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물론 잠자리에 든다. 그렇게 잠든 사이에 무언가 엄청난 소리를 내뱉지는 않을까. 이제는 나 자신조차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본심’을 꿈속에서 말의 형태로 내뱉는 것이 아닐까. 그뿐만이 아니다. 행여 잠든 사이에 일어나서 절도 없는,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저지르지는 않을까. 자아를 상실하는 것, 그것이 내가 제일 피해야 하는 사태다. 그리고 잠은 매일 반드시 찾아오는 망연자실의 시간이다. 어떻게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옥은 괴로운 곳이라 한다. 고통스러운 곳이라 한다. 그렇다면 내가 있던 곳은 지옥이 아니었을 것이다. 고다이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오구리 가문의 저택, 그 구석방을 차지한 나는 그곳에서 그저 시간을 보냈다. 주어졌어야 할 시간은 사라졌고, 다른 많은 것들도 그와 함께 사라졌다. 나는 날마다 먹고, 자고, 흐느껴 울며 시간을 보냈다. 그것을 고통이라 부르는 건 알맞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은 무위無爲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무위였다.

.."바벨의 모임이란 환상과 현실을 혼동하는 덧없는 자들의 성역입니다. 너무나 단순한, 혹은 너무나 복잡한 현실을 견디지 못하는 이들이 우리 모임에 모여들지요. 말하자면 우리는 같은 지병을 가진 사람들이에요."

.."바꿔 말하자면, 당신은 바벨의 모임에서 유일하게 강한 사람입니다. 현실과 마주하는 데에 이야기의 힘 따위를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당신의 빛은 우리의 어둠에 존재해서는 안 돼요. 몽상가가 한때의 꿈에 잠기는 곳에 현실주의자가 침입했을 때, 주눅 드는 쪽은 항상 몽상가니까요. 당신은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무뚝뚝한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나쓰의 표정에서, 나를 ‘맛을 보장할 수 없는 요리를 주문하는 바보 같은 계집애’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읽을 수 있었다. 긍지 높은 사람은 좋다. 그리고 그것을 입 밖으로 내지 않는 사람은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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