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p.
..그래서 현대인은 누구나 마음속 깊이 무력감을 느낀다. 고대인들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고대인에게는 시스템이 없었고, 대신 변덕스러운 신과 정령, 광포한 자연과 폭군이 세상을 지배했다. 그들은 세상이 이치에 맞게 돌아간다는 생각 자체를 품지 않았다. 사방을 향해 생존을 빌며 살았다. 폭력적인 죽음과 신비로운 현상들이 너무 많았기에 역설적이게도 짜릿한 투쟁과 영광, 환희, 영적 충만의 순간을 현대인보다 더 자주 경험했다.

68p.
..그러므로 직관을 검증하는 이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단순히 동조자가 많다고 해서 이 단계를 통과해도 된다고 여긴다면 큰 오산이다. ‘내가 느끼기에 불편하니까 저것은 잘못된 것이다‘라는 말은 유아적이다. ‘우리가 느끼기에 불편하니까 저것은 잘못된 것이다‘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얼마나 집단적 오류에 빠지기 쉬운 동물인지는 역사가 증명한다.

80~81p.
..과학적 태도란 무엇인가 듣기에 아무리 그럴싸해 보이는 설명이라도 실험을 통해 입증되기 전까지는 전폭적인 지지를 미루는 건강한 회의주의다. 서로 다른 설명이 맞설 때 과학적 방법론이라는 절차에 따라 어떤 가설이 더 설득력 있는지 가린 뒤 합의할 수 있다는, 진보와 평화에 대한 믿음이다. 그 검증 과정에서 자존심과 진영 논리, 때로는 정의감조차 내치는 엄격함과, 알 수 없는 것은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겸손함이다. 어제 작동했던 법칙이 오늘도 작동하고, 나에게 작용하는 힘이 너에게도 작용한다는 일관성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자기반성 능력이다.

121~122p.
..현실을 살피자는 목소리를 낼 때 ‘타협한다‘는 비난을 받으면 어리둥절해진다. 그러면 현실과 타협하지, 무엇과 타협하라는 말인가. 이상과 타협하라는 건가? 이상은 타협 대상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현실의 반대말은 이상이 아니라 구호와 아포리즘이다. 물론 이런 말들은 어떤 층위에서는 진실을 담기도 한다. ‘초고층 빌딩은 하늘을 찌르는 페니스‘라는 서술은 공격적인 성공 야심으로 가득한 현대문명의 한 속성을 날카롭게 고발한다. 그런데 저 표현을 몇 층 아래로 그대로 가지고 내려와 ‘그러므로 저 빌딩의 건축가는 남근 콤플렉스가 있다‘고 이어가면 얘기가 우스워진다.
..세상을 그렇게 보는 이들을 뭐라 불러야 하나 고심했는데, 모이제스 나임의 『권력의 종말』(김병순 옮김, 책읽는수요일, 2015)을 읽다가 적당한 용어를 발견했다. ‘단순주의자‘라는 단어였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단순주의자가 이쪽저쪽에 너무, 너무 많다.

123p.
..‘고요히 진리를 기다리며 물음표의 존재 안에서 앉아 숨쉬는 것.‘
..성공회 신학자이자 104대 캔터베리 대주교인 로언 윌리엄스는 자신의 신앙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런데 이 말은 정확히 무슨 뜻일까?
..철학자 대니얼 데닛은 저 문장을 두고 ‘심오롭다‘고 놀린다. 심오한profound 것 같지만 사실은 별 뜻 없지 않으냐는 야유다. 데닛이 심오로움deepity의 다른 예로 드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사랑은 단어일 뿐이다.‘

