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p.
.. 요리란 원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행위다. 여자든 남자든 아이든 누구나 그럭저럭 만들 수 있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어느새 그 요리가 체력이 받쳐주고 재능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 되어버렸다면, 뭔가가 잘못된 게 아닐까.

54p.
..뜨끈뜨끈하게 피어오르는 김 사이로 쌀알이 한 알 한 알 자기주장을 하며 서 있는 모습이 마치 갓난아기 같아, 몇 번을 다시 봐도 밀려오는 감동을 억누를 길이 없다. 나는 무사히 출산을 마친 어머니처럼, 아끼는 나무 주걱으로, 아기를 안 듯, 냄비 바닥에서 밥 등을 살짝 들어올린다. 그리고 밥알이 으깨지지 않도록 주걱을 세워 빠르게 섞어 밥알 하나하나가 숨을 쉴 수 있게 해준다.

134p.
..껍질과 씨. 사실 딱딱하긴 하다. 잡미와 쓴맛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건 채소와 과일 본연의 맛이 응축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부드러운 부분은 흐릿하고 밋밋한 맛, 어쩌면 ‘아직 아이‘인 맛이 아닐까.

253p.
..아니, 당신은 무력하지 않다.
..요리만 할 수 있다면.
..유사시에 아주 적은 돈으로 스스로를 기분 좋게 먹여 살릴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회사에서 해고를 당해도 두려울 것이 없다.
..어떤 천재지변이 닥쳐도, 파산을 하여 궁지에 내몰려도, 모두에게 버림을 받아 혼자가 되어도 앞을 향해 살아갈 수 있다.
..그 힘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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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p.
..하미가 왼팔을 뻗어 다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몬은 경계를 풀지 않았지만 하미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쓸데없이 으르렁대지 않는 것은 강한 개만의 성질이다.

143p.
..클린트—소리를 내지 않고 속으로 이름을 불러 본다.
..개가 고개를 돌렸다. 알고 있다는 듯 꼬리를 흔들었다.
..사에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개와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어떻게 잊고 살았지. 개가 주는 사랑과 기쁨이 왜 떠오르지 않았지.

338p.
..사람 한 명과 동물 한 마리가 나란히 자고 있는 모습은 종교화(宗敎畵) 같기도 했다. 우치무라는 잠에서 깨지 않도록 조심하며 히카루와 다몬이 자는 모습을 몇 번이나 사진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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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p.
..담당 교수 뒤에 의자도 없이 서 있던 젊은 의사가 위를 올려다보며 고개의 각도를 조금씩 계속 바꾸었다. 수정은 알아채버렸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하는 행동이라는 걸. 작은 컵을 빙글빙글 돌려봤자 컵이 커지는 건 아니에요, 수정은 속으로만 생각했다....

40p.
..애선은 한때 자기가 얼마나 딸을 가지고 싶어했는지를 떠올렸다. 두 며느리를 생각하자 딸과 그리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자식이 넷이구나, 넷. 보살이 아니라 아수라가 되어서라도 지키고 싶은 자식이 넷. 그러나 그 아이들을 지킬 건 팥밖에 없고. 팥 정도밖에 없고.

64p.
...효율적인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뇌였다. 적재적소에 귀신같이 배치된 사람들이 각자의 잠재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그런 뇌. 채원도 자신의 자리를 오래도록 탐색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기다리고 찾았던 그 적소가 어쩌면 여기일지도 모른다고 최근에야 드디어 생각이 들었다. 쉬운 자리는 아니었다. 하중이 걸리는 자리였다. 하지만 채원은 스스로가 단단한 부품임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하중을, 타인의 생명이라는 무게를, 온갖 고됨과 끝없는 요구를 견딜수 있는 부품이란 걸 어떤 자기애도 없이 건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손바닥 위의 티타늄 볼트를 내려다보듯이 아무렇지 않게 말이다. 어려운 구석에 놓여도 기능할 수 있는 조각이니까, 제 역할을 하겠다고 마음먹었고 실제로 해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태도는 언어가 아닌 형태로 채원의 머릿속 어딘가를 흐르고 있었다....

118p.
..아이는 운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운이 좋았던 적이 있어야 이해할 것이다. 큰 파도를 타는 것과 비슷했다. 파도가 부서질 줄 알았는데 계속되었다. 평생 그랬다. 유학생 출신답게 호 선생은 생각했다. ‘그레이트 라이드‘였다고. 그 좋았던 라이드가 이제 끝나간다. 그렇다면 나눠줘도 좋을 것이다.
.."내가 운을 좀 나눠줄게. 악수."

