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p. «장거리 주자의 고독»
...나는 출입문을 나선 뒤, 뻔뻔하게 배를 불룩 내밀고 골목 끝에 서 있는 떡갈나무까지 왕복하며 두세 시간 동안 열심히 달리다 가끔 이렇게 자유로워본 적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게 죽어 있지만 좋다. 산 다음에 죽은 게 아니라 살아나기 전에 죽은 거라 좋다.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58p. «장거리 주자의 고독»
...잠시 후 그가 나무와 덤불 속으로 사라지자 더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장거리 선수의 고독이 어떤 건지 느껴지면서 이 기분이 바로 이 세상 유일의 성실이고 진실이며, 앞으로 이따금 다른 생각이 떠오르고 남들이 아무리 다른 말을 해도 이 사실은 절대 변함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62p. «장거리 주자의 고독»
...서리가 내린 날 아침에 이 세상 최초의 인간이 된 듯한 쾌감도 만끽했고, 여름날 오후에 이 세상 최후의 인간이 된 것처럼 앓아도 보았으니 이제 드디어 이 세상 유일한 인간이 되어 선악 따위 신경 쓰지 말고, 너를 나무라지 않는 마른 흙을 신발로 박차며 달릴 때라고 한다....

93p. «어니스트 아저씨»
..조금 시간이 지나자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아픔이 가셨다. 씁쓸함이 소용돌이치며 사라지고, 지금까지 그 깊이를 알지 못했던 어떤 감정이 그 자리를 채웠다. 이제 인도를 따라 한낮의 인파를 헤치며 걷는 그의 발걸음이 좀 더 단호했다. 그는 선술집의 회전문을 밀치고 바글바글 시끄러운 바 쪽으로 걸어가며, 이제 아무것도 상관없는 사람처럼 맥주병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것은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이고 가장 훌륭한 망각의 세계로 그를 인도할, 아름답고 치명적인 덫이었다.

143p. «어선이 있는 그림»
..나는 산송장으로 태어났어. 나는 속으로 계속 중얼거린다. 사람들은 누구나 산송장으로 살고 있어. 내가 대답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나처럼 그걸 깨닫기 시작한 사람은 거의 없고, 내가 어쩔 방법이 없을 때, 뭐 좋은 일을 하려고 해도 우라지게 늦어버렸을 때 드디어 그런 깨달음이 찾아오다니 안타까운 일이지.

261p. «프랭키 불러 쇠망사»
..그는 쓰레기통 뚜껑과 가로대로 만든 창을 휘두르며 자기 부대를 이끌고 가차 없는 돌팔매질을 벌였던 그 시절 이후로 나와 다른 길을 걸었을 뿐 아니라 나는 몰랐던 변화를 겪었다. 우리는 같은 계급으로 태어나 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서로 다른 농담과 색조로 인해 잎은 시들었을지언정 인식의 뿌리는 비슷했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접점을 느낄 수가 없었고, 나는 내가 사는 세상에서 ‘고양된 의식‘이라고 일컫는 것을 소유한 사람답게 원인이 나뿐 아니라 프랭키에게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265p. «프랭키 불러 쇠망사»
..나는 그를 지켜보았다. 그는 신호등을 무시한 채 비에 젖은 대로를 대각선으로 걷더니 한 버스를 쫓아가 텅 빈 발판 위로 훌쩍 올라탔다.
..그리고 나는 책에 묻혀 이후로 그를 만나지 못했다. 그것은 나의 커다란 일부와 영원히 작별한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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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p.
..‘내가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반드시 보수를 받아야겠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쿠라이 레이코를 방까지 안내했다. 바다가 보이는 방에는 더블 베드가 있었고, 사쿠라이 레이코는 창 너머로 펼쳐지는 해변을 바라보며, "아, 멋져" 하고 외쳤다. ‘아, 멋져‘라는 말투가 아주 특이했다. 언어가 이렇게도 의식이나 감정과 동떨어진 곳에서 튀어나올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표본 같은 말투였다. 또한 그 말에는 힘이 있었다. 예를 들면 고생해서 모은 돈으로 좋아하는 여인과 여행을 떠난 남자가 사쿠라이 레이코와 같은 말투로 그 여인이 ‘아, 멋져‘라고 말했다면, 최악의 경우 자살하는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28~29p.
"...그리고 선생님은 싫은 일을 명확히 싫다고 말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나 어떤 일에 대해 그것이 싫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거의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거예요, 모두 그렇게 살면서 메밀국수나 볶음밥을 먹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으로 명확히 알고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하며 하루하루 살아간다고 착각했던 거예요...."