126p.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모든 형태의 차별에 맞서겠다는 결의보다는 그 차별이 어떤 형태냐는 질문이 중요해진다. 차별을 둘러싼 첨예한 논쟁들은 차별 찬성론자와 반대론자가 벌이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차별인가에 대한 해석을 다르게 하는 사람들이 벌이고 있다. 소수자 우대 정책을 찬성하는 이들은 소수자를 우대하지 않는 것이 차별이라고 주장하고, 반대편 진영은 소수자 우대가 차별이라고 반박한다.
..이런 때 ‘모든 형태의 차별에 반대한다‘는 심오로운 선언은 어떻게 쓰이나. 특히 SNS에서 말이다. 내가 보기에는 질문과 토론을 막는 모양새로 쓰인다. 너희와 달리 우리는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우리 편은 이렇게나 많다! 그런 느낌이다. 이런 여건에서 숙의熟議 민주주의가 가능할까?

141p.
..다행히 우리는 중증 감염자를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사이비종교 교도를 가려내는 일과 기본적으로 같다. 그들은 무오류를 확신하며, 선민사상과 피해의식에 동시에 빠져 있고, 공허한 구호를 기침처럼 콜록콜록 뱉는다. 지식 정보 시대에 참으로 아이러니한 역병이다.

144p.
...도덕성을 묻는데 불법이 아니라고 반박할 때 그 도덕성은 파산선고를 받는다.

213~214p.
..하지만 나도 인간의 마음에 대해 아는 것이 조금은 있다. 어떤 감정들은 양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노한 사람은 호기심을 품기 어렵다. 그래서 그의 지성은 좁은 시야 안에 머문다. 슬퍼하는 사람은 자신을 뽐내지 않는다. 그럴 겨를이 없다. 슬픔을 뽐내는 어떤 사람들은 내 눈에 슬퍼하는 게 아니라 들뜬 것처럼 보이곤 한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애도하지 않는다. 애도는 타인을 향하는 마음인데,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신의 안전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살아야겠다는 욕구가 그를 휘감는다. 나는 2022년 10월 29일 서울 한복판에서 있었던 참사를 현정부가 애도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들은 탄핵될까봐 겁에 질렸다. 그래서 추모의 방식을 통제하려 든다.

274~275p.
..두번째로 내가 깨달은 바는, 외따로 떨어진 장점이나 단점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의 성격은 거대한 빙산이다. 우리는 물위로 드러난 빙산의 일부만 본다. 빙산의 봉우리 앞면과 뒷면이 다른 경우는 그나마 이해하기 쉽다. 신중/우유부단이나 겸손/비굴같은. 실제 수면 아래는 훨씬 더 복잡한 양상일 게다. 책임감과 오만함, 공감 능력과 의존성이 한줄기에서 뻗은 두 봉우리일지도 모르고, 더 불가사의한 연결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얼음은 물위로 드러난 부분을 깎아도 그만큼 다시 떠오른다. 겉으로 드러난 성격을 모두 ‘교정한다‘ 한들 더 깊은 본성이 다른 형태로 언제든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세상살이와 연결 지어봐도 그렇다. 어떤 개성은 그저 당사자의 주변 상황에 따라 장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이 되기도 한다. 평생 흠결이라 여겼던 특질이 결정적인 순간 인생을 떠받치고 들어올리는 지지대이자 지렛대가 될 수도 있다. 당연히 그 반대도 가능하다. 지금 내가 파악하는 나의 모습은 심리적, 서사적 총체와는 거리가 먼, 찰나의 파편에 불과할 수 있다는 얘기다.

275p.
..어쩌면 자기혐오 그 자체에 순기능이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절대선이요 불순물 없는 정의라고 주장하는 자기긍정의 화신들을 TV나 인터넷에서 종종 마주친다. 그 그늘 없는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혐오를 넘어서 공포감이 든다. 그럴 때면 인간은 괴물이 되지 않는 대가로 자기혐오라는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292p.
..여기서 다시 확실한 명제로 돌아온다. 첫째, 어떤 일이 도덕적으로 옳은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때 그 일을 한다는 이유로 도덕적 우월감을 느껴서는 안 된다. 나는 개고기를 먹지 않지만, 개고기를 먹는 이들을 비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둘째, 나의 불쾌함, 불편함, 혹은 금욕에 대한 은밀한 열망을 섣불리 도덕과 연결시켜서도 안 된다. ‘많은 사람이 불편해한다면 잘못된 일‘이라는 주장은 인터넷 시대의 질병이다.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나.
..우리는 모호한 정서적 반응이 아니라 단단한 이성과 논리를 기반으로 새로운 윤리를 쌓아야 한다. 건강한 논쟁을 통해 그 답을 찾는 것이 우리 시대의 윤리적 과업이라 생각한다. 동물권 이슈뿐 아니다.

