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p.
..긴코 씨처럼 연약한 할머니가 나를 어떻게 보든 별 대수로운 문제는 아니다. 저렇게 나이가 들어 버리면 이제는 두루뭉술한 감정밖에 없겠지, 하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57p.
.."난 지금 허무함을 다 써 버리고 싶어요. 노인이 됐을 때 허무하지 않게."
.."지즈 짱, 젊은 시절에 그런 걸 다 써 버리면 안 돼. 즐거운 것만 남겨 두면, 나이 들었을 때 죽기 싫어지는 법이야."

63p.
..살 만큼 산 사람 앞에 있으면, 그 사람은 더 이상 노화되지 않고, 나 혼자만 거기 있는 늙음을 향해 맹렬한 속도로 굴러떨어지는 기분이 든다. 말린 전갱이의 살을 바르는 동안에도, 여름 밀감 껍질을 벗기는 동안에도 왜 그런지 자꾸 마음이 조급해졌다.

78~79p.
..후지타는 저녁 식사가 끝나자마자 돌아갔다. 현관에서 내가 부탁한 대로 승강장 맨 뒤까지 걸어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런 밤이 앞으로 몇 번이나 있을 거라고 느끼게 해 주는 이별이었다. 손을 흔들고 있으니 발바닥 밑에서 따뜻한 뭔가가 차오르는 것 같은 좋은 느낌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옆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긴코 씨까지 사랑스러워 보였다.

112~113p.
..이토 짱과 내 머리 길이는 엇비슷했다.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은 것도 같았다. 작은 손가방만 들고 다니는 것도 같았다.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내가 완성도 떨어지는 이토 짱의 복사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16p.
.."하지만 어차피 틀렸다는 생각이 들면, 대체로 그렇게 돼요.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자꾸 하게 되고."
.."틀에서 불거져 나온 부분이 인간이야. 불거져 나온 부분이 진정한 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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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p.
.."돈을 펑펑 쓰게 했군요, 내가." 그는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아마 지금 내게는 그런 것이 필요했을 거예요."
.."그런 것이라니, 무슨?"
.."내 감정을 뭔가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내는 것."

31p.
.."그 룰을 당신 스스로 만들었어요?"
.."그렇답니다." 그는 푸조의 계기판을 향해 말했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규칙이죠."
.."형태가 있는 것과 형태가 없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면 형태가 없는 것을 택하라." 그녀가 되풀이해서 말했다.

182p.
..마쓰나카 유코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 같은 것이 떠올랐다. "질투의 마음이란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조건 따위와는 별 관계가 없는 것 같아요. 좋은 환경에서 자랐으니까 다른 누군가를 질투하지 않는다든가, 별로 좋은 환경이 아니라서 질투를 한다든가,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에요. 그건 몸속의 종양처럼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제멋대로 생겨나 이론 따위와는 상관없이 마구 퍼져가는것이죠. 행복한 사람에게는 종양이 생기지 않는다든가 불행한 사람에게는 종양이 생기기 쉽다든가, 그런 건 아니잖아요? 그것과 마찬가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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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p.
...돈을 많이 내면 당연히 그에 걸맞은 서비스가 따라올 것 같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당연히‘를 낙관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그 사회의 주류로 사는 사람뿐이다.

154p.
..성애적 관계에는 두 종류가 있다. 아침이 있는 관계와 아침이 없는 관계. 아침을 먹어도 다 같은 건 아니다. 아침을 사 먹기만 하는 관계와 고작 커피 한 잔이라 해도 집에서 함께 먹는 관계. 아침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과만 만날 필요는 없지만 아침을 함께하고 싶지 않은 사람하고는 아침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아침식사, 그게 뭐길래. 하지만 아침을 함께하지 못하는 관계에는 미래가 없다.