37~38p.
"...그런 이문화의 슬럼 거리를 걸을 때는 절대로 잘난 체해서는 안 돼, 이방인이면서 방해꾼이라는 감각을 즐거워하며 그런 감각을 증폭시키고 걸어야 하는 거야, 거드름을 피워서도 안 되고 겁을 먹어서도 안 돼, 그 두 가지는 사실 같은 태도의 표리라고 해야겠지, 경계하면서 그것을 즐기며 걸어야 해...."

55~56p.
"...레스토랑은 무척 아담하고, 오래되었고, 웨이터도 손님도 모두 낮게 속삭이며 이야기하고, 그 은밀하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그 공간 속에서 따로따로 놀지 않고 하나로 어우러져 들려와 마치 5월 초에 벚꽃이 진 후에 어리고 부드러운 나뭇잎이 일제히 바람에 흔들리면서 내는 소리 같았어요, 섹시한 기분이 들었어요, 섹시한 기분이 든다는 건 내 경우에는 증오심이 풀어진다는 뜻이에요, 당신과 만나서 사귀면서부터 나는 당신의 말에 깊이 침식당했어요, 그것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당신은 금방 거기에 이름을 붙였어요, 레이코 너의 그 감정은 어디를 보나 증오심이야, 무슨 종인지도 모르고 키운 작은 동물이 갑자기 족제비라는 게 밝혀진 것 같은 느낌으로, 나는 그 증오심이라는 말을 받아들였어요, 그리고 당신은 그 증오의 감정이 언제 생겨났는지까지 정확히 지적했어요. 어릴 적 너는 뭔가를 포기했을 거야, 레이코 너의 증오심은 그때 생겨난 거야, 자세한 건 듣고 싶지 않아, 너는 어릴 적에 세계에 관여하는 것을 포기했을 거야, 그런 경우에는 대부분 자기를 과소평가하게 되고 세계와 자신 모두를 증오하게 되는데 그것은 물론 분화되지 않은 감정이라서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도 없고 대처할 수도 없어...."

79p.
...이것은 최후의 제안이다. 최후의 애정 한 방울이다. 야자키는 그렇게 적었다. 최후, 애정, 한 방울, 보통은 그런 말이 세 개나 늘어서면 우리 세대 사람들은 웃고 말 것이다. 1970년대에 일본에서 태어난 사람은 애당초 언어의 리얼리티를 믿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안다. 어떤 관계성에 기반을 둔 주고받기 속에서, 각종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의미는 쓸데없는 유희처럼 발생과 소멸을 거듭할 따름이다. 야자키의 제안은 부재를 받아들이라는 것이었다. 나의 부재를 받아들여. 그것은, 타인에 대해 관계성을 발휘할 수 없게 된 인간이 발하는 가장 성실한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21p.
"...물론 모든 SM플레이는 사회적인 행위지, 그러나 그건 모든 커뮤니케이션이란 사회적이라는 말처럼 공정한 어법이 아니야, 누군가가 또는 어떤 민족이 생존과 안전을 위해 타인이나 타민족에 대해 자존심과 자유를 방기하고 종속하는, 그것을 일상적인 차원에서 기본적으로는 테라피로서 연극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바로 SM이라고 나는 생각해...."

