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p.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주장에 따르면, 물질주의가 그토록 매력적인 이유는 물건의 견고함이 유한한 육체와 정신에 본래 없던 것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칙센트미하이는 "우리가 물질주의에 빠지는 것은 대개 의식의 불안정성을 사물의 견고함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역설적인 욕구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몸은 "자아감을 만족시킬 정도로 충분히 크지도, 아름답지도, 영원하지도 않기" 때문에 우리는 물건을 통해 육체의 힘, 능력, 표현을 확장하는 법을 찾아낸다....
28p. ...채핀의 경우처럼 새 가운은 대체재를 찾는 과정을 촉발시켰다. 이에 대해 사회학자 줄리엣 쇼어Juliet Schor는 에세이 <디드로의 교훈: 슬금슬금 올라가는 욕망 멈추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결국 디드로는 새로운 주변 환경의 세련된 격식 안에 불편하게 앉아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이 ‘오만한 새빨간 가운이 다른 모든 것도 어쩔 수 없이 그 우아한 분위기를 따르게 만든‘ 짓을 한탄하면서."
66p. ...이에 관해서는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과 동료들이 진행한 ‘정점과 종점[peak-end]‘ 경험에 대한 연구가 통찰력 있는 설명을 제공해준다. 카너먼은 경험을 기억하는 방식이 사실 혹은 경험이 야기한 고통, 기쁨이 아니라 특정 사건에서 발생하는 가장 중요한 두 순간, 바로 사건의 정점과 종점에서의 기분(좋거나 나쁘거나)에 대한 기억과 감정에 의해 형성된다고 봤다....
83p. ..잡고 잡히기는 고통과 괴로움으로 인한 반응을 달래는 일반적인 방법이다. 자연 옹호자인 리처드 루브Richard Louv는 베스트셀러 저서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손길이 없으면 젖먹이 영장류는 죽는다. 접촉이 부족한 성체[adult] 영장류는 더 공격적인 성향을 띤다." 아기 때는 안겨 있지만 점차 성장하면서 필요할 때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육체적 위로를 보장받을 수 없게 된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홀로, 혹은 중간에 칸막이가 쳐진 삶을 살아간다. 물건이 주는 위안은 잊기 쉽지만 사회학자 팀 던트가 상기시키듯 물건과의 접촉은 사람과의 접촉에 비해 지속적이고 친밀하다. 우리는 접촉을 잃어버리지 않은 것이다.
106p. ..프랑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사물의 체계》에서 물건은 늘 어떤 식으로든 우리와 세계의 관계를 변형하거나 조정한다고 했다. 예를 들면 자동차는 시공간과의 관계를 완전히 바꿔버린다. 거울은 빛, 그리고 대개 외모와의 관계를 변화시킨다. 뒤에서 재잘대는 라디오는 정적과 소리, 새소리와 자동차 소리의 관계를 바꾼다....
116p. ...소셜 미디어의 끊임없는 피드feed에 대해 이야기하는 정신분석가 애덤 필립스Adam Phillips는 우리가 섭취하고 있는 것을 "강제 급식"에 비유한다. 식욕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잔뜩 먹는다는 것이다. 필립스의 주장은 더 많은 물건, 새로운 물건을 갖고 싶은 욕구에 대한 설명으로 유익하게 확장될 수 있다. 필립스는 이렇게 서술했다. "소화시키지 않고도 소비할 수 있다는, 마치 과정이 아예 없는 것처럼 삼키지 않고도 먹을 수 있다는 이상하고 마법 같은 생각이 존재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기능적인 물건에 얄팍하고 유연한 애착을 가지면서 해방된 안도감을 느끼는 것을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다. 숙청 작업의 준비 과정, 다음에 올 것을 위해 자리를 내주기 위한 준비 과정인 것이다....
131p. ...갈망하는 물건은 완벽한 진짜 미래의 모습, 즉 미래의 특정한 시점 혹은 다양한 일련의 상황들 속에서 더 충실한 자아상의 형태를 강력하게 환기시켜 줄 수 있다. 이 경우 어떤 사람이 될지 혹은 무엇이 될지 결정해야 하는 부담이 없어진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벨벳 재킷을 입은 사람"이라는, 인생을 단순화한 대답이 뒤따르게 된다.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복잡한 자유, 야망, 다른 이들에 대한 책임감, 의미나 목적을 찾아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난다. 갈망하는 물건은 그 물건의 주인이 되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제거해주겠다는 약속이다.
142p. ...본질적으로 한때 갈망하던 물건은 하나의 질문이다. 그 물건은 스스로 잘 아는 현재의 나와 아직은 모르지만 되고 싶은 나 사이에 있다. 즉 내면의 고뇌가 겉으로 드러난 표현인 것이다.
166p. ..카유아는 네 가지 놀이 영역을 발견했다. 각각의 놀이는 저마다 ‘현실 세계‘에서 벗어나 특별한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놀이 유형 중 아곤Agôn에서는 단체운동처럼 경쟁을 경험한다. 알레아Alea 놀이에서는 카드 게임처럼 모든 게 운에 맡겨진다. 어린 시절 변장 놀이 같은 미미크리Mimicry는 다양한 역할 놀이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일링크스Ilinx가 있는데 "순간적으로 지각의 안정성을 깨고 멀쩡한 정신에 쾌락적인 공포를 안길 수 있는" 적극적인 놀이다. 아이들이 회전놀이기구를 타거나 옆으로 재주넘기를 하는 게 일링크스 놀이다....
173p. ..소유물에서 요구되는 행동할 권리는 상당히 겸손한 수준일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다 힘이 있는 건 아니다. 인생은 보통 선택한 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소유한 물건들이 이 세상에서 의지를 표현하게끔, 의도를 행동으로 옮기게끔, 줄곧 있던 대단치 않은 자유를 주장하게끔 도와줄 수 있다. 이것이 그 물건들의 약속이다. 물건들 역시 자신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줄 것을 요구한다. 드 보부아르의 《타인의 피》에 나오는 찻길 가장자리에 세워둔 "충직하고 말 잘 듣는" 자전거처럼 물건들은 거기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약속을 실현하기를 기다리면서.
222p. ..프랑스인들이 쓰는 표현 중에 ‘Casser maison(카세 메종)‘이라는 게 있다. 문자 그대로 하면 ‘집 부수기‘라는 뜻이다. 인류학자 장세바스티앵 마르쿠는 이 표현을 ‘집 부수기‘ 과정에서 사람들이 시도하는 것으로까지 확대했다. 치우기, 분류하기, 기억 만들기 다음에는 인심 좋은 최종 단계, 바로 개인적인 물건 물려주기 혹은 선물하기가 있다. 마르쿠는 이것을 "예정보다 일찍 상속을 실행하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이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공통점이 있는, 어쩌면 심미적인 측면에서만 공통점이 있는 또 다른 사람을 찾는 일이 시작된다.
231p. ...소유물이 인생에서 견실한 의미를 만들게 한다면, 전달은 좋은 죽음을 준비하게 도와준다. 결국 우리 자신의 문제는 어쩌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소유물은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는 그런 죽음. 마르쿠의 설명에 따르면 주된 변화는 "주는 사람의 자아와 그 자아의 잠재적 실현을 체화한 집합체로서 모은 물건이 아니라 전달 작전 그 자체"다. 우리는 증여라는 희생을 통해 더욱 자기 자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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