394p.
...자신에 대한 세상의 반응을 환대와 폭력이라는 이분법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그 어떠한 선입견과 불친절도 받아서는 안 되는 대우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런 인생관을 지니고 살면 삶이 불행해지지 않을까? 주변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지 않을까?

424p.
..선정적인 범죄 보도가 낳을 수 있는 피해가 있다. 악인을 평범한 사람보다 더 자유롭고 더 유능한 것으로 묘사하며 악행을 매혹적으로 그리는 창작물도 있다(그런데 화려한 스포츠카가 등장하는 갱스터 랩 뮤직비디오에서 알 수 있듯 비서사적 요소도 그런 선망에 영향을 준다). 하지만 그런 선정성과 도덕적 무감각을 극복하기 위해 타인의 서사를 막자는 발상은 상투적 범죄물 속 악인의 초상만큼이나 얄팍하다. 그리고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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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p.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있다. 앞으로 영화처럼 특별한 사랑이 뚝 떨어질 일도, 이제껏 감춰져 있던 눈부신 재능을 발견해 뮤지컬 배우가 될 일도,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아 부자로 살아갈 일도 없다는 사실이다. 1LDK 거실과 110센티미터짜리 2인용 소파. 에이코의 행복은 그 위에 수납된 셈이다. 물론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삶이지만.
..소파 위에 있을 때, 에이코는 선명한 행복감을 느낀다. 다만 그 행복감에는 우울이라는 베일이 늘 덧씌워져 있다.

63p.
..에이코는 알고 있었다.
..신경을 팽팽하게 곤두세우고 있을 때, 누군가가 손 내미는 친절에 긴장의 끈이 확 풀려버리는 그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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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p.
...즉 공허한 단어는 그것이 실제로 어떤 인상을 주입하기 때문에 낮은 가격과 연결된다고 의심한다는 가설이다. 실제 음식에 뭔가 빠진 것이 있을 때 게crab나 포터하우스porterhouse처럼 정말 가치 있는 재료를 대신해 그 음식을 표현하는 데 채워 넣는 어떤 것 말이다. 《괴짜경제학Freakonomics》을 쓴 스티븐 레빗steven Levitt과 스티븐 더브너Stephen Dubner는 바로 이 원칙이 부동산 광고에도 똑같이 쓰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환상적인fantastic이나 매력적인charming 같은 단어가 쓰인 부동산 광고에는 더 낮은 가격이 붙는 반면, 단풍나무maple라든가 화강암granite 같은 단어가 쓰인 집 광고에는 더 높은 값이 매겨지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들의 가설은 부동산 중개인이 그 집에 어떤 구체적인 긍정적 특성이 없는 부족함을 은폐하기 위해 ‘환상적인‘처럼 모호하고 긍정적인 단어를 쓴다는 것이다. 사실 레스토랑에서 높은 가격과 상관관계가 있는 단어는 ‘환상적인‘ 같은 공허한 단어가 아니라 바닷가재, 송로버섯, 캐비아caviar처럼 가치 있는 내용물을 제대로 묘사하는 단어들이다.

63p.
...또 손님들이 그냥 빈 식탁만 봐서는 어떤 음식을 대접받을지 알 수 없으므로, 앞으로 나올 음식 이름을 적은 작은 목록표가 각 좌석 앞에 놓이게 되었다. 이 목록의 이름은 ‘작고, 세심하게 나뉘었거나 자세한‘이라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 minūtus의 축약형에서 빌려온(처음에는 프랑스어에, 다음에는 영어에) 것이었다. 그것이 메뉴menu라 불렸다.