149p.
..쿠바 사람은 일본인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에너지를 가졌다. 그것은 간단히 말해 가혹한 역사를 살아온 노예와 이민의 자손들이기 때문인데, 그 에너지는 혁명에 의해 국가적으로 제어된다. 개인의 역동적인 힘을 국가적인 힘으로 변환시켜 서바이벌의 무기로 삼는 것이다. 내가 태어나서 20여 년을 산 일본은 개인의 역동적인 힘을 제압해 집단의 통일을 이루어내는 사회라서 서바이벌이라는 개념이 없다. 일본에 있을 때는 몰랐다. 다른 무엇과 비교하지 않으면 한 사회의 특징은 드러나지 않는다.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비로소 일본의 특수성이 드러난다. 일본에서는 ‘살아남는다‘는 것과는 무관하게 지낼 수 있다. 주위에서 인정해 주는 집단에 들어가기만 하면 프라이드와 가치관을 보장받을 수 있다. 쿠바 사람에게는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개인의 에너지가 일본에서는 거의 거추장스런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이 안쪽으로 향할 때, 어떤 경우는 그 사람을 공격한다. 자기가 자기를 좋아할 수 없다. 자기 스스로를 존경할 수 없다, 자기 스스로를 경멸한다, 강한 에너지를 가지고 태어난 일부의 일본인은 집단이 던져주는 보장을 거부하고 개인적인 자기 보장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것을 달성하지 못했을 때는 참을 수 없는 자기 혐오감에 빠지고 만다....

166p.
...수면 부족에도 불구하고 어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여배우 앞에서 내가 긴장을 풀 수 있었던 것은 그 여자에게 익숙해져서가 아니라 그녀의 몸에 밴 그 외로움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인간에게도 공통적으로 있는 것을 그 사람이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놓이는 것이다.

197p.
...그러나 말이야, 레이코, 우리는 지금 우리 나라의 음악을 듣는 게 아니야, 저 음악은 쿠바인의 음악이야. 나는 자기가 좋아한다고 해서 그걸 자기 것처럼 여기는 사고방식을 좋아하지 않아....

205~206p.
..왜 그런 대화가 두 사람 사이에 필요했던 것일까. 그런 대화를 하지 않아도 되게 하는 것이 해변이나 음악이나 섹스나 스포츠나 소설이나 여행이나 마약이 아닐까. 그런 지점까지 가버린 인간에게는 더 이상 해야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닐까? 소비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야자키와 여배우는 제로가 될 때까지 서로를 소비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결국에는 텅 빈 공허임을 확인하기 위해 두사람은 끝도 없는 섹스와 마약의 여행을 한 것은 아닐까. 노예이기도 하다고 여배우가 말했을 때, 왜 야자키는 슬픈 표정을 지었을까.

211p.
...너는 너 자신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상처를 주니까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거야.

224~225p.
..여배우가 카르도소의 말에 따라 타일 위에 무릎을 꿇는 것을 보고 나는 가슴이 아팠다. 카르도소는 여배우의 무릎이 아프지 않도록 쿠션을 깔았지만, 여배우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 듯 타일 위에 무릎을 꿇고 등을 굽혀 머리를 낮게 숙였다. 경건한 크리스천이 교회에서 기도를 드리는 모습보다도 더 마조히스틱한 자세였다. 그리고 그 굴욕적인 자세가 여배우에게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 인간에게는 이런 자세가 필요했을까, 그런 의문이 일었다. 왜 그런 의문이 일었는지는 모른다. 이런 자세는 필요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렵 사회에서는 이런 자세가 필요없지 않았을까, 언제부터 인간에게 이런 자세가 필요했을까, 용서를 빌고 패배와 죄를 전면적으로 인정하는 듯한 자세는 왜 생겨난 것일까. 그런 자세는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그런 것이었을까. 아니면 뚜렷한 목적이 있어서 인간의 자세나 행위 속에 도입한 것일까. 야자키는 그 대답을 알고 있었을까. 무릎을 꿇은 여배우가 무언가에 굴복한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굴복했을 것이다. 나는 가슴이 아팠지만 그것은 단순히 그 모습이 애절했기 때문이 아니다. 나의 공격성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무릎을 꿇고 굴복한 여배우는 몹시 음탕한 느낌을 주었다.