184p.
..미국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어본 사람이면 잘 알테지만, 대체로 이런 책의 저자는 이런 책을 쓴 일이 삶의 가장 큰 성취일 때가 많다. 성공한 사람이 되어 책을 쓰는 식이라기보다는 책을 팔아서 성공한 사람이 되는 스토리텔링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며 살고 있다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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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의 대상인 싱글과 사회적 사실로서의 혼자 살기는 다르다. 싱글이 판타지로 다루어질 때는 상상력만 필요하다. 상상력은 현실로부터 가장 멀리 달아날 때 가장 아름답게 느껴진다. 판타지의 충족감은 현실과의 거리에 비례해서 커진다. 그러나 사회복지의 대상인 독거노인은 눈곱만큼의 판타지도 허락하지 않는 순도 100퍼센트의 리얼리티이다. 화려한 싱글에는 리얼리티가 없고, 독거노인에게는 삶의 판타지가 없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오랜 기간 동안 낙인 집단으로 전락했던 사람이 입을 열 기회를 얻게 되었을 때 자신도 모르게 과장이라는 덫에 빠진다는 것이다. 마침내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게 된 낙인 집단의 대표자는 매우 강한 고백의 의지를 갖고 있다. 그는 배를 갈라서 장기를 다 드러내는 심정으로 자신의 처지에 대한 천일야화를 풀어낸다. 하지만 천일야화가 계속되면 될수록 강한 고백의 의지를 약화시키는 또 다른 힘이 그 사람을 습격한다. 그건 수치심이다. 스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는 세상에 자신을 털어놓을 때 고백의 의지보다는 수치심에 대한 통제가 더 결정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전적으로 옳다.

..어떤 아빠가 될 것인가, 어떤 남편이 될 것인가의 문제는 김 아무개 씨의 개성이 요구하는 사항이 아니다. 아빠와 남편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규범은 전적으로 김 아무개 씨가 살고 있는 시대의 요구이다. 객체로서의 자아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니다. 모든 자아는 "사회적 과정에 의해 또는 사회적 과정을 매개로 하여 형성되고 그 사회적 과정의 개인적인 반영"에 불과하다. 아빠가 되고 남편이 되는 것은 "그에게 객체로 다가오는 것을 자신 안에 받아들여 전유함으로써 외부적인 것에서 자신을 다시 발견하는것"의 문제인 이상, 다인 가구 속의 사람은 자기 내면이 아니라 미드에 의해 ‘일반화된 타자‘the generalised other라고 이름 붙여진,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강력한 힘으로 다가오는 그 사람들을 참조해야 한다. 규범적인 역할은 객체로서의 자아가 "스스로 가정하는 타인의 태도를 조직화한 세트"에 다름 아니다.

..가정이라는 복합 모나드가 개인이 소속될 수 있는 유일한 제도가 아님은 분명하다. 하나의 가족은 또 다른 가족과 연결되어 있고, 사생활의 영역인 가정 외부에는 공적 생활이 펼쳐지는 외부 공간이 있다. 가족과 가족이 이어져 하나의 위상학적 관계가 만들어지고, 사적 생활과 공적 생활로의 분화가 일어날수록 한 개인이 참조해야 하는 ‘일반화된 타자‘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런 참조를 통해 가정 내 성별 분업도 여전히 정당화된다. 아빠로서의 일과 엄마로서의 일, 남편으로서 일과 아내로서의 일, 사위로서의 일과 며느리로서의 일은 여전히 구분된다. 한 개인은 외부에서는 직장인이어야 하고 돌아오면 사적 공간에서의 역할을 참조해야 한다. 개인이 참조해야 하는 타인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개인이 연출해야 하는 페르소나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주체로서의 자아의 크기는 줄어든다. 주체로서의 자아와 객체로서의 자아는 제로섬의 관계에 가깝다. 하나가 늘어나면 다른 부분은 줄어든다. 객체로서의 자아가 커지면, 즉 역할밀도가 짙어지면 주체로서의 자아는 작아지고, 그 결과 자기밀도는 제로에 가까워진다. 자기 밀도가 제로에 가까워질 때, 같이 사는 사람은 혼자 사는 사람에게서 자유의 향기를 느낀다.

..수행해야만 하는, 그것도 성공적으로 수행해야만 하는 역할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자아의 고유성은 설 땅이 없어진다. 아니, 단 하나의 역할만 더 추가되어도 그러하다. 좋은 아빠와 자상한 남편, 능력 있는 직장인이 되는 것이나, 자애로운 엄마와 따뜻한 아내 그리고 커리어우먼이 동시에 되어야 하는 것이나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잊고 있던 자기에 대한 질문을 불쑥 던질 때는 이미 갱년기이다. 역할밀도가 높은 삶을 살았을수록, 그리고 자기 밀도가 허약한 사람이었을수록, 갱년기에 찾아온 질문은 혹독하고 그만큼 고통도 오래간다. 겪어본 사람은 안다. 갱년기의 질문과 비교할때 사춘기의 고민은 그저 연습문제에 불과했음을.