251p.
...선들. 선들이 보였다. 세훈은 대학에 들어가 이상한 종교단체나 피라미드 업체에 끌고 가려는 사람들을 거절하며 희미한 선들을 보는 법을 배웠다. 넘기 전에는 희미하다. 넘고 나면 선이 아니라 벽이 된다. 아주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꽤 힘들어진다. 살면서 그런 선들을 얼마나 많이 만나게 될까. 넘어가게 될까.

380p.
.."...그냥...... 우리가 하는 일이 돌을 멀리 던지는 거라고 생각합시다. 어떻게든 한껏 멀리. 개개인은 착각을 하지요.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사람의 능력이란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돌이 멀리 나가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사실은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시대란 게, 세대란 게 있기 때문입니다. 소 선생은 시작선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내 세대와 우리의 중간 세대가 던지고 던져서 그 돌이 떨어진 지점에서 다시 주워 던지고 있는 겁니다. 내 말 이해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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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이 프로젝트는 중요한 점을 시사하고 있다. 바로 주변에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노력이 있다면, 치매 환자도 얼마든지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치매 환자를 과소평가하지 않음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점이다.
..치매 환자를 대할 때 아주 조금만 더 시간을 두고 이해하려는 관용과 배려만 있다면 우리 사회는 소중한 무언가를 얻게 될 것이다.
..그들도 저마다 개성을 갖고 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개인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가득 채워졌을 때는 상대에 대해 너그러워진다.
..요시코 할머니는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서 일한 경험을 통해, ‘아직은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것처럼 보였다.

.."간병이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힘을, 살아가는 것뿐 아니라 그 이상으로 필요한 곳에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까지 온전한 사람으로서 살아가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으로 살아가고, 더 이상 그 힘을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게 되면 치매가 되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사용할 수 있도록 응원해 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이 아닐까요."

.."치매 환자는 평생 자신의 의사대로 행동에 옮기는 것을 억제당해 온 역사 그 자체인 거지. 하지만 인간이 왜 멋진 존재인가.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인간이, 자신의 뇌가 무너졌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가장 멋진 것을 빼앗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최대한 그것을 지켜주는 것, 그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

..만약 우리에게 스스로 선행을 한다는 의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틈새를 비집고 응석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좋은 일 하는 건데 약간의 빈틈은 용서되겠지’라는 생각은 절대 안 된다. 그런 응석이 받아들여지는 순간 타협이 생기고 질 떨어지는 요리가 나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껏 틀린다는 행위 또는 치매라는 병은 사회적으로 볼 때 ‘비용’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그동안 ‘비용’으로 여기던 것이 돌변하여 어마어마한 ‘가치’로 떠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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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가 골라준 음식이었다면, 영어 메뉴를 보고 고른 것이었다면, 비싼 코스 요리의 일부로 나온 것이었다면, 이렇게 평생 기억할 만한 추억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여행준비의 가장 큰 장점은 여행이 풍성해지는 게 아니라 추억이 풍성해지는 거다. 여행을 앞두고 그 나라 말을 조금만 공부하면 더 많은 추억을 만들 수 있다. 메뉴판을 읽고 원하는 걸 주문하는 데 필요한 단어들을 익히는 일은 특히 중요하다.

..나는 한국인의 영어 실력을 세 단계로 나눈다. 돈 쓰는 데 필요한 영어가 가능한 사람은 중간 레벨이다. 이 책의 독자 대부분이 여기에 속할 것이다. 나도 여기에 속한다. 영어를 사용하며 돈을 쓸 수는 있는데, 돈을 벌지는 못한다. 돈 버는 데 필요한 영어까지 가능한 사람이 상위 레벨에 있고, 영어가 잘 안 통해서 돈을 쓰는 데도 적지 않은 불편함을 겪는 사람이 하위 레벨이다.

..부모님과 함께 떠나는 여행의 최대 장점은 여행 이후에 드러난다. 겨우 며칠의 여행이 최소 몇 년 동안의 대화 소재가 되기 때문이다. 부모 자식 간의 대화 소재도 되고, 두 분의 대화 소재도 되며, 부모님이 친구들에게 은근히 자랑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도 된다.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시간이다. 여행 상품을 사드리는 것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의 가장 큰 차이는 ‘함께한 시간’이고 ‘함께 만든 추억’이다. 함께 한 여행은 눈에 보이는 비용보다 더 귀중한 ‘시간’이 투입된 것이라, 당연히 더 오랫동안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 향기가 오래가는 꽃처럼.