238p.
"...당신은 불행에 빠진 사람에게만 흥미를 가져, 안정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좋겠지만, 그것은, 안정된 사람은 자신에게 흥미를 가질 리 없다고 단정하기 때문이야, 당신은 처음부터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황량한 풍경밖에 없다는 고착된 생각을 가졌어, 당신이 그 황량한 풍경밖에 모르기 때문은 아니야, 당신은 원래 여러 가지 아름다운 풍경을 알아, 그러나 당신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아, 아름다운 풍경을 받아들이는 것은 실로 대단한 고통을 동반하지, 그 재현을 원하기 때문이야...."

244~245p.
...또한 교통과 길과 십자로의 상징인 엘레구아 신은 태어났을 때 너무 추한 기형이었기 때문에 십자로에 버려지는데, 오차우라라는 여신의 구원을 받아 질병을 치유하고 장난질 좋아하는 영원한 어린아이가 된다. 엘레구아는 세상의 모든 문 뒤에 숨어 있고, 다른 신들 사이를 자유롭게 오간다. 여배우는 아마도 산테리아의 신들처럼 끝이 없는 게임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녀에게는 인격도 없다. 그 가늘고 부드러운 몸이 녹아 타자 속으로 스며들어간다. 그녀가 어떤 존재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녀 자신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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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p.
..「프라하의 학생」에서 주인공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악마에게 팔아넘긴다. 그 결과 그는 거울에서 자신이 배제된 세계만을 보는데, 보드리야르는 이것이 세계와 주체의 관계가 투명성을 상실한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세계는 낯설어지며, 주체의 자기 인식은 더 이상 불가능해진다. 보드리야르는 학생의 상象이 우연히 분실되거나 파괴된 것이 아니라 팔린 것임을 강조한다. "악마가 이 상을 하나의 사물로서 주머니에 넣는 장면은 상품이 물신화되는 실제 과정의 환상적인 묘사이다. 우리의 노동과 행위는 우리의 손을 벗어나 객체화되고 문자 그대로 악마의 손으로 넘어가버린다."....

17~18p.
...사실 일상의 연극은 언제나 분장을 요구하기 때문에, 자연적인 몸과 인공적 부속물(또는 훼손되지 않은 순수한 몸과 인공적 부속물들을 필요로 하는 불완전한 몸)을 구별하려는 시도는 부질없는 것이다. 공공장소에서 나체의 전시가 금지되어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 말해주듯, 순수한 몸 그 자체는 언제나 불완전하다.

22p.
..코즈모폴리터니즘은 인식에 바쳐진 삶 또는 글쓰기에 바쳐진 삶이라는 이상과 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런데 문학제도 혹은 전통에 깊이 각인된 이 이상은 공간과의 관계 못지않게 시간과의 관계에도 관여한다.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기"를 단념하고 순수하게 관조적인 삶의 방식을 택한 다음부터, 슐레밀의 인생은 어떤 의미에서 텅 비어버린다. 그의 삶의 매시간은 현실적인 내용이 제거된 채, 불멸의 작품을 만드는데 소모되어야 하는 동질적인 단위들로 바뀐다.