..역할에 대한 만족도는 역할 행동이 거짓이기 때문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역할에 대한 만족도의 차이는, 역할의 진정성의 차이에서 온다. 역할의 진정성authenticity은 모든 형태의 자기 연출을 부정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연출을 스스로 설정할 수 있는 자기 결정력이 강할 때 온다. 역할이란 그것이 사회적 관계인 한 연출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만족도의 차이는 거짓과 진실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역할의 내용을 스스로 결정했는지 혹은 외부에 의해 수동적으로 결정되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동일한 무리에 속한 사람은 서로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반드시 서로 비슷해야 한다. 유사성에 기초한, 혹은 유사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였을 때 상호작용의 밀도가 증가하면 비교는 불가피하다. 물론 그 비교는 제한된 상황에서만 행해진다. 처음부터 같은 유사성, 같은 타인지향적 관계를 통해 형성된 무리이기 때문이다. 본래 비교란 유사한 속성을 지닌 집단 내에서 각자의 고유성을 측정하려는 노력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그들의 고유성이란 대개가 강한 타자관계를 통해 형성된 것이기에, 비교 행위 역시 자신들의 유사성을 가장 이상적으로 구현할 수 있느냐로 모아진다. 이미 수백만 원대의 값비싼 자전거를 가진 사람들의 동호회에서는 천만 원 대 자전거를 가진 사람이 비교의 준거가 된다.

...외로움의 날 끝은 사람을 향하게 되어 있고 그 방향을 통해 우리 인생은 부단히 혼자가 아님을 알게도 된다. 외로움의 명약은 외로움이다. 가장 큰 ‘혼자‘로 살수 있을 때 혼자인 자신에게 성실할 수 있다. ‘괜찮은 혼자‘가, ‘성숙한 혼자‘가 세상을 든든히 받친다. 고립되거나 고독한 개별자가 아니라 권능과 개성의 원천으로서의 혼자라는 것은 성숙을 위해 누구나 불가피하게 거처야 하는 통과의례이다.

...감각을 느끼는 촉수를 개별적으로 갖고 있는 두 개의 모나드가, 동시에 같은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아주 드문 순간을 섹스가 제공해준다. 오르가즘이 신체적 커뮤니케이션의 절정이라면, 공감은 언어 커뮤니케이션의 절정이다. 인간의 존재방식이 근원적으로 개별적인 것을 깨닫고 있는 사람에게 공감의 순간은 더 크게 느껴진다. 그러나 공감의 기쁨은 상대방의 호들갑스럽고 때로는 과장되어서 진심을 믿기 어려운 과장된 리액션이 보장해주지 않는다. 과장된 리액션이 오고가는 포르노에서 우리는 말초신경의 자극은 얻을 수 있을지언정, 내면에서 솟아나는 기쁨을 느끼기는 어렵다. 포르노에는 과장된 리액션이 있을 뿐 공감이 없다. 공감으로 향한 길은 과장된 리액션이 아니라, 모나드로서의 자기 존재를 깨달은 모나드들이 서로 조우할 때 싹튼다.

...자기 밀도가 높은 사람은 대체로 취미를 가진 경우가 많다. 자기밀도는 높은데 취미조차 갖고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 밀도가 매우 낮은 사람들은 의외로 취미가 없으면서도 삶을 그럭저럭 살아간다. 취미가 있는지 혹은 취미가 없으면 견딜 수 없는지는 자기밀도를 측정할 수 있는 일종의 바로미터이기도 한 셈이다. 취미는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이다. 취미는 타인과의 경쟁에서 승리를 목표하지 않고, 자기만의 만족을 위해 몰입하는 행위이다. 우리는 항상 타인과 경쟁해야 하고 타인을 압도해야 하기에, 타인이 내게 없는 것을 갖고 있을 때는 마음속에 활활 타오르는 질투심이 생긴다. 그 질투심은 착한 마음으로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취미의 세계에서는 각자 자신만의 목표를 향하기에, 진정한 취미의 세계에서는 질투가 사라진다.

...누구나 욕망은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욕망의 주인이 나인 것은 아니다. "허영심이 많은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자신의 내부에서 끌어내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빌려온다." 만약 허영심에서 비롯된 목표라면, 그 목표가 달성되었을 때 우리는 허영심을 만족시킨 것이지 자신을 만족시킨 것이 아니다. 만족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자신을 위해 스스로 배려할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에 대하여 가장 훌륭한 존재여야만 한다. 이렇게 될수록, 즉 인간이 향락을 자기 안에서 발견하는 일이 많을수록 그는 점점 행복하게 될 것이다. 때로는 의도적인 고립을 통한 자신의 발견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의 경우가 그러했다.