146p.
..어쨌든 히브리어의 셰커는 ‘도수가 높아진 맥주‘라는 의미를 간직한 채 꾸준히 생명을 이어갔고, 모든 종류의 도수 높은 술을 가리키는 말로 일반화했다. 4세기에 라틴어로 번역한 성경인 불가타 성경에서 히에로니무스 성인은 그 단어를 시케라sicera라는 형태로 라틴어에 도입하여, 시케라를 맥주, 벌꿀술, 종려술 또는 과일사이다로 규정했다. 중세 초기에 셰커는 이디시어에 도입되어 술에 취한 상태를 뜻하는 시커shikker라는 단어가 되었고, 프랑스어에서는 시세라sicera라는 단어가 되어 지금은 시드르sidre라 불리며, 특히 노르망디와 브르타뉴에서 대중화한 발효 사과주스 이름이 되었다. 1066년 이후 노르만인들은 이 음료와 새로운 영어 단어인 사이다cider를 영국에 가져갔다.

188p.
..긍정적인 견해보다 부정적인 견해를 서술하는 데 쓰이는 단어 유형이 더 많고 의미도 더 많이 구별된다는 사실은 여러 언어에서, 그리고 더 많은 종류의 단어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부정적 차별화negative differentiation라 불린다. 인간은 부정적인 감정이나 상황은 저마다 아주 다르며, 그 때문에 서로 다른 단어를 적용해야 한다고 느끼는 듯하다. 그와 반대로 행복한 느낌이나 좋은 상황은 서로 더 비슷해 보이고, 단어 종류가 더 적어도 처리될 수 있는 것 같다.

227~229p.
..빵은 중세 영국인들의 식단에서 워낙 중심 위치를 차지하는 식품이었기 때문에, 거대한 미드홀mead hall에 사는 앵글로색슨족의 통치자를 지칭하는 말이 바로 빵 보관자hlaf-weard(loaf-keeper)였다. 이는 알곡을 빻아서 가루로 만들고 예속민들에게 빵을 나눠주는 방앗간을 관리하는 그의 역할에서 나온 호칭이었다. 이 단어는 진화한 현대식 형태로 말하면 아마 좀 더 친숙할 것이다. 그것이 ‘lord‘다. 영어의 ‘lady‘도 이와 비슷하게 앵글로색슨의 ‘빵 반죽하는 사람hlaf-dige(loaf-kneader)‘에서 나온 단어다.

229p.
..1066년 노르만족이 침입해온 뒤에도 음식과 주군계급의 연상 관계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새 지배계급이 쓰던 프랑스어가 앵글로색슨어 대신 쓰이기 시작하여, 현대 영어에서도 계속 쓰이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pork, veal, mutton, beef, venison, bacon(고대 프랑스어인 porc, veal, mouton, boeuf 등등에서 나온 것) 등이 그런 예다. 그런데 규칙적으로 고기를 먹을 여유가 있는 것은 노르만인 군주들뿐이었지만, 고기를 제공하는 소와 돼지를 키우는 것은 앵글로색슨어를 쓰는 농노들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돼지에서 나온 고기에는 프랑스어인 pork를 쓰지만 동물 그 자체는 여전히 옛날식 앵글로색슨어 단어인 pig(그리고 hog, sow)를 쓴다. 소를 가리킬 때는 지금도 앵글로색슨어인 cow, calf, ox를 쓰지만, 그 고기는 프랑스어 출신인 beef와 veal이라 부른다.