31p.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보이지 않는 공동체—도덕적 공동체—안에서 성원권을 갖는다는 뜻이다. 즉 사람임은 일종의 자격이며,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사람과 인간의 다른 점이다. 이 두 단어는 종종 혼용되지만, 그 외연과 내포가 결코 같지 않다. 인간이라는 것은 자연적 사실의 문제이지, 사회적 인정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개체가 인간이라면, 그 개체는 우리와의 관계 바깥에서도 인간일 것이다. 즉 우리가 그것을 보기 전에도, 이름을 부르기 전에도 그 고유한 특성에 의해 이미 인간일 것이다. 반면에 어떤 개체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회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하며, 그에게 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34p.
..통과의례는 의례를 통과한 집단과 아직 통과하지 못한 집단을 갈라놓는 게 아니라, 의례를 거치는 집단과 거치지 않는 집단을 갈라놓는다고 부르디외는 지적하였다....

73p.
..『순수와 위험』에서 더글러스는 더러움을 자리place에 대한 관념과 연결시켰다. 더럽다는 것은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신발은 그 자체로는 더럽지 않지만 식탁 위에 두기에는 더럽다. 음식이 그 자체로 더러운 건 아니지만, 밥그릇을 침실에 두거나 음식을 옷에 흘리면 더럽다. 마찬가지로 목욕 도구를 옷장에 두거나 옷을 의자에 걸어두는 것, 집 밖에서 쓰는 물건을 실내에 두는 것, 위층의 물건을 아래층에 두는 것. 겉옷이 있어야 할 자리에 속옷이 나와 있는 것 등은 더럽다.

90p.
..그러므로 우리는 얼굴을 개인이 맡은 역할이나 그 역할에 대한 그 사람 고유의 해석, 혹은 연기를 통해 그가 만들어내는 구체적인 자기 이미지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얼굴은 그처럼 개별적이고 가시적인 것이 아니다. 얼굴은 결코 가면과 분리될 수 없으면서도 가면의 뒤에 있다고 상상되는 무엇이다. 어떤 사람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리고 그가 만들어내는 것이 가면에 불과함을 알면서도 그 가면을 굳이 벗기려 하지 않을 때, 나아가 그의 연기에 호응하면서 그가 가면을 완성하도록 도와주고, 실수로 가면이 벗겨지더라도 못 본 체할 때, 한마디로 그의 가면 뒤에 있는 ‘신성한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할 때 그 사람은 얼굴을 갖게 된다.

95p.
..."명예의 세계에서 개인은 진정한 정체성을 역할 속에서 발견한다. 그 역할에서 도망치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는 것과 같다. 존엄의 세계에서 그는 사회가 부과한 여러 가지 역할로부터 자기를 해방함으로써 진정한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다. 역할들은 단순한 가면이며, 그를 환상과 소외와 자기기만에 빠뜨린다."

99p.
..벌레가 된 그레고르 잠자는 "실존에 눈뜬 개인"의 표상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모습에서 현대 문화가 처한 곤경을 읽을 수 있다. 현대인이 사적인 공간에서만 진정한 자기를 발견한다면, 이는 현대성의 기획의 실패를 의미한다. 더구나 우리는 이 고립된 개인들이 타자의 인정과 지지 없이 어떻게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사적인 공간을 지켜주는 것은 개인의 자리에 대한 공적인 인정이 아닌가? 세계와 홀로 맞선 자아는 타자의 난입을 막을 수 있을까? 그레고르는 단지 방에 갇혀 있는 게 아니다. 그를 가둔 감옥의 문은 아무 때나 그가 원하지 않는 순간에 열린다.

123p.
..낙인자의 편에서, 이러한 접근을 허용하는 것은 일종의 의무이다. 낙인자는 정상인들이 변덕스럽게 베푸는, 원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 친절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친절이 ‘남용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낙인을 지닌 개인은 명랑하게 그리고 자의식 없이, 스스로를 정상인들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존재로 받아들이도록 요구된다. 그러면서도 그는 정상인들이 그에게 당신은 우리와 동등한 존재라고 입에 발린 말을 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상황을 알아서 피해야 한다."