..치타델레로 물러나 자기만의 보루를 지키려는 몽테뉴의 태도는 분명 행동주의자의 모습과는 다르다. 하지만 몽테뉴가 행동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치타델레에서 우리가 은둔과 회피의 전략만을 읽어낼 수는 없다. 치타델레에서 몽테뉴가 절실하게 붙든 질문 "내가 무엇을 아는가?"는 성급하게 어느 한편이기를 원하는, 그리고 어느 한편으로 분류되지 않으면 용납하지 않는 집단주의에 대한 문제제기에 다름 아니다.

...인간은 오로지 자기만을 알았던 유아적 단계를 지나 타인들의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습득하는 사회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반화된 타자의 관점을 지니지 못한 철없는 행동은 성숙한 인간의 행동이 아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일반화된 타자의 관점에만 머문다면, 그것 역시 일종의 성장 장애이다. 일반화된 타자의 내재화 이후 한 단계 더 필요한 능력이 있는데, 그것은 일반화된 타자를 전제로 하여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는 유아론唯我論이다. 일반화된 타자를 구성하기 이전의 원시적이고 유아적幼兒的인 유아론이 일반화된 타자에 의해 극복되고 유아적 발상이 상대화되는 것처럼, 과도하게 작동하는 일반화된 타자에 대한 대응책은 성숙한 유아론이다. 우리들의 치타델레는 성숙한 유아론을 배우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공간이다.

...세넷Richard Sennett의 말을 빌리자면 "삶을 서사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해서라기보다는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벌어져야 했는가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예를 들면 자신이 밟아온 경력에 비추어 앞으로 승진 경로는 어떻게 될 것인지를 그려보거나, 한 회사에 장기 근무하는 것과 앞으로 늘어날 재산 규모를 서로 연관짓는 일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유연한 자본주의는 어느 누구에게도 서사적인 삶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는 한 사람이 평생 동안 하나의 우물만을 파는 장기적이고 차분한 인생의 계획을 고집하다가는 순식간에 낙오자로 전락할 수도 있다. 희로애락이 교차하는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마지막까지 위대한 여정을 이어갔던 한 편의 대하 서사시 같은 삶의 궤적은 이 시대에 허락되지 않는다. 이 시대에 개인들의 삶은 15초를 겨우 넘기는 상업 광고처럼 단편화된다. 즉각적으로 변신해야 하고, 재빨리 적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 속에서 긴 이야기로 이어진 서사적 삶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우리들의 삶은 자극적이며 전개가 빠른 광고 필름들의 몽타주를 닮아간다.

..얼치기 이기주의자는 자신의 탐욕만을 알고 있기에, 그가 자기를 만족시키기 위해 채택하는 방법은 경제적 이기주의이다. 경제적 이기주의는 시장 경쟁에서 자신이 유일한 승리자가 되겠다는 욕심을 목표로 삼는다. 운이 좋거나 혹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서 그 경쟁에서 유일하게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경제적 이기주의의 길은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경제적 이기주의는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다. 모두가 승리자가 될 수 없다. 소수의 사람만이 승리자가 될 수 있음에도 사람들은 이 길을 향해 자신의 인생을 모두 건 도박이나 다름없는 삶을 산다. 하지만 진정한 이기주의자는 자기에 대한 배려와 자기만의 방에 대한 구체적인 욕구를 뼛속까지 알기에 자기를 탐욕으로 환원시키지 않는다. 그리고 골똘히 생각한다. 자기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가족은 가장 확실한 자기 보호의 메커니즘이지만 동시에 가장 확실히 자기밀도를 낮추는 요인이기도 하다. 만약 우리가 ‘죄수의 딜레마‘를 사슴 사냥의 딜레마로 바꿀 수 있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성립시킨다면 독립의 대가로 두려움을 그림자처럼 지고 갈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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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p.
...극장에서 나와 홀로 거리를 걷다가 처마밑에서 소나기가 그치길 기다리며 맡았던, 어느 가게의 생선구이 냄새. 뺨에 닿았던 습기의 감촉과 와아아 떨어지던 빗소리. 살아 있다는 감각과 동시에 찾아오던 이미 너무 늙어버린 것 같다는 느낌. 아, 그토록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기억들은 어째서 이렇게나 생생할까?

265p.
...나는 무엇이든 선택을 할 때면 그 대가로 미래를 지불해야 하는 줄 몰랐던 날들이 이미 가마득히 멀어졌음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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