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야는 과거 눈앞의 남자에게 배운 기술을 썼다.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굳이 선택지를 두 개 제시한다. 모모즈 상사의 영업 매뉴얼에 기재되어 있었다는 사기꾼의 상투적인 수단이다.

.."신앙이 현실과 괴리를 일으키면 신자는 새로운 해석을 만들어서 그 괴리를 해소하려고 하죠. 나아가 활동의 규모를 키움으로써 자신들의 정의를 뒷받침하려고 하고요. 결과적으로 신앙은 오히려 더 강화돼요. 굳이 설명한다면 그런 식이겠죠.
..밀러파와 도로시 마틴 추종자 집단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어요. 그건 어느 쪽 신자이건 뒤로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점이에요. 그들은 일상생활을 팽개치고 사람들에게 백안시당하며 전재산을 털어서까지 예언이 현실이 되는 순간만을 기다렸어요. 이제 와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상황 앞에 그들의 신앙이 현실을 초월하게 된 거죠."

..조든이 계속해서 화를 터뜨리는데도 피터 웨더스푼의 가슴은 잔잔했다. 이런 정도로 하나하나 놀라서는 이 남자 밑에 있을 수 없다. 귀찮은 일이 벌어졌을 때 그가 짜증을 내는 것은 아기가 밤에 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결심했다.
..이 장소에서 탐정사무소를 열기로.
..그리고 누군가에게 목숨을 빼앗기는 일 없이 탐정인 채로 생을 마치기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죽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지다. 그것을 이 장소에서 증명해 보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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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71p.
..멀리 떨어진 곳이나 사람의 마음, 미래를 꿰뚫어 보는 천리안과 달리, 악의를 품고 상대를 노려봄으로써 저주를 거는 것이 마안이다. 하지만 사람의 죽음에 관한 사키미의 예언이 절대로 빗나가지 않는다면 주민들에게는 천리안도 마안과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죽음에 대한 불안을 발산시키기 위해서는 마안이라 칭하며 꺼리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189p.
..전화 한 통으로 경찰이나 응급 구조대가 달려오는 일상 속에서는 구조에 힘을 다하지 않거나 포기하는 일이 흡사 악행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불가항력과도 같은 재해, 자신의 안전을 우선해야 하는 상황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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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p.
...살짝 찌르기만 해도 가식이 부슬부슬 떨어져나가서 알고 싶지도 않았던 사실이 환히 드러날 것 같았다. 파헤치는 건 똑같지만 수수께끼와 추문은 기분이 다르다.

170p.
..지진 피해를 입었을 때의 심경과 흡사하다. 숨쉬는 것도 잊어버릴 만큼 지독한 무력감. 절망스러운 광경. 고작 하루 만에 손안에서 흘러내린 것이 얼마나 큰가. 온 세상이 발끝부터 빙글 뒤집힌 것만 같다.

432~433p.
..어쩌면 녀석들은 그저 자신의 가장 추한 부분을 드러냈을 뿐 아닐까. 단지 그 한 부분을 제외하면 그렇게 나쁜 놈들은 아닌데, 너도 나도 누군가의 가장 추한 부분을 손가락질하며 인간도 아니다, 용서할 수 없다고 외치고 있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그 분노는 역시 정당했을까. 분노를 표출한 걸 영원히 후회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이렇게 가장 추한 부분을 드러낸 나랑 너는 계속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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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이나 발견을 할 때 어떤 능력이 제일 중요한지 알려주지. 직감. 발명이나 발견뿐만이 아니야. 사물의 본질은 직감으로밖에 꿰뚫어볼 수 없어. 탐정도 마찬가지야. 모래톱의 쓰레기를 1밀리미터 크기의 유리 조각에 이르기까지 남김없이 주워 모아, 그 속에서 단서를 찾아내려는 비효율적인 발상을 하는 인간은 경찰관을 목표로 삼아야 해. 탐정은 조직의 일부로서 일하지 않아. 단 혼자서 조직 이상의 활동을 해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절차를 단축할 수밖에 없어. 감으로 추리의 방향성을 정하고 증거는 나중에 찾는다. 명탐정이라고 칭송받는 사람들을 봐봐. 직감력이 얼마나 뛰어나냐."

...수집벽이라는 말이 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무릇 수집이란 천성으로서, 고유한 뭔가를 좋아해서 모은다기보다 뭐든지 상관없이 물건을 모으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는 거야....