161p.
..하지만 한 사람이 자존감을 유지하려면, 그에게 실제로 자신의 존엄dignity을 지킬 수단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자존감은 아큐의 ‘정신승리법‘과 비슷해져버린다. 신자유주의의 모순은 상호작용 질서의 차원에서 (즉 상징적으로)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주장하면서, 구조의 차원에서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단을 빼앗는다는 것이다. 마이클 무어의 「로저와 나」(1989)는 이 모순을 잘 보여준다.

167p.
...학교는 겉으로는 존중을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경멸을 가르친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모욕하고, 가난한 아이들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힘센 어른은 힘없는 아이들을 막 대해도 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면서 말이다. 그래서 겉치레로 하는 말과 진짜 메시지를 구별할 만큼 영리해진 아이들은 자기보다 못한 아이를 경멸함으로써 학교의 가르침을 실천한다. 마치 어른들이 입 밖에 내고 싶어 하지 않는 사회의 진실을 아이들이 연극의 형식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교실이라는 무대 위에서 날마다 상연되는 잔혹극. 그러니 이 연극에서 몇 명쯤 죽어나가더라도 너무 호들갑 떨지 말기로 하자. 지금 아이들은 사회에 나갔을 때 꼭 필요한 두 가지 기술—경멸하는 법과 경멸에 대처하는 법을—익히는 중이다.

176p.
...문제는, 정신적인 특징들 역시 따지고 보면 환경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흔히 영혼의 깊이를 측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곤 하는 음악에 대한 취향은 청소년기에 어떤 음악에 주로 노출되냐에 따라 달라지며, 이는 다시 계급적이고 세대적인 변수들로 환원된다. 그러므로 우정이 지고의 가치로 찬양될수록, 벗을 선택하는 기준 자체는—데미안이 싱클레어의 이마에서 발견한 카인의 표지처럼—막연하게 제시되는 경향이 있다.

193p.
...주는 사람이 주었다는 사실을 잊고, 받는 사람이 받았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한, 환대는 주는 행위를 포함할 수 있다. 그러므로 환대와 증여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 우정의 조건은 환대임을 주장하면서, 나는 무엇보다 이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204p.
..그러므로 환대에 대한 질문은 필연적으로 공공성에 대한 논의로 나아간다. 환대는 공공성을 창출하는 것이다. 아동학대방지법을 만드는일, 거리를 떠도는 청소년들을 위해 쉼터를 마련하는 일, 집 없는 사람에게 주거수당을 주고 일자리가 없는 사람에게 실업수당을 주는 일은 모두 환대의 다양한 형식이다.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라는 현대적 이상은, 생산력이든 자본주의의 모순이든 역사의 수레바퀴가 어떤 자동적인 힘에 의해 앞으로 굴러감에 따라서가 아니라, 이러한 공공의 노력을 통해 실현된다.

213p.
..비유컨대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림자를 갖는 것과 같다. 몸에 붙어 다니면서 몸의 자리를 표시해주는 무엇, 몸과 닮아 있고 몸을 흉내내지만, 몸의 고유한 표정을 모두 지워버리면서 그렇게 하는 무엇, 몸이 태어날 때 함께 나타나고, 몸이 죽을 때 함께 사라지는 무엇 말이다. 사람으로 인지된다는 것은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몸이 아니라 그림자로 인지된다는 것이다. 공적 공간에서 교환되는 상호작용의 의례는 개별적인 몸을 향하는 것 같지만, 기실 그림자에 바쳐지는 것이다.

215p.
..한편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주어져 있는 정체성의 규정 요소들, 예컨대 국적이나 출신 계급이나 인종이나 성별, 심지어 언어와 문화는 개인의 정체성 서사에 통합되는 한에서만 중요하고, 그렇지 않으면 우연하고 부수적인 요소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개인의 정체성의 핵이 더 이상 이런 요소들이 아니라, 그것들을 바탕으로 정체성 서사를 써나가는 주체의 저자성authorship 자체임을 뜻한다. 정체성에 대한 인정은 특정한 서사 내용("나는 레즈비언이다")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서사의 편집권에 대한 인정이다....