244p.
..소금은 콘비프corned beef에도 들어간다. 콘비프는 염장쇠고기로, 고대 켈트족의 현대 후손인 아일랜드인들의 음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콘비프는 옥수수와는 상관이 없다. corn이라는 단어는 본래 옥수수가 아니라 고대 영어에서 어떤 것의 ‘부분‘이나 ‘알맹이‘를 뜻하는 단어(사실 그것은 어원학적으로 grain과 kernel의 사촌이다)였기 때문에, 여기서 콘은 쇠고기를 저장하는 데 쓰인 소금 알갱이를 가리킨다.

302p.
..줄리엣은 우리가 관례주의conventionalism라 일컫는 이론을 표현하고 있다. 어떤 것의 이름은 그저 관례에 따라 합의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영국인이 egg라고 하는 단어를 광둥인들은 daan(蛋)이라 부르고 이탈리아인들은 uovo라 부르지만, 우연히 그런 이름들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발전시켰다고 해도 모두가 동의한다면 상관없다는 말이다. 이와 달리 어떤 단어는 그것이 지칭하는 대상에 본성적으로 들어맞는 어떤 면이 있다고 보는 견해, 어떤 이름이 다른 이름보다 본성적으로naturally "더 달콤하게 들릴" 수 있다고 보는 견해는 본성주의naturallism라고 한다.

335~336p.
..중국식 식사에는 마지막의 달콤한 음식 코스가 없지만, 조금 다른 종류의 구조는 있다. 재료와 구성에 제약이 있는 것이다. 일례로, 광둥식 식사는 전분 음식(쌀·국수·죽)과 비전분성 음식(채소·고기·두부 등등)의 균형이 맞아야 한다. 이런 것들이 요리 한 가지에 한데 섞일 수도 있고(차우멘, 차우펜, 볶음밥 등등), 흰쌀밥이 각각 나오고 비전분성 음식이 다른 접시에 따로 담겨 나와 저마다 먹을 만큼씩 쌀밥 위에 덜어 먹을 수도 있다. 이런 방식을 영어로 설명하려면 ‘비전분성nonstarch‘이라는 어색한 단어를 써야 한다. 광둥어에는 이것을 가리키는 ‘성餸, sung‘이라는 단어가 있다. 광둥어로 ‘식료품 장보기‘를 뜻하는 단어는 ‘마이 성买餸, mai sung‘(전분은 이미 집에 있는 기본재료니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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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p.
..두덴이 독일 파더보른대학에서 한 시학 강좌 내용을 읽어보면 Schrei(슈라이, 외침)와 Schreiben(슈라이벤, 쓰다)이 나란히 있다. 소리를 봐도 뜻을 봐도 외침과 쓰기는 복잡한 관계에 있다. 하지만 실제로 외치는 소리를 글로 쓸 수 있는 사람은 조금은 유복한 환경에 있는 사람뿐이다. 자기가 받고 싶은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소설과 시를 쓸 수 있는 여유로운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드물다. 많은 사람은 소리 지르고 싶어도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눈만 크게 뜬 채 인간이 부서지는 모습을 목도하며 들리지 않는 외침 속에서 죽어가기만 한다. 또 글로 쓰는 대신 정말로 소리를 질러대면 주위에서 정신병 환자로 취급한다. 글이 곧 외침은 아니다. 그러나 글이 외침과 완전히 떨어져버리면 더 이상 문학이 아니다. 글과 외침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 두 단어는 언어학적으로 어원이 같은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이 살아온 과정에서 이제는 뗄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하게 결합된 것이다.

91~92p.
..유럽도 오래전부터 유럽 문명 밖에 있는 인간, 소위 ‘야만인‘에게는, 잔혹하고 무서운 이미지와 순진하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평행으로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은 어느 쪽도 아님을 확인하고 ‘문명인‘의 도장을 스스로에게 찍는다. 지금 일본인이 그와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다른 아시아인을 ‘일찍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따뜻한 인간미를 아직 가지고 있는 뒤처진 사람들‘로 단정지으며 사실은 자신들이 차가운 선진국 인간이 됐음을 확인하고 싶을 뿐인 건 아닌가. 나아가 자신들이 했던 식민지 침략, 파괴, 살해의 사실을 인정하는 대신 그들의 ‘따뜻한 인간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슬며시 죄의식을 진정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106p.
..문학을 쓰는 건 항상 귀에 들어오는 말을 이어 붙여서 계속 똑같이 쓰는 것과 반대다. 언어가 어디까지 가능한지 극한까지 가보는 것이다. 그러면 기억의 흔적이 활성화되어 모어의 오래된 층이 지금 쓰는 언어를 변형한다.