..『질문이 답을 바꾼다』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사람들이 가장 갈망하는 것은 두 가지다. 인정받는 것, 그리고 상대가 자기 말에 귀 기울여주는 것. (…) 상대가 말을 너무 많이 한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있어도, 너무 많이 들어준다고 불평할 사람은 없다."

..물론 잊어버린다. 한가할 때 가끔씩 그 별들을 이것저것 눌러보는데, 도대체 내가 무슨 이유로 별을 붙여놓았는지 알 수 없는 장소들도 있다. 인생의 어느 순간, 나중에 돌이켜보면 하등 중요하지 않은 일에 쓸데없이 마음을 빼앗겨 연연했던 것처럼, 그때 그곳에 별을 붙인 사람도 나고, 지금 다시 보며 이 별을 지우는 사람도 나다. 그렇게 별들은 나타났다 사라진다. 유난히 오랫동안 유별나게 반짝이는 별도 있고, 한동안 별이었다가 소리 소문 없이 먼지가 되는 별도 있다.

..대신 언젠가 꼭 가보겠다고 마음먹은 경기장은 참 많다. 그중에서도 다음 세 곳은 정말 가고 싶은데, 접근성이 워낙 떨어지는 곳들이라 언제쯤 꿈이 이루어질지는 모르겠다.
..노르웨이 로포텐 제도에 있는 헤닝스베르 스타디움Henningsvaer Stadium, 크로아티아 이모트스키에 있는 스타디온 고스핀 돌라치Stadion Gospin Dolac, 그리고 아이슬란드 베스트만나에이야르에 있는 하스테인스뵐루르 스타디움Hasteinsvollur Stadium.

..짧은 여행 중에 그 나라의 독특한 시스템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뭔가 특이한 점을 알게 된다고 해도 그 연원을 깊이 이해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그러니 여행 전후에 여행지에 관한 책을 읽거나 여행 중에 그들이 사는 방식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은 그런 맥락을 이해하는 데, 나아가 우리 생활에 필요한 교훈이나 아이디어를 얻는 데, 그리고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라 생각하며 쓸데없이 우기거나 타인에게 간섭하는 행위를 줄이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된다. 여행자는 호기심이 많고 고집은 적어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시가키에서 배를 타고 4시간을 더 가면, 요나구니라는 작은 섬이 있다. 일본의 최서단. 비행기로 갈 수도 있다. 나하에서는 1시간 20분, 이시가키에서는 30분 거리다. 이 섬은 1986년에 우연히 발견된 해저 지형 때문에 유명해진 곳이다. 인공적으로 만든 것인지 자연적으로 생성된 것인지 아직 규명되지 않은 매우 이상한 형상들이 수심 3미터에서 25미터 사이에 퍼져 있다. 사진을 봐서는 도저히 자연적으로 만들어지기 어려워 보이는데,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지, 이게 어떻게 바닷속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이빙이 가능하면 직접 들어가서 볼 수 있고, 나처럼 수영도 못하는 사람들은 글라스보트나 반잠수정을 타고 둘러볼 수 있다. 가깝지만 먼 곳. 여기도 언젠가 가볼 수 있을까?

..외교관 출신의 우동집 사장님인 신상목의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를 일본 여행 전이나 후에 읽으면, 아, 그게 다 역사적 맥락이 있구나, 하며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은 사람이라면, 다음번 도쿄를 방문할 때 ‘에도도쿄박물관’이라는 곳에 가보기를 추천한다. 그 책의 실사판이 그곳에 구현되어 있다....

..하지만 이렇게 실용적인 제품을 사는 것만으로 여행 중의 쇼핑 욕구가 전부 채워지지는 않는다. 쓸모는 없더라도, 오로지 추억을 만들고 그 여행을 기념하기 위한 물건도 사야 한다. 여행은 결국 즐거운 기억을 더 많이 남기기 위해서 가는 거 아닌가. 우리의 한정된 기억 공간에 즐거운 기억을 꾸역꾸역 집어넣어서, 어느 날 랜덤으로 떠오르는 기억의 맛이 씁쓸하지 않고 달콤할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시간과 돈을 쓰는 거 아닌가. 사진도 그래서 찍는 거고. 아무 기념품도 사지 않는 것보다는 뭐라도 사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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