285p.
..그런데 장소를 위한 투쟁이 끊이지 않는 것은 단지 지구가 너무 좁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은 자신이 한번 의미를 부여한 장소를 쉽게 잊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장소는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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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p.
...그들은 뺨을 타고 흐르는 땀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쓰코가 일부러 수수하게 맞춘 흰 여름 슈트 입은 모습을, 유리판에 코를 박고 이미 팔려 버린 반짝이는 서양 공기총을 구경하는 악동의 눈빛으로 빤히 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껏 어떤 남자도 코에 부딪히는 유리판을 의식하지 않고 나쓰코를 볼 수는 없었다.

27p.
...더는 멋진 일 같은 거, 일어나지 않아. 그런 확신이 드는 날이 나쓰코에게는 가장 멋진 아침처럼 느껴졌다.

224p.
...구로카와 씨의 신념은 이러했다. 사냥할 대상의 동물 안에 그 어떤 ‘마음‘을 품는 일, 그것은 마음이 마음을 노리는 일이며, 인간끼리의 살상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241p.
..나쓰코는 그 긴 키스 동안 한쪽 눈을 살짝 떠 머리 위의 별하늘을 보았다. 별이 눈 속으로 떨어져 내릴 것만 같다. 그 뜨거운 물방울이 입속으로 흘러드는 것만 같다. 큰곰자리가 보이고 작은곰자리가 보였다. 어미 곰과 새끼 곰의 광택 나는 검은 털은 검은 밤하늘에 섞여 들어, 인간의 눈에 비치는 건 그저 발톱과 어금니의 찬란한 반짝임에 불과하다.

315p. (해설)
...무라카미 하루키는 버클리대학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주인공이 무언가를 찾아 나서고, 그걸 찾는 동안 다양하고 복잡한 상황에 휘말리고, 그리고 마침내 그것을 찾아내었을 때 무언가가 이미 손상을 입고 상실되는 구조를 사용하여 《양을 쫓는 모험》이라는 소설을 썼다."고 밝혔는데, 《나쓰코의 모험》 끝부분에서 나쓰코가 그토록 갈망하던 청년의 정열도 완전히 손상을 입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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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p.
..미니멀리즘의 본질은 어느 한 부분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다른 것들을 걷어내는 ‘강조‘에 있다.

68p.
..사람을 바꾸는 것은 의지력이 아닌 환경의 힘이다. 따라서 버리려는 노력을 하기보다도 먼저 환경을 바꾸는 데 100%의 힘을 쏟을 것. 그럼 행동은 환경에 맞춰서 저절로 바뀌어간다.

99~100p.
..유명한 화가 오카모토 타로 씨는 인생은 쌓고 줄이기라고 말했는데, 나는 이 말을 참 좋아한다. 계속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쌓았다가 줄여가는‘ 것. 미니멀리스트의 삶이 바로 쌓고 줄이기다. 늘리고 줄이고를 되풀이하면서 그때마다 필요 최소한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이상적이다. 우리는 줄이기 위해서 살아가는 게 아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필요한 것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여백을 만들고, 또 그것을 이용하여 계속 변화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미니멀리스트의 진면목이라 할 수있다.

107p.
..다만 버리든 사든, 왜 그 물건에 끌렸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왠지 그냥‘이란 한 마디로 끝내지 말고 원인 분석까지 세트로 해보자. 예를 들어, 옷 한 벌을 버리더라도 ‘색이 독특해서 매치해 입기 어렵다‘ ‘세일 상품이라 그닥 끌리지 않는데도 샀다‘ 식으로 버리는 이유를 생각하다 보면 불필요한 물건을 구입하지 않는 요령을 알게 된다.

126p.
..사람이 충실한 인생을 보낼 수 있는 조건은 최소한으로 보장되는 의식주,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한 몸과 정신이다. 거기에 넘쳐날 정도의 호기심만 있으면 다른 아무것도 필요 없다.

