 합쳐져 하나의 새로운 실체를 형성하고, 더 이상 무정형의 집단이 아닌 이 새로운 실체가, 무제한적이나 그 자체로 충족된 공간 속에서, 1백만 배로 확대된 ‘대양적 감정‘으로 자기 자신의 의식과 개인성을 펼쳐 나갈 것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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