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색깔 볼펜이나 형광펜을 바꿔가면서 열심히 노트 필기 하는 녀석 있잖아. 별표 표시하고 포스트잇도 붙여가면서 말이야. 하지만 꼭 그런 놈이 성적은 그저 그렇거든. 정리정돈에 만족한 나머지 거기서 뭔가를 끌어내는 작업을 잊어먹는다고."

"...알아? 인간은 놀라움이 극에 달하면 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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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하는 무도병이란 유전병의 일종인 헌팅턴 무도병이 아니라 중세에 빈번히 나타났던 일종의 집단 히스테리를 뜻한다. 축제의 열광 속에서 무도병은 자연 발생했고 감염자 들은 광란 상태로 정신없이 춤을 췄다. 대체로 시간이 지나면 악령이 떠나간 듯 멍해지지만 간혹 사망에 이르기도 했다. 단조롭고 억압적인 데다 죽음의 위협까지 가까이에 있던 중세인이 빠져드는 폭발적 고양 상태였다....

..인체를 닮은 식물의 형태와 효능을 연관 짓는 약징주의 Doctrine of Signatures 가 오랫동안 널리 받아들여진 까닭에, 인간의 몸과 똑같이 생긴 만드라고라의 뿌리는 만병통치약이라는 증거로 여겨지며 자연스레 수요가 높아졌다. 하지만 덩이 뿌리 주위에는 모세혈관처럼 얇은 뿌리가 온통 에워싸고 있어서 뽑으려면 상당한 힘이 든다. 뽑을 때 나는 소리도 더없이 불쾌하다고 한다.

..괴물도 천사도 악마도 실재한다고 믿던 시대였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고 자연현상을 과학적으로 해명하려는 시도도 미미했다. 지금이야 이 기묘한 현상이 ‘브 로켄 현상’으로 세상에 알려졌지만, 이 표현 자체가 18세기 말에 처음 사용되었으니 상당히 최근이다. 브로켄산에서 곧잘 나타났다는 이유로 붙은 이름이지만 조건만 갖춰지면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우선 태양을 등지고 섰을 때 전방에 짙은 안개가 껴야 한다. 구름안개 위로 원형 무지개가 뜨고 그 안에 자신의 그림 자가 드리운다. 브로켄 현상의 원리는 구름이나 안개의 물방 울에 닿은 태양광선의 굴절, 즉 빛과 물방울이 만들어내는 마법이다. 그림자가 평면이 아니라 층층이 깔린 안개를 통과 하며 비추기 때문에 커 보인다. 태양광선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그림자도 원형 무지개도 어마어마하게 커진다.

...하지만 뱀파이어 vampire 라는 용어 자체는 18세기 이후에 처음 등장했다. 여러 가설이 있지만 리투아니아어의 ‘마시다 wempti ’에서 왔다고 한다....

...숲이나 호수 같은 자연물의 정령이며 사람보다 훨씬 자그마한 생물, 요정은 시대의 요구 였다. 19세기 초반까지 과학만능주의와 합리주의를 연료 삼아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며 힘차게 달려온 새 시대의 사람들 에게도 피로가 쌓여갔다. 그리고 그 반동은 도시에서 자연으 로의 회귀로, 사실주의에서 내면과 정신의 탐구 및 초현실적 세계를 향한 동경으로 나타났다. 그러한 낭만적 기호에 적합한 예술이 바로 상징주의이며 요정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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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물론 잠자리에 든다. 그렇게 잠든 사이에 무언가 엄청난 소리를 내뱉지는 않을까. 이제는 나 자신조차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본심’을 꿈속에서 말의 형태로 내뱉는 것이 아닐까. 그뿐만이 아니다. 행여 잠든 사이에 일어나서 절도 없는,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저지르지는 않을까. 자아를 상실하는 것, 그것이 내가 제일 피해야 하는 사태다. 그리고 잠은 매일 반드시 찾아오는 망연자실의 시간이다. 어떻게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옥은 괴로운 곳이라 한다. 고통스러운 곳이라 한다. 그렇다면 내가 있던 곳은 지옥이 아니었을 것이다. 고다이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오구리 가문의 저택, 그 구석방을 차지한 나는 그곳에서 그저 시간을 보냈다. 주어졌어야 할 시간은 사라졌고, 다른 많은 것들도 그와 함께 사라졌다. 나는 날마다 먹고, 자고, 흐느껴 울며 시간을 보냈다. 그것을 고통이라 부르는 건 알맞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은 무위無爲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무위였다.

.."바벨의 모임이란 환상과 현실을 혼동하는 덧없는 자들의 성역입니다. 너무나 단순한, 혹은 너무나 복잡한 현실을 견디지 못하는 이들이 우리 모임에 모여들지요. 말하자면 우리는 같은 지병을 가진 사람들이에요."

.."바꿔 말하자면, 당신은 바벨의 모임에서 유일하게 강한 사람입니다. 현실과 마주하는 데에 이야기의 힘 따위를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당신의 빛은 우리의 어둠에 존재해서는 안 돼요. 몽상가가 한때의 꿈에 잠기는 곳에 현실주의자가 침입했을 때, 주눅 드는 쪽은 항상 몽상가니까요. 당신은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무뚝뚝한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나쓰의 표정에서, 나를 ‘맛을 보장할 수 없는 요리를 주문하는 바보 같은 계집애’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읽을 수 있었다. 긍지 높은 사람은 좋다. 그리고 그것을 입 밖으로 내지 않는 사람은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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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씌어 있는 글자를 읽지 않고, 스스로 이러할 것이라고 생각한 결과를 읽은 것이다.

..멋진 여자와 가까워졌다고 기뻐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스와나는 진정 나에게 감사하는 건가. 그것은 편리한 자동차나 맛있는 소고기를 대하는 것처럼, 자신과 동등하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이 아닐까. 직감적으로 그 사실을 느낀 것이다.

..너무나 역겨운 기분에 유키는 토할 것만 같았다. 지식과 취향을 여봐란듯 드러내는 게 얼마나 추한 짓인지 몸서리치게 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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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건물에 흥미가 있었다. 가까이에 존재하는 건축물이 아니라, 텔레비전에서 본 서양 영화에 등장하는 고성이나 성관城館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없는 동경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 다만 그 대다수가 영화용 세트였다고 생각되므로, 나는 실존하지 않는 건물에 매료되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한편으로는 그냥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하면 되는 일이 존재하는 것 또한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회사는 각 개인을 파악해 적재적소인 파견지를 정하는데, 그곳에서 제대로 일을 못 하면 다음 날 다른 곳으로 이동시킨다. 그래서 ‘이것이라도, 이것밖에, 이것조차’인 사람도 어떻게든 일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옥석이 혼재되어 있긴 하지만, 아마도 대부분이 돌멩이인 게 아닐까.

..막탄이란 오래 쓴 쇠솥으로 만든 총알인데, 사냥꾼이 평생에 딱 한 번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사용하는 총알을 말해. 이걸 쏜다는 건, 그 순간 사냥꾼을 그만둔다는 걸 뜻하지. 그 정도로 귀한 총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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