134p.
..‘그것이 없으면 불안하다, 초조하다‘라는 중독 상태는 본래의 나와 다른 모습인 듯하여 때론 불쾌하기까지 하다. 늘 자신답게 살고 싶다면 먼저 중독에서 벗어나자.

180p.
...최대화란 모든 선택지를 찾아서 검토한 후에 최고의 것을 얻으려는 생각이다. 반면 만족화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 욕구를 채워줄 만한 최초의 것을 선택하는 방법. ‘이걸로 충분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얻으면 그걸로 만족하는 삶의 방식이다.

182p.
...‘이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은 결코 타협이 아니며, 자신의 인생을 컨트롤하기 위해 필요한 기준인 것이다.

185p.
..노력은 미덕이라지만, 어떤 일을 하기 전 ‘노력하자‘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이미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증거다. 정리도, 청소도, 노동도, 정말로 좋아한다면 절로 몸이 움직일 테니까.

185p.
..따라서 나는 귀찮은 일을 배제하고 노력하지 않아도 계속할 수 있는, 다시 말해 좋아하는 일에만 힘을 쏟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노력하는 것을 끔찍이 싫어하는 나지만 유일하게 노력을 하지 않는 노력만은 하고 있다. 귀찮다고 느끼는 일이 있다면 효율화와 자동화를 꾀할 수 없는지, 혹은 아예 없앨 수 없는지를 늘 생각해 봐야 한다.

186p.
..나는 즐거운 일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러므로 귀찮다는 감정에 계속 민감하게 촉을 세우며 살려고 한다. 미니멀리스트는 노력하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노력하지 않는 천재‘가 될 소질을 내면에 감추고 있는 이들이다.

210p.
..자신을 모른다는 건, 깜깜한 어둠 속을 끝없이 헤매는 것과 같은 상태를 말한다. 반대로 자신을 알고 있으면 주저 없이 직진할 수 있다. 자신이 어떤 공간에서, 어떤 물건에 둘러싸여, 어떤 사람과 교제하면 행복한가를 알게 된다면 불필요한 선택지를 늘리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된다.

226p.
.."뭘 싫어하는가보다 뭘 좋아하는가로 자신을 말해!"
..만화 『누더기 표류 작가』에 나오는 대사다. 만화는 읽지 않았더라도 이 대사가 익숙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어째서 서로가 결점만 찾아서 상처 주는 거야. 백 마디 욕을 퍼붓는 것보다 가슴 펴고 좋아하는 것 하나 얘기하는 게 훨씬 멋져."로 이어지는 이 대사에, 예전의 나라면 격하게 공감했을 테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좋아하는 것을 표현할 거면 싫어하는 것도 표현하라가 온당한 자세라고 생각하며, 좋다는 말밖에 하지 못하는 세계는 따분하다고 생각한다.

231p.
..‘인류는 모두 형제이니 이야기하면 이해할 터‘라는 생각이 훨씬 더 폭력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해해줄 것이란 기대가 있을 경우, 그 기대가 배신당했을 때 분노의 화살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워지는 것이다.

240p.
...그래서 나는 싫어하는 부분마저도 용서가 되는 사람과 교제하고 싶다. 예컨대 입은 거칠어도 이야기의 내용이 존경스러워서 함께 있고 싶은 것이다. 그런 사람과의 관계일수록 더욱 소중하니까. 물론 나에게 교제할 만한 가치가 없다면 상대가 먼저 관계를 끊어도 상관없다. 나도 남에게 선택받을 수 있는, 이익이 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242p.
..‘인간은 물건이든 사람이든 많은 것에 의존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따라서 의존할 곳을 늘리되 그 하나하나에 대해서 의존도를 낮추면 아무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바로 이 상태가 자립이다.‘

244p.
..그리고 이것은 인간관계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수입원, 가진 기술, 마음 둘 곳처럼 ‘형태 없는 것‘은 늘리면 늘릴수록 다양한 위험에 대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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