..시체 발견을 늦추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자살 위장도 아니죠. 밀실을 만들고 싶으니까 만드는 겁니다. 밀실을 만드는 행위 그 자체가 목적이죠. 필연성 따위는 엿이나 먹으라지. 캔버스와 마주한 고흐가 실리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는 겁니까? 그려도 팔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붓을 계속 쥐고 있던 데 필연성이 있습니까? 있다고 하면, 작가의 마음이 그리 하기를 원했다는 거겠죠. 그렇습니다, 밀실살인은 혼의 발로發露, 즉 예술입니다.

.."선인들은 자주 이렇게 말씀하셨지. ‘논리보다 증거.’ 논리 따위는 결국 머릿속 놀이. 증거가 있으면 논리 따위는 필요 없어."

..가타기리는 사람의 생명은 똑같다고 평가한다. 똑같이 가치가 없다고. 어릴 때부터 그렇게 여겨왔다. 그래서 그는 망설임 없이 사람을 죽인다.
..‘사람’이란 타인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자신도 포함된다. 그래서 가타기리는 가치가 없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모든 힘을 기울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돈이 아니야. 이 가설이 번뜩인 순간, 누구한테도 넘기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어. 그도 그럴 게 대단하다는 칭찬을 받고 싶잖아. 너한테는 못 당하겠다고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들고 싶잖아. 역시 명탐정은 한 마리 늑대야. 모두 사이좋게 역할 분담해서 목적을 달성하고 싶다면 경찰관이 되면 될 일이지. 아니면 파워레인저 SPD나. 원하는 건 각광뿐이야."

..실제로 많은 경우, 나는 게임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몸이 심하게 굳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한다. 나는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여기지만, 나 자신의 정신을 건전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시 죽음이 필요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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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p.
..그의 말은 나만이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달아나라, 애야. 손이 펼쳐져 있어. 빨리 날아가. 저기 유카리나무 가지로 뛰어올라 봐. 거기서 숨을 한 번 크게 쉬고 멀리 날아가 버려. 어서 빨리 날아가!"
..페드로 씨는 안타깝게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는 날 수가 없어요. 힘이 없어서 날개가 나뭇잎처럼 무거워요" 하고 겨우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나는 유카리나무가 서 있는 쪽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햇살은 나뭇가지 사이로 빛났습니다.

40p.
.."왜 사람들은 모든 것을 망쳐 놓는 것일까?"
..그러나 이것은 나에게 오히려 잘 된 일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늘 무언가를 배우고자 했으므로 이것은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나는 모든 것을 다 누리고 싶어하는 고약한 버릇이 있었습니다.
..농장의 거대한 연못이 지긋지긋해졌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모험을 위해서 태어났는지도 모릅니다. 모험이란 굉장한 곳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물과 이상한 물에서 살아 보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앞날은 어떻게 될는지.......

49p.
..키테리아 선생님이 철학 시간에 강조하신 글귀 하나가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외로움을 이것에 비교할 수 있지요. 그것은 바로 늙음이랍니다.‘
..나도 성숙해졌습니다. 환경이란 삶에서 가장 큰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이란 가장 혹독한 환경입니다. 그것은 공상의 끝없는 여행과도 같습니다. 또 내 꿈의 슬픈 현실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커다란 경계선에서 또다시 다른 곳으로 달려가려는 노력이기도 했습니다.

71p.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냥 바라만 보아요."
..엄마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그 옆에서 기쁨에 넘쳐 소리쳤습니다.
.."엄마, 너무 아름다워요. 엄마의 두 눈에 구름이 가득 차 있어요. 왜 그럴까요?"
.."얘야, 그것은 누구든지 구름을 바라보기만 하면 그렇게 되는 거란다. 너의 눈 속에도 구름이 가득 들어 있어."
..이 행복한 순간이 바로 나의 삶이었습니다.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아픔도 없었고 배고픔도 없었으며 목마름도 전혀 느끼지 않았습니다.

97p.
..칸도카 여사는 마지막 여린 빛을 걷어 아주 맑은 녹청색 덧옷 주머니에 넣습니다. 이제는 잠이 완전히 깬 것 같습니다.

108p.
..사람은 자라야 하고 다 자라고 나서는 실망뿐이라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들은 나무와 얘기를 할 줄도 나무를 이해할 줄도 모르니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117p.
..이제 소년은 뒤뜰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어릴 때 지내던 방의 창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창문은 못질이 되어 있었고 방 안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떨쳐 버리려는 듯이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습니다. 그의 구두끈이 풀려 있었습니다.
..그는 칸도카 여사의 잘린 나무 등걸까지 걸어와 한 발씩 번갈아 등걸 위에 올려놓고는 무심히 구두끈을 고쳐 맸습니다.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담고 있는 망고나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121p.
..꿈도 마음도 멀리 사라져 갔습니다. 한밤의 유리알 마음은 슬픔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색칠해 놓은 유리알 마음은 분하여 떨고 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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