128p.
..내가 관심 있는 부분은 외국어는 언어와 뇌의 관계가 다르다는 점, 시적 발상이라면 일부러 언어의 분류와 배치를 바꾸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나에게 독일어는 외국어라서 ‘Zelle‘(세포)와 ‘Telefonzelle‘(공중전화 박스)가 같은 장소에 있다. 어원이 같으므로 별로 이상하진 않다. 하지만 독일어가 모어인 사람은 대체로 ‘세포‘는 생물학 분야에, ‘공중전화 박스‘는 일상생활 분야에 분류된다. 따라서 뇌에서 둘 사이에 연결선이 없다. 어린 시절엔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생활에 쫓기고 세상일을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어른이 되면 연결선이 사라지고 없다.

164p.
..문학이 원본이라 해도 오역처럼 뒤틀림과 공백이 가득하고, 그 공백이 문학을 유동적으로 만든다. 만약 번역이 필요악이라면 문학 역시 필요악이다. 아니, 번역은 필요하지도 않은 악, ‘불필요한 악‘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마노가 쓴 대로 악은 악만의 기쁨이 있고 그 기쁨은 때로는 선 이상이다. 불필요한 악이라면 더욱 좋다.

192p.
...모어 관용어는 레스토랑에서 나온 식사 같은 것이라서 그냥 먹기만 하면 된다. 외국어 관용어는 말이 만들어진 과정이 생생히 보이기에 재료가 다 보이는 반찬 같은 것이다. 거기에 추가로 무를 넣을 수도 있고 후추를 뿌릴 수도 있다....

197p.
...물론 지금도 해와 달은 있지만 시간을 알리는 도구는 아니므로 때를 뜻하는 ‘나날‘은 일종의 비유라고 할 수 있다. ‘나날‘을 ‘해와 달‘로 풀이하듯, 오역으로 느낄 정도로 직역을 하는 것은 우리를 말의 원점으로 되돌린다. 또 오랫동안 비유로만 쓰여서 원점에서 멀어진 노쇠한 말을 다시 살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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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p.
..곁에 누구도 없는 사람은 나이를 먹기는 하지만 세월을 헤아리지는 않는다. 생일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아무도 자기 자신을 위해 나이를 먹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의 탐정은 나이를 잊었고, 나 역시 그의 나이를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206p.
..두 사람 다 교코를 껄끄럽게 대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교코를 위해 기뻐했다. 교코는 무척 민감하기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 수많은 밤에 발생한 불행한 정전기를 많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부드럽게 대해주지 않으면 상대방이나 자신이나 상처를 입고 만다.

346p.
..요즘의 가즈야 모습을 보면, 예전에 알고 지내던 친구 생각이 난다. 합성피혁으로 된 지갑인데, 자기가 진짜 가죽으로 만들어진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행동했다. 자기 가격이 잘못되어 있다, 부당하게 싼 가격이 매겨져 있다—. 이렇게 주장했다.
..하지만 나는 문득 깨달았다. 그 지갑은 자기가 합성피혁이란 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걸 인정하는 게 두려워서 모르는 척했다는 사실을, 자신의 진짜 가격표를 무시하려 했다는 사실을.
..가즈야가 하는 일, 가즈야의 행동에도 그것과 비슷한 면이 있다—.

355p.
..그 말을 들었을 때 쓰카다 가즈히코의 표정은, 그랬다—. 달이 웃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창백한 죽음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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